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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10/10)

작성자
오월연두
작성일
2025-07-06 22:17
조회
28

거북이 잉글리쉬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 9시 30)의 번역입니다오선민 선생님이종은 선생님이유진 선생님, 최경열 선생님, 최옥현 선생님윤연주가 함께 번역했습니다.  

아쉽게도  『자연과 문화의 저편』 번역은 이번 편을 끝으로 종료합니다. 그동안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책의 목차

Ⅰ. 눈속임하는 자연

 1. 연속성의 구성

 2. 야생과 길들여진 것   유목의 공간들 / 정원과 숲 / 밭과 논 / 들과 숲 / 목동들과 사냥꾼들 / 로마의 풍경, 허시니아의 숲, 낭만적 자연

 3. 대분할   풍경의 자율성 / 퓌시스의 자율성 / 창조의 자율성자연의 자율성문화의 자율성 / 이원론의 자율성 / 세계의 자율성 

Ⅱ. 관습의 구조

 4. 관습의 스키마   구조와 관계 / 익숙한 것을 이해하기 / 스키마티즘 / 차이화, 안정화, 유추

 5. 자기와의 관계와 타인과의 관계  식별의 양식과 관계의 양식 / 타자는 나

세계의 자율성

 

이 개요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100년 전에 간신히 도입된 자연과 문화 사이의 대립을 문화 간 보편성으로 분류하는 것이 여전히 타당한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뒤늦게 꾸며냈던 예외적인 상황 전부를 완전히 잊어버린 채, 부족들의 최고의 다양성이 어떻게 그러한 대립을 표명했을 수도 있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지구 사방을 계속 샅샅이 뒤져야만 할까? 지바로스족, 사모예드족, 파푸아인족이 우리의 증조부들이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인간이 현재 그들에게 적용되는 분석 시스템에 의해 인간이 비인간과 다른 것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그렇게 충격적인가? 요컨대, 우리는 많은 문명에서 여전히 매우 많이 살아있음이 분명한 우주론 또는 지금은 우리 도서관의 선반으로 밀려나 다시 살아나기 위해 우리의 호기심만을 기다리는 우주론을 설명하기 위해 세계를 나누는 역사적으로 결정된 방식에 매달려야 할까? 지금쯤이면 분명히 알 수 있겠지만, 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들의 마음에 생기는 반대 의견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원론에 대한 나의 비판은 순진하거나 궤변적일 수 있다. 말들의 실체 없는 조직의 표면을 훑어보고 개념의 결여를 그것들이 가리키는 실재의 부재와 혼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과 문화 사이의 대립이 단지 20세기 초에 명확한 형태와 운영적 유효성을 얻었다고 해서, 더 이전과 다른 곳의 사람들이 우리가 그 언어들을 사용해서 분류하는 현실의 두 양식을 실제로 구별할 수 없었다는 것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약하면 나는 명목론자(유명론자)의 곡해의 순진한 변형에 저항하는 것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 책의 야망은 이것이 전혀 그렇지 않고, 이원론의 거부는 절대적 상대주의나 오늘날의 맥락이 쓸모없게 만든 사고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며 예외적인 것에 매혹되거나 실증 과학의 반대에 압도되지 않고 세계 관습의 다양함을 성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잠시 믿음의 간략한 선언으로 나 자신을 제한할 것이다.

