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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5/10)

작성자
오월연두
작성일
2025-05-25 23:10
조회
28

거북이 잉글리쉬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 9시 30)의 번역입니다오선민 선생님이종은 선생님이유진 선생님, 최경열 선생님, 최옥현 선생님윤연주가 함께 번역했습니다. 

□ 책의 목차

Ⅰ. 눈속임하는 자연

 1. 연속성의 구성

 2. 야생과 길들여진 것   유목의 공간들 / 정원과 숲 / 밭과 논 / 들과 숲 / 목동들과 사냥꾼들 / 로마의 풍경, 허시니아의 숲, 낭만적 자연

 3. 대분할   풍경의 자율성 / 퓌시스의 자율성 / 창조의 자율성/ 자연의 자율성/ 문화의 자율성 / 이원론의 자율성 / 세계의 자율성 

Ⅱ. 관습의 구조

 4. 관습의 스키마   구조와 관계 / 익숙한 것을 이해하기 / 스키마티즘 / 차이화, 안정화, 유추

 5. 자기와의 관계와 타인과의 관계  식별의 양식과 관계의 양식 / 타자는 나

자연의 자율성 

 

 근대 우주론의 출현은 미적 감각과 회화 기법들의 진화, 확장되는 세계의 한계, 기계적 기술들의 진보,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던 특정 환경들의 엄청난 지배, 질서와 척도의 보편적인 과학에 대한 유사성들의 해석에 기반을 둔 지식으로부터의 진보가 불가분하게 혼합되는 복잡한 과정으로부터의 결과이며, 이런 모든 것들은 수리 물리학뿐만 아니라 자연의 역사와 일반 문법의 구성을 가능하게 만들어 왔던 요인들이다. 기하학, 광학, 분류학, 그리고 기호학의 변화는 발견들의 축적과 기술들의 완성으로부터 비롯되기보다는 오히려 인류가 세계와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분석적 도구와 맺는 관계의 재구조화로 인해 모두 것이 출현했다. 다시 말해서, 메를로 퐁티Merleau-Ponty의 말을 인용하자면, “자연 개념에 대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과학적 발견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발견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왔던 자연 개념의 변화이다.” 17세기의 과학 혁명은 모든 요소의 행동이 그 부분들과 요소들의 상호작용의 총합으로 간주되는 전체성 내에서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는 기계적 자연 개념을 정당화시켰다. 이것이 일어나기 위해, 경쟁하는 과학 이론들을 무효화할 필요가 없었고, 단지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스콜라주의의 최종원인론을 제거하고, 그것을 신학의 영역으로 격하시키고, 데카르트가 했던 것처럼, 단 하나의 효율적인 원인에 중점을 둔다. 물론, 이것은 여전히 신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신은 순전히 움직이는 힘의 감각에서기하학적인 용어들로 구상된 움직임의 근본적인 원천이자 또한 그것들의 지속적인 보존의 보증인이다신성의 개입은 세상 기계의 톱니바퀴들의 기능에 덜 의존하면서 더 추상적이 되어가고, 이제 그것은 신앙의 신비 또는 관성의 원리에 대한 설명에 국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인 자연에 대한 환상을 거부한 베이컨, 데카르트, 스피노자와 같은 사람들과 더불어, 더 신중한 사고의 경향은 최종원인주의자의 신념과 전반적인 계획에 따라 조직된 자연에 대한 생각에 집착했으며, 전반적인 계획의 이해는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작용을 더 잘 설명해 줄 것이다. 케플러, 보일, 라이프니츠는 균형 잡힌 전체성과 통일성으로서의 자연 개념에 대한 매우 중요한 옹호자들이었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들은 결국에 부폰, 알렉산더 폰 훔볼트, 그리고 다윈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리고 후자 사상가들의 유산은, 궁극적으로, 유기체들의 적응과 생태계의 항상성에 대한 준신의 섭리적인 관점으로 특징지어지는 특정한 종류의 현대 생물학의 목적론적 지향에 의심할 여지 없이 강력하게 이바지했다그러나, 17세기에 기계론적 세계의 지지자들과 유기주의자 세계의 신봉자들 모두에게 자연과 인류 사이의 분리가 받아들여졌다스피노자는 그러한 분리를 거부하고, 인간의 행동을 보편적 결정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현상으로 간주할 것을 촉구하고, 자기지식의 유추에 기반하여 자연의 계획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비난했을 때 자신이 꽤 외롭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다수에 속했던 후자는, 자연적인 효과들이 어떤 신성한 의도에 의해 결정되는 목적에 부합하며, ‘창조의 통치자인 그 사람은 그가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현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고, 영국의 법학자 매튜 헤일이 화려하게 언급한 것처럼 신은 지구의 표면을 아름답고, 유용하고, 풍요롭게 보존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권력, 권위, 권리, 지배력, 믿음과 보살핌에 투자해왔다라고 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제 존재하게 된 것은 자율적인 존재론적 영역, 과학 실험과 조사의 분야, 이용되고 개선되어야 할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개념이며, 그리고 이것에 의문을 제기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연의 개념이 17세기에 그토록 중요해졌다면, 그것은 세상 생명()의 강력한 진동이 지금은 봉인이 해제된 눈에 의해 갑자기 인식되었기 때문이 아닌데, 그 눈은 미래에 그것(세상 생명의 강력한 진동)의 신비를 이해하고 그것의 한계를 정의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그 개념은 다른 것, 즉 인간 본성의 개념과 분리될 수 없는데 전자는 자연의 메커니즘과 규칙성을 식별할 수 있는 장소를 결정하기 위해서 존재의 아주 작은 부분이 분리되어 고정점 역할을 할 때 일종의 핵분열을 통해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보여 준 것처럼, 이 두 개념은 해당 기간에 표현(재현)의 두 차원 사이의 상호 연결을 강화하기 위해 한 쌍으로 기능한다. 첫 번째는 주관적 인상을 바탕으로 질서를 재구성하는 인간 정신의 힘으로 간주되는 상상력이고 두 번째는 유사성, 즉 사물이 소유하고 지식이 질서를 확립하는 작업을 중첩할 수 있는 유사성으로 거의 스케치되지 않은 전체 영역과 함께 생각을 제시하는 속성이다.

