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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

만물에 깃든 영을 보다 

 

[동화 인류학] 근원을 상상하다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4-07-24 18:04
조회
139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알고 경험하며 산다. 하지만 파악되는 그 세계는 날로 작아지는 것 같다.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조응에서 디지털화로 소통이 빨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점점 보이지 않는 세상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손편지 쓰는 일을 예로 들었는데, 펜과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편지를 곱게 봉투에 넣고, 닿을 곳의 주소를 적어 우표를 붙이고 발송한다. 편지를 받는 사람을 상상하고 다시 돌아올 답장을 기다린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거북이 소통은 시간 낭비로 여겨지고 우리는 물질에 스며든 의미나 돌아올 편지의 여정을 상상하는 일과는 멀어지고 있다. 우리는 동화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상상하는 만큼보이지 않는 세계가 열린다.

<동화 인류 연구회>에서 배운 내용을 돌아보면 동화는 무문자 사회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만물의 동등함을 사유하며 어떤 자기도 고집할 수 없는 이야기,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도무지 환상 같고 연기 같은 이 세계가 뒤죽박죽 얽혀있어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화적 상상력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읽다보면 안보이던게 보이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문자 사회에서 인류는 죽음 이후를 사유하며 영이라는 존재를 만들었다.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영의 세계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애니미즘을 발전시켰다. 만물에 영이 있다는 애니미즘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다. 원시 문화에서 사람들은 어째서 만물이 내면에 힘을 가진 영(활력)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했을까? 근원적인 힘을 상상할 때 어떤 보상이 따른다는 목적적인 이유는 아닐 것 같다.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땅에서는 풀이 부쩍부쩍 자라다 시들고 다시 자라는 생동하는 장면을 보며, 자연이 살아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순환의 고리에서 만물은 서로에게 힘을 주고받고, 세계는 작동된다. 어느 순간도 자기로 점철될 수 없을 것 같은 애니미즘의 세계는 무척 분주해 보였다.

자크 브로스의 나무의 신화는 살아있는 영혼을 가진 나무의 신화를 이야기한다. 책은 이그드라실, 물푸레 나무의 신화로 시작하는데 이 나무는 우주의 축으로 세 개로 나누어져 있고 또 얽혀있는 세계를 표현한다. , 거인, 사람, 짐승을 보호하고 탄생과 죽음, 그리고 재생하는 순환을 상징한다. 이 세계는 강력하고 만물이 상호 연결 속에서 작동되지만, 때로는 위협을 받는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우주목은 우주의 구성체와 인간이 이 우주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설명하고 있는 신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풍부하며 보편적인 상징’(31)으로 우주에 생기를 부여하는 생명의 통로이고, 세계를 감지할 수 있게 한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신성함은 유일신으로 대체되었고, 이제는 그 의미마저 흐릿해져 신성을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고대 인류는 거대한 이 우주목을 숭배하며 만물의 근원을 끊임없이 사고했다.

근원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뒹구는 돌에서, 보도블럭 사이로 비집고 고개를 든 풀에서 보이는 것에 감추어진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살 게 되는 걸까? 충만한 자의식에서 머무를 겨를도 없이 내가 할 일을 노력하고, 조금 겸손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쉽게 시간상 숙제를 끝내야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 더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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