비인간은 일반적으로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그것들과 생산적인 성관계를 갖는 것이 불가능하고 다수가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스스로 성장하고 번식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발달 심리학자들의 모든 어린이는 자란 환경과 관계없이 아주 일찍부터 의도성이 부여된 것으로 인식되는 개체와 그렇지 않은 개체를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할 때, 그 공로를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요컨대, 모든 문화적 영향으로부터 이상적으로 제거된 관찰자는 틀림없이 자신과 우리가 관습적으로 자연물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 모든 범위의 차이, 즉 외모, 행동 및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많은 징후를 축적할 수 있다. 그러나 점진적인 연속성을 나타내는 징후는 똑같이 많으며 몽테뉴Montaigne에서 헤켈Haeckel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콘딜락Condillac과 라 메트리La Mettrie를 포함하여 지배적인 교리에 반대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소수의 반항적인 영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왜 경계선이 움직임의 독립이 아닌 언어나 시에 그려져야 할까? 아니면 삶보다는 움직임의 독립성에? 아니면 물질적 견고성, 공간적 근접성, 청각적 효과보다는 실제를 경계로 삼아야 할까? 화이트헤드Whitehead가 다른 맥락에서 (인정하면서) 관찰했듯이, ¨지각된 자연은 항상 울퉁불퉁한 가장자리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민족지학적, 역사적 근거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어떤 불연속성에 대한 의식 자체가 이원론적 우주론을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존재의 다양한 형태는 메를로퐁티가 연관체‘(les corps associes)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분하는 작은 양자보다 존재론적 구별을 위한 더 비옥한 지형을 제공할 수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증식하는 연속체로 존재하며, 뇌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방식으로 식별하도록 설계된 불연속적인 영역으로 미리 절단된 것으로 생각하려면 본질에 대한 진정한 근시적 현실주의(실재론)를 고수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독자들은 근대인들은 세계에 대한 그들의 재현이 수립된 근거가 되는 급진적 구별에 대해 실제로 결코 동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대분할이란 하나의 환상이라고 논쟁할 수도 있다. 라투르가 제안한 최초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17세기 기계론적 혁명 이후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활동은 사물과 인간, 그리고 물질적 효과들과 사회적 관습이 상호 번역의 상황에서 공존하는 점점 더 복잡한 구조의 네트워크 속에서 자연과 문화의 혼합을 창조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 이러한 혼합된 실재들의 확산은 인간과 비인간을 신비롭게 봉인된 두 개의 존재론적 영역들로 분리하는 것을 보장하도록 기획된 비판적 정화의 병행된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해졌다. 짧게 말하면 근대인들은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하지도 않았고 그들이 하는 대로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을 전근대인들과 나누는 한 가지는 하이브리드의 생산을 높이도록 그리고 그것을 보다 효과적이게 만드는 동시에 그것이 달성되는 조건을 은폐하는, 이중적 헌법의 존재이다. 전근대인으로서, 그들은 하이브리드들을 개념화하는데 집중했고 그럼으로써 후자가 증식되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한다. 대체로 그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근대적 우주론의 절대적으로 예외적인 본성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데, 사실 라투르는 주저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원론이 모순되는 관행을 가린다고 해서 과학의 조직에서 이원론의 지시적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민족학이 묘사하고 해석하는 대부분의 민족들이 그것 없이도 완벽하게 잘할 수 있다는 반대편으로부터 끊임없는 영감을 얻는다는 사실도 무효화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으로 나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민족학에 대한 이런 관점의 변형하는 효과인데 왜냐하면 여기에서 그 환상의 창조가 가장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과학사회학자는 만약 그가 인간과 비인간이 각기 다른 영역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라투르로부터 비판받게 될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대상의 한 차원에 충실할 것이다. 반대로, 마쿠나족과 차웅족이 그러한 이분법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민족학자는 그가 연구하는 이들의 생각을 배반하는 것이다.

한동안 대분열이라는 개념이 언론에 좋지 않게 보도된 것을 알고 있다. 민족학은 영국의 기능주의와 북미 문화주의의 결합된 영향을 받아 19세기의 거대한 진화론적 도식에서 벗어난 이후, 비근대인의 마법, 신화, 의례를 과학적 사고의 전조 또는 과학적 사고를 향한 서투른 시도와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통제를 확실히 하기 위한 시도 둘 다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하고 그럴듯한 그리고 동시에 형태는 기괴하지만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인류의 생리적, 인지적 제약의 보편성에 대한 표현으로 보아왔다. 그 목적은 좋은 감각, 관찰력, 속성 추론에 대한 재능, 독창성과 수완이 모두 동등하게 공유되는 인간 유산의 일부임을 보여줌으로써 원시인/원주민을 둘러싼 편견의 안개를 걷어내고자 한 것이었다. 그 결과, 이제 제국주의적 오만, 초기의 인종주의, 과거에 대한 고집스러운 향수, 악의적이고 퇴행적인 사고의 부활, 역사의 망각에 즉시 맡겨야 하는 구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과 루시앙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의 유령에 합류해야 한다는 고발을 스스로에게서 발견하지 않고는 우리와 타자 사이의 차이를 언급하기 어렵게 됐다. 나는 특정 시기에 오랫동안 야만인으로 여겨졌던 민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타자성을 개념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에 종속되지 않았다고 선언하는 것이 유용했을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이 주장은 인간 조건의 통일성과 모든 다양한 문화적 표현의 동등한 존엄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용할 때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수천 개의 문명이 그 비전에 대한 모호한 암시를 얻은 방식을 판단하는 기준의 가치를 세계에 대한 우리 자신의 비전에 계속 부여하기보다는 우주론의 일반적인 문법 내에서 하나의 특별한 사례로 우리 자신의 이국주의를 위치시키려고 노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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