그들의 의미의 광범위한 일반성 덕분에, 자연과 인간의 본성은 존재의 유사한 다양성의 끊임없는 끌어당김과 유도 메커니즘 사이의 재조정을 효과적으로 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든 이미지와 추억의 퍼레이드와 함께 깔끔하게 합성할 수 있게 한다. 비인간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것은 알고 있거나 행동하는 주체, 난방이 되는 방에 있는 과학자, 습지대를 배수하는 엔지니어, 공기 펌프를 조작하는 물리학자 또는 콜베르의 숲 관리인에게 할당된다.* 그들은 각각의 관습, 언어 및 종교에 의해 서로 구별되는 특정 집단은 말할 것도 없고 조직된 전체로서 인류의 책임이 아니다. 물론 자연은 인간의 본성과 짝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까지 개념과 분석의 장으로서의 사회의 징후는 없다푸코의 사물의 질서이후, ‘인간이라는 개념의 탄생과 그의 확실함을 탐구하는 과학의 탄생이 유럽문화에서 매우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았고 인류의 역사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의 진부한 표현이 되었다. 또한, 이런 사건들은 서구 인식론(Western episteme)의 거대한 전복으로 18세기 말에 선동되었다는 것도 진부하다. 서구 인식론은 역사적 계열들의 사슬의 연속성 덕분에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조직화된 체계들을 동반한, 정체성과 차이의 전체 네트워크를 동시에 질서화하는 재현의 일반적인 도해를 대체하는 공간의 출현을 목격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다른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생각은 결과적으로 인간 과학은 한때 인간 본성이 차지했던 영역과 어느 정도 유사한, 지금은 휴경지로 남았지만 잘 표시된 어떤 빈 영역에 빚진 것이 없으며,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그곳에 긍정적인 지식의 씨앗을 뿌리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더 효과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결실을 맺으면 된다는 것이다. 요약해서 푸코가 강조한 선언을 인용하자면 철학이 없다. 도덕적 또는 정치적 선택이 없다. 어떤 종류의 경험적 과학이 없다. 인체의 관찰이 없다. 감각과 상상 또는 열정의 분석이 없다. 17세기에는 인간 같은 어떤 것과 마주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 과학의 지층(바탕)에 관한 푸코의 고고학적 연구의 결과들은 너무 잘 알려져서 더 이상의 언급은 불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연구와 관련 있는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사회라는 개념이 조직화된 총체로서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그러한 개념이 자연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설정될 수 있었다면, 각각의 개념의 기원과 그것들이 결합할 수 있는 운영 영역 내에서 점진적인 성숙과 함께 그 짝지워진 불연속성을 통해 가능해진 현실의 일견(곁눈질, 힐끗 보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권에서 어떻게 공유될 수 있었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길고 예외적인 다중의 필터링과 파열의 과정의 결과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루소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레비스트로스Lévi-Strauss가 근대 민족학의 예견에서 그에게 중요한 역할을 주었다는 것을 안다. 그는 불평등의 기원에 관한 담론의 저자(루소)가 인간 사이의 공통 속성을 더 잘 발견하기 위해서 그들 사이의 차이점을 관찰하라고 권고함으로써 아직 탄생하지 않았던 과학의 방법을 예견했다고 평가했다. 레비스트로스는 또한 루소는 자연과 문화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돌이킬 수 없는 분리가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 모든 형태의 생명, 심지어는 비천한 것조차도 동일시하도록 승인하고 격려하는 것에 대한 향수적이고 종종 절박한 탐구로 보면서 루소의 프로그램이 자연과 문화의 관계에 대한 문제의 구체적인 조사에 기초했다고 선언했다. 그것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구조인류학 창시자의 호전적인 루소주의는 계몽주의 사상에서 20세기 인류학이 그대로 이어받은 자연과 사회 사이의 이원론의 시작을 추출하려는 시도로 간주될 수 없다. 결국 루소의 견해에 따르면, 시민의 집합은 근대 사회학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회, 즉 개인보다 우월하고 외부적인 단위로서, 그것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욕구와 목표가 다른 도덕적 실체, 즉 개인들의 욕망의 합보다 더 크고 다른 어떤 것에 해당하는 특정한 사회적 집단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자율적 전체를 구성하지 않는다. 게다가, 뒤르켐은 유기적 통일성을 고려한 사회적 존재에 의해 결정되는 집단적 효용에 대한 자신의 개념과 루소가 표현한 공동의 이익과 비교했을 때 이에 대해 실수하지 않았다: “평균적인 개인의 이익은 공동체의 각 구성원에게 유용한 것이 무엇이든 추가함으로써 일반 의지에 구체성을 부여했다. 뒤르켐의 초월적 사회와 사회 계약에 의한 합법적 조건이 명시된 협약에 의해 상호 구속된 개인들의 집합체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와 강조점이 다른 것 이상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새로운 종류의 존재론적 실체이고, 그리고 이것은 루소의 사회적 연결에 대한 이론이 레비스트로스처럼 루소가 감정과 미덕의 개념에 대한 그의 옹호에 부여한 힘 뒤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에 대한 독창적인 사고방식을 발견했던 사람들에게 비옥한 유비의 원천을 제공하더라도 루소에게서 그것의 약속이나 예시를 찾는 것은 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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