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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스웨덴 특파원이 들려주는 슬기로운 외국살이

[일희일비(日喜日悲) 스톡홀름 Life] 바사 박물관에 가야하는 3가지 이유 (현재 기준)

작성자
Yeonju
작성일
2025-07-16 00:46
조회
37

     스톡홀름의 7월은 휴가철이라 어디를 가나 사람이 거의 없고, 문을 닫은 가게도 많다. 어떤 곳은 마치 촬영이 끝난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바 박물관, 스웨덴의 자유랜드라 할 수 있는 그뤤란드, 민속촌 같은 스칸센이 있는 유르고든은 이 시기만큼은 오히려 전 세계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관광버스 여러 대에서 내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곳은, 스톡홀름의 여름 분위기와는 다르게 활기가 넘친다.

(참고로 인구밀도를 국가 단위로 보면 제곱킬로미터당 한국은 531명, 스웨덴은 25명이다. 수도 기준으로는 서울은 16,000명, 스톡홀름은 5,200명이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장소는 이 유르고든에 위치한 바사박물관이다. 바사박물관은 17세기에 단 20분만 항해한 후 첫 항해에서 침몰한 스웨덴 군함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400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연간 방문객 수가 가장 많은 관광지(약 120만 명, 참고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약 400만 명)에 속한다.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나의 시선으로 보자면, 세 가지 이유로 정리해볼 수 있다.

  1. “우리 거북선보다 나은가 보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간다.

  2. “뭐라고? 20분만 항해하고 침몰한 배를 이렇게 전시해?”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3. 복원에 사용된 재료 중 일부 밧줄이 우리나라 부산에서 왔다고 한다.


     거북선과 비교해보자면, 거북선은 실제 전쟁에서 사용된 실전용 배였다. 반면 바사호는 대포를 2층으로 올리도록 설계 변경이 있었던 점에서 전쟁 목적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화려하고 무거운 장식에서 보이는 것처럼 메세지 전달의 목적이 더 크다. 구스타브 2세는 유럽의 변방이었던 스웨덴을 강대국처럼 보이게 하고자 상징적으로 이 배를 건조하였다. 선조대왕이 거북선에 조각을 넣고 색칠을 했다면, 당시 이를 보여줄 대상이 일본뿐이었다면, 구스타브 2세는 발트 연안, 북유럽, 폴란드, 발트 3국, 독일 등 강국들과 경쟁할 의도가 더 컸다. 그런데, 스톡홀름 시민들이 환송하는 가운데 출항한 바사호는 단 20분 만에 강풍을 맞고, 1층 포문으로 물이 들어와 배가 뒤집히며 침몰했다. 바사호 같은 배를 건조하려면 100년 넘은 나무 1,000그루가 필요했기에, 강한 왕권을 가진 당시의 유럽 군주라면 가능한 일이었다.(다음 주에 직접 확인하려고 아껴둔 내용인데, 2층에 “왕은 신으로부터 전쟁에 참여할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식의 문구가 있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잠시 겹쳐 떠오르기도 했다.)


     두 번째 이유로,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실패에서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바사박물관은 그 대표적 결과물이다. 출항하자마자 침몰한 실패를 복원하고 전시하며, 왜 침몰했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한다. 설계의 문제뿐 아니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치적 압력과 일정을 감안하지 않은 결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복원 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와 그 해결 방식도 전시되어 있어, 실패를 숨기지 않고 학습의 기회로 삼으려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개인과 교육, 기업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회사에서는 실패한 의사결정을 마치 유체이탈한 듯 냉정하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처음엔 당황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기는 한다. 우리나라처럼 “다 내 탓이다” 하는 문화는 겸손이라는 미덕이 있지만, 반대로 잘되면 “내 덕이다”라고도 생각하기도 하니깐. 어느 것이 옳다기 보다는 현재 내가 사는 시대에 스웨덴과 한국사회에서 실패와 성공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바로 “부산에서 온 밧줄이에요”라는 말이다. 10년 전, 바사박물관을 15분 정도 둘러보며 들었던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들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복원율이 96%에 달하는 이 배에서 4% 남짓한 부품 중 하나로 부산에서 만든 밧줄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자긍심을 느낄 만하다. 얼마나 정밀하게, 꼼꼼하게 재료를 선별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박물관을 차근차근 공부해보자는 마음으로 연간 회원권을 끊고 매주 방문하고 있다.(참고로 스웨덴 대부분의 박물관은 2회 방문 입장권보다는 연간회원권이 더 저렴하고, 회원을 대상으로 특별한 전시회나 행사도 많다. 얘를들어, 바사박물관은 10월에 포츠머스로 해군을 주제로 한 1박2일 여행 프로그램) 실내 온도가 15도로 유지돼 꽤 추워서, 한 시간 정도 보고 나면 야외 카페로 나가 20% 할인받은 커피를 마시며 오늘 본 장면들을 곱씹어본다.


참고로 짧게 당시 상황을 정리하면, 유럽은 구교와 신교 간의 30년 전쟁이 한창이었다. 구교를 믿었던 폴란드 왕은 스웨덴 왕위에서 쫓겨났고, 신교를 믿는 구스타브 아돌프 2세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구스타브 2세는 전쟁터에서 새로운 설계를 요구하며 일정 준수를 명령했고, 여름날 시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출항한 바사호는, 출항 20분 만에 강한 바람을 맞고, 열린 포문으로 물이 유입되면서 침몰했다. 

https://www.vasamuseet.se/besok/audioguide/koreanska (박물관 공식 사이트 한국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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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17 23:19

    구스타브 2세는 아름답고 화려한 오페라 하우스 연재글에도 등장했던 왕이 아닌가요. 연주쌤의 스톡홀름 이야기를 통해 스웨덴의 역사까지 공부하게 되네요.
    바사호 복원에 사용된 밧줄이 우리나라 부산에서 갔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바사 박물관과 바사호의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