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 Ivan Dominic Illich
공생의 삶을 생각하다
학교 없는 사회 7장
학교 없는 사회 7장 프로메터우스적 인간의 부활
2024.7.10. 김현옥
기대보다는 희망으로 방향 전환하기
이반 일리치가 구별한 ‘희망’과 ‘기대’는 현대사회에서 가치의 제도화의 영향으로 ‘기대’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기대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생산해주리라 예측되는 과정으로부터 만족을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희망은 우리가 바라는 선물을 가져올 사람에게 바람을 갖는 것이다. 원시인들은 개인을 신성한 의례에 참여시키는 신화적 방식을 통해 사회적으로 전승되는 지식을 가르치며 희망의 세상에서 살았지만 이런 희망이 기대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고전기 그리스인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그들이 각색한 신화에서 합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를 세웠고, 세상에 만연한 악에 맞설 계획으로 각종 제도를 발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을 통해 계획한 제도를 적응한 시민들만을 올바른 인간으로 인정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시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이런 제도들이 인간이 욕망하는 방향으로 진보된 것은 아닐까?
오늘날 교육은 연구와 계획에 기초한 프로그램 결과인 교과목을 소비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눈앞에 어떤 상품이 있든 그것은 전문화된 제도의 산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획되지 않은 실수와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지만 가치를 창출하는 힘이 제도적 과정에 있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제도 안에서 기대되는 목표는 달성할 수 있는 계획이 있어야만 설정될 수 있다. 그래서 수요가 있으면 무엇이든 생산된다고 믿게 된 사람은 생산이 없어지면 수요도 사라질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이렇듯 우리는 제도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은 아예 떠올리지 못하게 퇴행 되었다. 만능의 도구들에 둘러싸인 채 우리가 만든 도구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태초의 악들을 퇴치하기 위해 고안된 각각의 제도들은 안전장치로 인간을 자동 봉인하는 관이 되었다. 이 도구화 과정에 학교 교육은 인간 자신이 만든 함정에 빠지게 하는 주요 도구가 되었다. 사실 제도 안에 살면서 도구로 전락 되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산다. 또한 계획된 제도를 통해야만 행복한 삶도 가능하다고 믿게 된다. 이런 식의 환상에서 벗어나 기대보다는 희망으로 방향을 전환해보자.
현옥샘! 파일도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