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애니미즘

만물에 깃든 영을 보다 

 

[최종에세이] 신의 성스러운 심장, 겨우살이

작성자
오켜니
작성일
2024-07-17 17:47
조회
180

동화인류학 최종 에세이/24.07.18/최옥현

 

신의 성스러운 심장, 겨우살이

 

  겨우살이는 황금 가지라고 불리는 나무 기생식물이다. 또한 황금 가지는 프레이저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숲이 겨우살이를 지켜주고(신록 때문에 봄가을까지 겨우살이를 찾는 것은 힘들다) 어두운 계곡이 그늘을 만들어 그녀()를 보호해준다. 두 마리의 비둘기를 동행해야만 찾을 수 있는 나무이며 죽음에 대항하여 부활과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 겨우살이이다.

  약초꾼들의 겨우살이 채취 모습을 담은 영상을 유투브에서 찾아 보았다. 그들은 눈에 발이 푹푹 빠지는 해발 1300m의 겨울 산을 오르며 겨우살이를 찾아 길 없는 곳을 헤매인다. 겨우살이는 해발 700m 이상에서 자라는데 헐벗은 가지들 사이로 난 푸른 잎은 경탄을 자아낸다. 모두가 잠든 설산에 겨우살이의 가지만이 푸른 생명력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런 장면을 보니 고대인들이 왜 겨우살이를 숭배했는지 절로 이해가 된다. 이것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20-30m 참나무(또는 물오리나무, 밤나무, 팽나무 등)의 제일 높은 가지까지 기어올라 기다란 장대를 사용해야 한다.

 

수많은 이야기와 상상력으로 만나는 겨우살이

 

  드루이드들(갈리아인들이 자신들의 마법사에게 붙인 이름)은 겨우살이와 그것이 기생하는 나무인 참나무를 더없이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참나무는 이들에게 성목이며 참나무의 잎이 없이는 그 어떤 종교적인 의식도 행하지 않았다. 드루이드 교도들은 겨우살이를 신이 선택한 나무의 징표로 여겨서 겨우살이가 기생하고 있는 나무를 신성시했다. 사람들은 겨우살이가 천둥처럼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오랫동안 믿었다. 사실 새들이 나무 가지를 옮겨다니며 씨앗을 뿌려 놓은 것이지만 겨우살이가 무엇보다 더 하늘에 가깝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천둥을 타고 겨우살이가 내려왔다고 생각했다. 겨우살이 열매는 끈끈한 점액으로 구성되어 있고 새가 먹다 흘린 (씨가 포함된) 점액은 다시 나무 줄기에 붙어 다음 해의 발아를 기다린다.

  참나무에서 겨우살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지만, 겨우살이가 발견되면 그들은 호화찬란한 종교 의식에 따라 그것을 따 모은다. 이 종교 의식은 높은 겨울 설산에서 행해졌을 것이다. 이들은 한 번도 뿔이 묶인 적이 없는 두 마리의 흰 소를 끌고 온다.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는 일하는 용도로 한 번도 쓰이지 않은 어린 소가 필요하다. 흰 법의를 입은 사제가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황금 낫으로 겨우살이를 베어 내면 밑에서 흰 보자기로 신성하게, 땅에 떨어지지 않게, 그것을 받는다. 그리고 겨우살이 선물을 내려주신 신에게 이 약초가 효능이 있게 해달라고 기원하면서 소를 죽여 제물로 바친다.

  신이 준 소중한 겨우살이 선물에는 여러 가지 금기가 정해진다. 겨우살이를 채취할 때 쇠붙이를 사용해서도, 또한 채취한 것이 땅에 닿으면 안 된다. 영상을 보면 둘 다 너무 어려운 일이다. 쇠붙이를 사용하지 않으려면 나뭇가지 끝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나무 꼭대기로 갈수록 나뭇가지가 얇아져 사람이 나무에 매달려 있을 수가 없다. 금속을 안 쓰는 일은 거의 채취자의 목숨을 거는 일 같아 보인다. 쇠붙이를 사용하는 것은 이 식물이 가진 미덕(효과)을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쇠의 날카로움과 신성한 식물은 병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신성한 것이 땅에 닿으면 더러워진다는 생각도 한 것 같다.

  오랜 시간 여러 민족들은 겨우살이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겼다. 병의 징후가 심각한 자, 만성 질환의 치료, 독의 해독, 사춘기 아이들의 정신 질환, 간질, 저혈압, 혈관 확장, 강심제로 사용했다. 그리고 가축과 여자들에게 수태를 시키는 힘이 있는 식물로 여겨졌는데 이는 겨우살이를 참나무에서 모습을 드러낸 신의 전지전능한 씨앗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항암, 고혈압, 신경통, 관절염 치료에 쓰이며 독성이 없어 차로 우려 마신다.

