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4/10)
거북이 잉글리쉬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의 번역입니다. 오선민 선생님, 이종은 선생님, 이유진 선생님, 최경열 선생님, 최옥현 선생님, 윤연주가 함께 번역했습니다.
□ 책의 목차
Ⅰ. 눈속임하는 자연
1. 연속성의 구성
2. 야생과 길들여진 것 유목의 공간들 / 정원과 숲 / 밭과 논 / 들과 숲 / 목동들과 사냥꾼들 / 로마의 풍경, 허시니아의 숲, 낭만적 자연
3. 대분할 풍경의 자율성 / 퓌시스의 자율성 / 창조의 자율성/ 자연의 자율성/ 문화의 자율성 / 이원론의 자율성 / 세계의 자율성
Ⅱ. 관습의 구조
4. 관습의 스키마 구조와 관계 / 익숙한 것을 이해하기 / 스키마티즘 / 차이화, 안정화, 유추
5. 자기와의 관계와 타인과의 관계 식별의 양식과 관계의 양식 / 타자는 나
창조의 자율성
그리스 사유에서,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남아있다. 그들의 운명은 영원한 우주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며, 우주를 지배하는 법에 대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그들은 우주 안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근대(모더니즘)의 자연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정화의 두 번째 작용이 필요했다. 인간이 자연의 외부가 되어 그것보다 우월해야 했다. 기독교는 인간의 초월성에 대한 관념과 신의 의지에 따라 무로부터 창조된 우주라는 두 측면의 관념과 함께, 이 두 번째 격변에 책임이 있었다. 창조물은 신의 존재와 그의 선함과 완벽함을 증명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와 혼돈되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감상되어서는 안되었다.[*] 그들은 신으로부터 나오지만 신은 그들 안에 있지 않다. 인간 존재 또한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의 중요성은 그 창조의 사건에서 비롯된다. 자연 안에서 그의 자리는 그러므로 다른 것들과 같은 요소의 자리가 아니다. 그는 본성적으로 식물이나 동물과 같지 않고, 그는 물리적 세계에서 초월적이 된다. 왜냐하면 그의 본질과 그의 존재함은 자연을 넘어서는 신의 은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구를 다스리는데 대한 인간 존재의 권리와 소명의 원천은 그의 초자연적 기원에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창조물에 대해 그들의 필요에 맞게 조직하고 배치하는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신은 인간을 창조의 마지막 날에 만들었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권능을 받은 아담이 그의 질서를 자연에 도입할 권리를 받았던 것처럼, 그의 자손들 또한 지구상에 번성함에 따라 모든 곳에서 창조에 대한 지배권을 부여하려는 신의 의도를 구현한다. 그러나 자연은 일시적으로 인간에게 단지 맡겨질 뿐이다. 기독교가 유대교 전통에서부터 물려받은 이상한 개념으로, 옛날 이교도의 관념뿐만 아니라 기록된 민족학과 기록역사학의 대부분의 우주론과 상충된다는 점에서, 현재 세계는 기원뿐만 아니라 끝도 가지고 있다. 창조는 자연이 더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중심 주인공, 말하자면, 신과 인간 영혼, 즉 다른 형태에서의 인간만 남겨지게 될 때 무대 배경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극에서 계속 이어질 잠정적인 장면이다.
중세 시대는 창조론과 그 결과에 대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고대로부터 배운 (일부) 교훈도 간직하고 있었다. 이것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작업이 재발견된 12세기 이후에는 성경 주해와 그리스 물리학의 요소들을 결합하여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수많은 통합을 만들어냈다. 세계의 외부성은 중세를 관통하는 메타포를 통해 명백한 성격을 획득한다. 자연은 모든 다양성과 조화 속에서 신성한 창조의 증거를 해독할 수 있는 한 권의 책과 같다. 초월적 존재인 신은 이런 작업을 통해 오직 불완전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자연의 책은 확실히 성경보다 열등하다. 따라서 세계는 신의 말을 보충하기 위한 주석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읽혀야만 한다. 많은 중세 시대 작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세상)은 교육이 부족하여 성서를 직접 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 때문에 교화의 자료로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성 어거스틴이 “가장 단순한 사람조차도 세상을 읽을 수 있다”라고 선언했다. 이 목가적인 낙관주의가 일부 선교자들에 의해 여전히 선호되고 있다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는데, 일부 선교사들은 그들이 개종시키려고 하는 부족들이 성 바실리아와 성 프란치스코가 축복한 조화로운 자연을 그들의 환경에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는 가장 초기에 형성된, 서양에서 사랑받은 사상 중 하나에서 자연은 보편적으로 자명하고 아무리 야만적이라도 누구나 이것(자연)의 통일성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자연에 대한 책의 주제는 생태 윤리에 대한 특정한 기독교적 관점에서 반영되는 자연 신학의 발전을 지속한다. 창조세계에 나타난 신의 의도의 효과를 탐구하는 이런 종류의 신학은 물론 계시신학의 보조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기초로 삼았던 자연과 신에 대한 지식의 해석을 위한 소중한 보완책이 될 수 있다. 그의 자연 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의존하여 세계를 조직하는데 있어서 최종적 원인(신의 지성)과 효율적 원인(자연적 행위자)의 각각의 효과를 보여 준다. 그는 또한 자연은 우연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것이 궁극적인 원인이 됨에 의구심 없이 그 자신을 헌신한다. 자연물의 형태와 과정이 그 기능에 가장 잘 적응된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것이 증거하고, 아담의 후손이 이 세상 아래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열등한 위계의 생물들을 다스릴 운명임을 모든 것이 또한 지시한다.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동물의 종속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문자 그대로 그러한 지배를 정당화하지만, 신과 인간 사이의 공통된 척도라는 생각도 뒷받침한다. 신의 지성이 생명체 창조의 기원이었음을 감안할 때, 그들(생명체) 중 일부는 이 기능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따라서 우주의 완전성 속에서 신의 설계의 선함을 이해할 수 있음이 적절하다. 따라서 이성과 지식을 부여받은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어 신의 계획에서 비롯된 우월성을 누리며 결과적으로 겸손과 책임감을 요구받는다. 성 어거스틴은 이미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에서 창조세계에서 인간만이 모든 동물 종과 대조되는 독특한 속을 구성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주석의 권위에 힘입어 16세기 신학자들은 인류가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중세는 따라서 그 자체로 무가치함을 증명하지 않았다. 신의 초월성, 인류의 독특성, 세계의 외부성과 함께 메커니즘의 모든 부분이 한데 어우러져 17세기 고전 시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을 발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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