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 Ivan Dominic Illich
공생의 삶을 생각하다
[젠더]4장 토박이 문화 속의 젠더
4장 토박이 문화 속의 젠더
도구
『젠더』(이반 일리치 지음, 허택 옮김, 사월의 책)의 ‘4장 토박이 문화 속의 젠더’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젠더를 설명하기 위해 ‘도구’를 가져온다는 점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근대 이전까지, 그러니까 자급자족 경제로 살아갔던 우리 삶은 ‘항상 젠더로 나뉜 도구 위에서 유지되었다’(93쪽)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젠더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문화 속에서 도구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느냐를 보는 것이다. 우리가 종종 ‘도구 사용’을 인간의 정의로 든다는 점을 생각하면 젠더가 인간의 삶의 얼마나 오래 전부터 뿌리박혀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친족과 결혼
‘젠더가 이끌던 시대’와 ‘희소성이 통치하는 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개념은 ‘친족’과 ‘결혼’이다.
친족
‘친족관계’란 남녀 간의 상보성을 통해 젠더 영역을 형성한다.(99)
‘친족’이란 젠더 구분을 가로질러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99)
‘친족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누가 누구에 대해 어떤 관계를 갖는지의 규칙을 세우는 일이다.(100)
‘친족관계’는 서로 관계를 맺는 두 개의 젠더를 전제로 한다.(100)
‘젠더’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도구와 어떤 말을 쓰는 사람인지를 정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공간, 시간, 기술을 나누는 일이다.(100)
젠더 경제는 친족관계의 바탕이 된다.(100)
결혼
‘결혼’은 젠더 없는 키워드다.(101)
12세기에 들어서 서구에서 잉여생산물에 기초한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잉여생산물을 징수하고 교환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결혼한 남녀 즉 부부가 하나의 생산단위가 되자 특이한 잉여생산 형태가 생겨났다. 부부가 수행하는 경제적 기능에 그 본질이 있다.
결혼한 남녀, 부부가 수행하는 경제적 기능의 변화
서구화란 여러 상이한 친족 유형들이 부부 중심 가구라는 모델로 수렴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결혼’이라는 말이 갖는 두 의미, 축하잔치와 혼인의례, ‘혼인한 상태’ 자체가 두 개인을 부부라는 새로운 경제 단위, 즉 세금을 거둘 수 있는 단위로 평생 묶는 의식이 되었다. 부부 단위의 생산이 시작된 초기에도 잉여생산물을 만드는 일상의 활동은 젠더로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으나 혼인한 부부가 과세의 기본 단위가 되자 전통적인 젠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지대가 점차 화폐로 바뀌고, 지역에서 쓰던 통화도 국가 통화도 바뀌자 혼인한 부부는 과거의 어떤 가구 형태보다도 뛰어나고 다루기 쉬운 생산 단위임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젠더적 생산방식은 곳곳에서 지속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19세기에, 가구 단위로 부과되는 노동을 젠더로 나눠 수행하던 것이 임금 노동과 그림자 노동이라는 경제적 분업으로 바뀌었다. 경제적 구분만 있고 젠더는 없이 성적으로만 결합한 부부가 산업 생산의 토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