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7/10)
거북이 잉글리쉬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의 번역입니다. 오선민 선생님, 이종은 선생님, 이유진 선생님, 최경열 선생님, 최옥현 선생님, 윤연주가 함께 번역했습니다.
□ 책의 목차
Ⅰ. 눈속임하는 자연
1. 연속성의 구성
2. 야생과 길들여진 것 유목의 공간들 / 정원과 숲 / 밭과 논 / 들과 숲 / 목동들과 사냥꾼들 / 로마의 풍경, 허시니아의 숲, 낭만적 자연
3. 대분할 풍경의 자율성 / 퓌시스의 자율성 / 창조의 자율성/ 자연의 자율성/ 문화의 자율성 / 이원론의 자율성 / 세계의 자율성
Ⅱ. 관습의 구조
4. 관습의 스키마 구조와 관계 / 익숙한 것을 이해하기 / 스키마티즘 / 차이화, 안정화, 유추
5. 자기와의 관계와 타인과의 관계 식별의 양식과 관계의 양식 / 타자는 나
진화론의 실패로 흔들렸지만 단일한 형식의 문화라는 개념은 20세기 민족학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보아스Boas와 스스로 거리를 둔 크로버Kroeber가 문화의 특유한 특성을 특정한 종류의 ‘초유기적’ 실체, 즉 개별 존재를 초월하고 그들의 방향을 정의함에 따라 형태를 갖춘 본질(hypostasis)로서 정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프랑스와 영국 인류학에서 문화는 인류 전체의 독특한 속성으로 계속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은 뒤르켐 학파의 우세와 이것이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라는 개념의 탁월성 때문에 거의 지하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 ‘문화’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실제로 보아스 추종자들의 특수주의와 상충되는 비성찰적인 신념이었으며, 보편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특정 표현들의 다양성을 뒷받침하는 문화의 통일성을 설명할 수 있는 규칙성과 불변성을 인간 조건에서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어 왔다. 이러한 열망의 표현은 다소 설득력이 없는 말리노프스키Malinowski의 ‘문화에 대한 과학적 이론’, 인류학을 과학 법칙의 연구 분야로 정의하려는 래드클리프–브라운Radcliffe- Brown의 주장, 그리고 또한 레비–스트라우스가 선포한 ‘질서의 질서’의 과학을 위한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이 마지막 프로젝트는 자연과 구별되는 독특한 실재로서, 인류의 기원 조건이자 무궁무진한 유추의 원천과 함께 상징적 사고를 제공하는 자율적인 존재론적 영역인 문화의 두 가지 개념이 레비–스트라우스Levi-Strauss의 철학적 훈련과 계몽주의의 합리주의에 대한 애착에서 어느 정도 유래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미국에서 보낸 시간과 보아스와의 친분으로 인해 그는 상대주의의 교훈, 즉 도덕적 척도나 통시적 계열에 따른 문화의 위계 설정을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주의를 기울였다.
(단일형의) 문화 개념의 많은 부분이 자연의 반대로부터 파생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반면에 (복수형의) 문화는 그 자체와의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문화가 발달한 환경이 분명히 그 문화에 부여된 특수성에서 중요한 차원을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문화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자연에 적응하는 방식은 우리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며 언어, 의례 체계, 기술 또는 테이블 매너보다 더 정당하거나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따라서 문화의 총체적인 개념은 그 자체로 자연을 자동적인 대응물로 소환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에서 시작되어 북미에서 발전한 이것은 인류학에 특화된 용도로 보급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 현실에 맞서 자율성을 획득하는 환원 불가능한 총체로서의 문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던 인식론적 정화 작업의 이유로 현대 이원론을 공고히 하기 위한 개념이었다.
