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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동화 인류학_채식주의자] 나무와 피

작성자
콩새
작성일
2024-11-25 16:49
조회
48

 동화 인류학<채식주의자>


                                   나무와 피


                                                           2024.11.25. 정혜숙


  영혜에게 육식에 대한 저항은 폭력에 대한 저항이기도 합니다. 어릴적 영혜에게 폭력을 저질렀던 영혜의 아버지는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에게 고기를 권하며 다시 폭력을 가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과 아버지는 마치 폭력을 도모하기로한 단체에서 빠져나가려는 일원을 제압하기 위한 폭압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단호한 영혜는 스스로  자신의 잠재적 폭력성을 내려놓는 의미로서의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꿈을 꾼 뒤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는 아버지와의 대치 끝에 자신이 동물이 더 이상 아님을 피를 쏟음으로서 선언합니다. 자신의 손목을 과도로 그어버린 행동으로 쏟아진 따끗하고 끈적한 검붉은 피는 영혜 자신의 몸을 동물에서 식물로 바꾸는 과정으로 보여집니다. 그렇게 영혜는 한 발 더 식물에 가까워진 듯 합니다. 나무가 되고 싶은 영혜. 자신을 식물로 인식하는 영혜는 바람이 일어야 겨우 움직이는 나무처럼 말 수가 적습니다. 식물처럼 광합성으로 생을 지탱하려 하지만 영혜는 동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게 무엇이든 먹어야 생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로 태어났다고 동물을 주식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동물성을 주식으로 하지 않는 동물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특히 영혜는 피가 낭자한 꿈을 꾼 이후로 육식을 거부합니다. 꿈꾸는 식물처럼 잠자는 영혜는 식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영혜는 동물로서 먹어야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운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세상과 거리를 둘 수록 영혜는 천천히 나무가 되어 갑니다. 단단하고 조용하게 굳어져 갑니다. 먹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 영혜는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영혜에게는 더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왜 죽으면 안되는지를 언니에게 묻는 영혜의 질문에 그럴듯한 대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왜 죽으면 안될까요?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한다는 말 밖에……

  영혜의 몽고반점은 식물의 꽃잎처럼 살아있습니다. 나무가 되어가는 그리고 죽어가는 그녀의 몸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을 발견한 사람은 언니의 남편입니다. 그는 영혜의 몽고반점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영상으로 담으려는 비디오 작가입니다. 아내와의 대화 중 우연히 알게 된 영혜 몸에 남아있는 몽고반점. 그 작고 푸른 몽고반점은 거의 말라 죽어가던 그의 상상력에 불씨를 띄웁니다. 하지만 그의 욕망은 가족 관계를 파멸로 이끌고 맙니다. 하지만 영혜는 자연이 응당 그러하듯 다른 꽃과 식물이 번식하듯 다른 개체와 한 몸이 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영혜에게 그 대상이 누구인지 특정하는 것은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식물계의 번식은 선택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식물의 번식은 벌, 바람, 새, 비, 사람 모든 자연 현상들에 의해 벌어질 뿐입니다. 주로 수동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식물의 번식과 동물 번식의 차이로 보이기도 합니다.   

  영혜는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로 규정하면서 능동적 행위자로서의 폭력성을 내려놓은 듯 보입니다. 누군가 말을 걸기 전에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배고품에 음식을 취하기보다는 마치 식물처럼 광합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제안 앞에 의심 따위는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무장해제된 인간의 모습은 세상에서 결국 정신병자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무 같은 사람은 어딘가 든든하고 인내심있고 평화롭고 지혜롭다는 생각마저들게 합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속 ‘살아있는 나무’ 영혜는 괴기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존재로 여겨집니다. 음식들로 위를 채우지 않는 또는 못하는 영혜는 더 이상 사람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영혜는 또 다른 곳으로 사람이기를 증명 받기 위해 옮겨지며 이야기는 끝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살아갑니다.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택은 온전히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인혜는 처음 그러니까 과거의 선택이나 결정이 달랐더라면 지금의 상황에 봉착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글쎄요. 다만 하루하루 살아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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