  겨우살이가 천둥에서 왔다거나, 신의 전지전능한 씨앗이라서 만병통치약이라거나, 고대인들이 생각했던 겨우살이의 효과 등은 과장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겨우살이가 참나무의 수액을 빨아먹으며 천천히 자라는 대신 오래 사는 것, 자신의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끈끈한 점액을 갖는 열매로 진화한 것, 추운 겨울에 초록 잎들이 다 떨어지고 난 후 그 모습을 아름답게 드러내는 점(겨울을 나야 하는 새들에게는 얼마나 일용할 양식일지!)을 생각해보면 고대인들의 과장이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수많은 이야기와 상상력으로 겨우살이를 찬양하는 그들의 감성이 놀라울 뿐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눈 뜬 장님이요, 흙이 쩍쩍 갈라지는 메마른 들판과 같은 마음의 소유자들이다.

 

초대받지 못한 작은 겨우살이와 장님 호드르

 

  프레이저가 쓰고 있기를, ‘그들은 모든 것이 활동을 멈춘 겨울에도 신적인 생명력은 여전히 겨우살이에 남아 있다고 여겨 이 식물을 찬양했을 것이다……그래서 신이 살해되어야 했을 때 먼저 겨우살이를 베어 버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참나무의 성스러운 심장인 겨우살이가 도려내지는 날에는 참나무도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겨우살이는 재생의 상징이 되었다. (자크 브로스, 나무의 신화, p118)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에 겨우살이의 황금 가지를 꺾는 행위가 사제를 죽이는 역할을 했던 것처럼 발데르 신화에서도 겨우살이는 발데르를 죽이고 라그나뢰크(우주의 재난)를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베어 버려야 재생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위험을 감지한 프레가는 아들 발데르(오딘과 프레가의 아들)를 지키기 위해 모든 만물에게 발데르를 해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 낸다. 신들은 재미 삼아 발데르를 높은 장소에 세워 놓고 그에게 화살을 쏘거나 돌과 창을 던지면서 놀았다. 이 장면을 본 라우페의 아들 로키는 발데르가 상처를 입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 아직은 작고 약한 관목이어서 초대받지 못한 겨우살이를 꺾어 발데르의 친형인 장님 호드르에게 던지라고 전해준다. 호드르 또한 눈이 멀어 이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호드르는 겨우살이를 손에 쥐고 로키가 말해주는 방향으로 그것을 던지자 발데르는 그 나뭇가지에 몸이 꿰뚫려 땅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역시나 기존 질서를 흔드는 것은 놀이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처럼 말이다. 오딘의 아들 발데르는 신의 씨앗인 나무의 겨우살이에서 태어났고, 발데르와 같은 불사의 성목을 쓰러뜨리고자 할 경우 반드시 겨우살이의 가지를 꺾어야 했다. 세계는 혼란을 겪고 나서 발데르와 호드르는 다시 부활하는데 그 세상은 아름답고 푸른 바다에서 탄생한 새로운 땅으로서 씨를 뿌리지 않아도 열매가 자라는 그런 곳이었다.

  고대인들에게 신화는 과학이며 철학이며 종교이자 윤리였다. 그들은 신이 내린 선물에 황소 제물을 바치며 기뻐했다(종교). 겨우살이가 천둥에서 유래했다는 생각은 겨우살이 생명의 근원을 찾는 일이었다(과학). 우리가 겨우살이 열매의 점액이 끈적해서 씨앗을 나뭇가지에 붙인다거나, 새가 그 씨앗을 퍼뜨린다고 아무리 말해도, 겨우살이가 최초에 어디서 왔는지는 밝히지 못한다. 병의 징후가 심각해 보이는 사람, 여성들과 가축의 임신에 겨우살이를 사용한 것은 그들의 윤리였다. 그들에게 선함은 낳아 기르는 것에 있었다. 겨우살이의 황금가지가 오딘의 아들 발데르를 죽여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악을 거쳐 다른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은 그들의 철학이었다. 그만큼 겨우살이는 그들에게 소중한 식물이었다.

  마지막 영상에 피디가 약초꾼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소득 없이 산에서 돌아오다가 약초를 발견하시면 어떤 기분이세요? 나는 대박이죠, 뛸 듯이 기쁘죠이런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약초꾼은 산신령에게 바로 감사를 드린다고 말한다. 의례의 형식이 바뀌었을 뿐 우리의 마음은 늘 생명의 근원에 감사하고 있었다. 우리 현대인들도 고대인들처럼 더 열렬히 감사해야 한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