이 아이디어의 기원은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의 각각의 방법과 대상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던 격렬한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 실증주의 자연주의와 마찬가지로 이상주의 철학에 맞서 싸웠던 역사가, 언어학자, 그리고 철학자들은 인문학이 물리학, 화학, 그리고 동물생리학만큼이나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엄밀한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확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불과 20년 만에, 이 질문에 대한 여러 기본적인 텍스트가 발간되었다. 이것주 첫 번째는 ‘법칙을 생산하는 과학’과 역사적 우연성의 산물로서 현상의 개별성을 집착하는 ‘역사 과학’를 구분한 『언어학의 원리Principien der Sprachgeschichte』(1880: 영어 번역판 1890)였다. 두 번째 문헌은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가 ‘이해’에 따라, 즉 공감을 통해 역사적 행위자의 구체적인 상황을 재현하는 연구자의 경향에 따라 진행되는 인문학(Geisteswissenschaften)에 반대하여 자연과학을 설정한 유명한 『정신(인간)과학 입문 Einleitung in die Geisteswissenschaften/introduction of human sicences』(1883: 영어 번역판 1989)이다. 세 번째는 빌헬름 빈델반트Wilhelm Windelband가 몇 년 전에 오토 리프만Otto Liebmann이 제안한 구분을 발전시켜 자연과학의 보편 법칙적 방법과 역사과학의 개별 사례 방법 사이의 대조를 확립한 『역사와 자연과학Geschichte und Naturwissenschaft』(1894: 영어 번역판 1980)이라는 논문이었다. 아마도 심지어 보아스도 이 인식론적 논쟁에 포함시켜야 될 텐데, 왜냐하면 1887년에 그는 『지리학 연구The Study of Geography』라는 제목의 짧은 에세이를 썼는데, 이 글에서 그는 한편으로는 객관적인 통일성을 가진 현상을 연구하는 물리학자(하이델베르크에서 그의 첫 배움은 물리학이었다)의 방법과 다른 한편으로는 주관적인 방식으로 연결이 성립되는 현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우주론자(여기서 알렉산더 본 훔볼트가 그의 모델이다)의 방법 사이의 대립을 설정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리케르트는 특히 그의 『문화과학과 자연과학Kulturwissenschaft and Naturwissenschaft』(1899; 영문판은 1962)에서 그것들(과학)의 각각의 방법과 대상들을 최고의 논리적 엄밀함으로 구별한 과학의 가장 완전한 분류를 만들었다. 좌우간, 이것은 리케르트의 동시대인인, 무엇보다도 그의 친구 막스 베버뿐만 아니라 하이데거부터 하버마스에 이르는 위대한 20세기 독일 철학자들에게까지 최고로 뚜렷한 영향력을 행사한 분류였다. 애초에, ‘문화의 과학’이라는 표현을 그 시대의 더 일반적인 표현, 즉 ‘마음의 과학’으로 대체하는 것은 리케르트에게 맡겨졌다. 이것은 단순히 용어적인 것 이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마음의 과학’이라는 표현은 딜타이의 경우에서처럼 마치 인문학이 우리에게 자연과학의 대상들이었던 사물들과 무관한 것으로 우리에게 제시된 본질적 실체인 것처럼 (이것이) 정신적 삶으로서만 혹은 현상의 영적인 측면만을 다루도록 제안하는 것처럼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다. 훌륭한 칸트주의자로서 리케르트는 우리가 각기 다른 영역으로의 연속체의 분할은 오직 우리가 그것에 적용하는 지식의 방식과 우리가 선택하는 특성들의 결과를 따라 일어나는 이질적인 연속체로서의 현실을 살아가고 인식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는 우리가 그것을 보편적 측면에서 상상할 때는 자연이 되고, 우리가 그것을 그 특정하고 개별적인 측면에서 검토할 때는 역사가 된다. 따라서, 오히려 보편 법칙적인 접근과 개별적 접근을 구별하는 것보다, 우리는 모든 과학적 활동을 하나로서 그리고 같은 것으로서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활동이란 그 자체로 독특하지만 두 개의 다른 방법론을 따라서 그렇게 하는(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두 개의 방법이란 (1)자연과학의 전형적인 방법인 일반화와 (2)문화과학의 특권인 개별화이다. 이것이 왜 심리학이 자연과학에 정당하게 속하는지에 대한 이유인데, 심리학은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듯 인간 행동에 접근하는 특권적 수단을 구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자연과학에서는 정신의 기능을 지배하는 보편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니 어떤 기준을 갖고 우리가 세계의 분화되지 않은 충만한 풍요로움 안에서, 일반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을 식별하고, 반대로 그것들의 독특성으로 사물을 축소시킬 수 있는 것을 구별할 수 있을까? 리케르트의 답은 문화과학이 인류 전체 또는 적어도 한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의미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즉, 과학적 처리의 관점에서 보면, 문화적 과정이 자연적 과정과 구별되는 것은 가치와의 관계에 달려 있다.
리케르트는 한편으로는 일반 법칙에 따라 존재가 결정되는 의미 없는 대상와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에 부여된 우발적 가치 덕분에 그것들의 모든 개성을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을 구분함으로써, 존재론적 이원주의의 기초에 타격을 입혔다. 대부분 모든 실재는 그것이 그것의 야만적이고 완고한 사실성으로 고려되는지 아니면 그것을 의도적으로 생산하거나 보존해왔던 사람들이 투자한 욕망과 사용의 관점에서 고려되는지에 따라 그 측면 중 하나 또는 다른 측면을 통해 파악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두 가지 조사 분야와 지금은 완벽하게 이질적인 두 개의 이해 방식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인식론적 분리를 초래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러한 분리는 세계의 개체들을 두 개의 독립적인 명부의 존재로 단순히 분류하는 것보다 더 깨기 어렵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는 더 이상 초월의 급진적인 불연속성이나 세계의 기계화로 인한 파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과 문화는 우리가 객관화하기로 선택한 방식에 따라 구별되며 그것들이 구별되는 것은 우리의 눈에만 있는데, 왜냐하면 이런 ‘자연과 문화의 대립은 두 그룹의 실제적 대상 사이의 차이를 지칭하는 한에서 다양한 과학의 분류와 구분의 실제적 기초이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대립은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물들 사이의 구별을 가능하게 만드는 배치에 의해 구축되며, 인간 과학이 기원에 대한 추측을 버리고 경험적 탐구를 선호하고 긍정적 지식을 축적하면서 그 정당성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기 시작함에 따라 점점 더 효과적이 될 메카니즘이다. 이것은 여기에서 리케르트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들처럼 Naturvőlker(원시 사람)의 연구를 자연과학으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가 세운 일반적인 원칙은 20세기 인류학이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적 실재를 연구하는 것과 반대로 문화적 현실을 연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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