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돌(아보기) 코너>에서는 허남린 선생님께서 최근 푸~욱 빠져계시는 임진왜란 연구의 경험, 쟁점, 즐거움 등에 대한 산문을 격월로 게재합니다. 허남린 선생님은 캐나다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아시아학과에서 일본사를 가르치고 계시며, 현재 인문세에서 일본 철학과 조선 연행사 세미나를 이끌어주시고 계십니다. 쓰신 책으로는 『조선시대 속의 일본』, 『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 『두 조선의 여성:신체·언어·심성』, 『Prayer and Play in Late Tokugawa Japan』, 『Death and Social Order in Tokugawa Japan』이 있습니다.
단조로움과 즐거움의 역설
단조로움과 즐거움의 역설
허남린 선생님(캐나다 UBC 아시아학과 교수)
임진왜란, 한 우물을 파란 말이 있지만, 그래도 같은 주제를 오래 붙들고 있는 것이 지루하지 않을까? 그렇게 물을 수도 있다. 세상은 넓고, 자연은 광활하고, 인생은 활짝 열려 있는데, 왜 그렇게 한 가지를 붙들고 좁게 살고 있느냐는 의문일 것이다. 좁게 살면 삶의 재미가 별로 없다. 힘차게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라는 함성을 뒤로 하고 외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은 외롭게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밀고 나아갔다.
물론 자나 깨나 임진왜란 한 가지에 몰두한 것은 아니다. 인생을 풍요하게 살려고 나름으로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자꾸 되돌아오고 말았다. 어딘가 있는 자료들을 찾아다니고, 이들을 읽고, 이해하려 시간을 들이고, 무언가 좀 감이 오면 글도 쓰고, 어디 가서 발표도 하도, 깨지기도 하고, 그러면 오기가 생겨 다시 시작하고 하면서 보낸 시간들이다. 그러면서 쏠쏠하고 다양한 재미를 쌓아 갔다.
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비슷한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난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아시아에 있건, 유럽에서 살건, 세상에 나하고 비슷한 것을 하면서, 그 귀중한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진한 동료애를 느낀다. 좁은 주제이지만, 거기에도 인간의 다양함이 있음을 경험했다.
사람들뿐 아니라, 가본 적 없었던 곳에도 많은 발걸음을 옮겼다. 6년 넘게 터진 전쟁이니까 크고 작은 이야기가 수없이 있다.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들이 있고, 참혹한 이야기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헤아릴 수 없고, 이러한 과거의 기억을 모아 놓은 시설들도 놓칠 수 없었다.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면 단위까지 전부 밟아 보려 했는데 그것은 좀 무리였지만, 조그마한 세상의 속은 그 안에서 무척이나 다양함을 경험했다.
이런 세월을 지나면서 재미는 아는 만큼 조금씩 커 간다는 것을 느꼈다. 당연하지만, 모르는 것에 재미를 느낄 리 만무하다. 나와 상관없는 것에 관심을 둘 리 없다. 여기에 알아가는 것이 좀 더 깊어지면 신이 나고 흥이 났다. 물론 많은 것을 두루두루 그리고 가로세로 깊게 알면 더더욱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재능이 짧다 보니, 한 가지를 파기로 한 것은 잘한 것 같다.
한 가지에 오래 집중하면 지루함이 오게 마련이다. 자나 깨나 같은 것은 단조로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지루함과 단조로움은 사람들이 되도록 피하려 한다. 재미가 없으니까. 그러나 장시간 파고들고 그리고 알아 가는 것은 지루함과 단조로움이 없이는 그냥 오지 않는다. 알아가면서 재미를 느낀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하고 단조로운 시간들의 끝에 오는 보상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단조로움과 즐거움의 진행 구조는 그럴 수밖에 없는 작동 원리 위에 있다. 오랜 시간 단조롭게 몰두하는 사이, 지루해지고 작아지다가, 뒤에 무언가 만족되는 것이 조금씩 생기기 때문이다. 한 가지에 오래 집중하고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이 이렇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론이 바로 그러함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러셀은 행복의 조건을 단조로움과 단순함이라고 했다. 행복을 원한다면 단조롭게 단순하게 살라고 그리고 무언가에 집중해 소박하게 살라고 했다.
얼마 전 캐나다 출신의 명배우 도날드 서더랜드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에 대해 아들이 한 말이다. “He did what he loved and he loved what he did.” 아주 짧은 코멘트이지만, 서더랜드의 삶에 대한 멋진 찬사이다. 평자들에 따르면, 서더랜드는 연기에 집중하고 이를 위해 단조롭고 단순하게 살았다고 한다. 영화 대본 하나를 붙들고 몇 주 몇 달을 명상했다고도 했다.
아마도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서던랜드는 많은 지루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그러는 사이 즐거움의 기대치는 작아지고, 그래서 그 작은 기대치가 매번 행복으로 쉽사리 전환되었는지 모른다. 단순하고 단조로운 삶의 가치에 부합하는 행복감을 가졌을 것이다. 임진왜란 연구에 대한 “나의 인생론”에 부합한다 할까 그 짧은 코멘트는 나에게도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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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움과 즐거움의 역설 (4)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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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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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 | 2024.09.10 | 0 |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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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돌이 코너 시작하며 (1)
inmo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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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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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moonse | 2024.06.21 | 0 | 194 |
꿈이 뭐냐고, 어떤 삶을 원하냐고 물으면 우리는 거창하고 원대한 미래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면 행복은 그런 데 있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곤 하지요.
한 가지에 집중하고 반복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데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선생님의 일상이 그려집니다.
임돌이 허남린 선생님의 임진왜란 공부, 서더랜드의 단조로워 보이는 연기 연습을 읽다보니
석기 시대 사람들이 단조롭기 짝이 없게 보이는 주먹도끼를 만들고, 갈판과 갈돌로 무엇을 놓고 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복잡하고 다양하고 많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과 몸을 집중해서 단조로움을 향해가는 길. 행복으로 가는 길인 것 같습니다.
동네에서 축구하는 애들도, 우리가 함께 본 <첼리스트 고슈>도 단조로운 트래핑, 연습, 연습을 빼고는 나아갈 수 없던데요.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연습을 계속하는 자’라는 정체성을 생각하는 하루입니다.
허남린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에 선생님의 글을 만났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욕심 부리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맡은 일 앞에서 소박하고 겸손하게 지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루한 마음은 가끔 죄의식이 동반되는데요. 적어도 지루해지려면 이미 앞선 실천이 있어야 했네요. 지루함이 오히려 잘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놀랍기도 합니다. 쳇바퀴 도는 지루한 일상이라고, 매일 하는 공부에 변화가 없다고 투덜투덜 할 일도 아닙니다. 지난한 과정 끝에 오는 그 작은 재미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지루함으로 기대치는 작아지고, 쉽사리 행복감으로 전환되었을지 모른다는 말씀이 크게 울려오네요. 내가 들인 시간만큼 기대치를 키워가다가 행복하지 못한 결말로 끝났던 많은 일들을 생각해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