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과 스웨덴 특파원이 들려주는 슬기로운 외국살이
[일희일비(日喜日悲) 스톡홀름 Life] 스웨덴에서 집 구하기
스웨덴에서 집 구하기
스웨덴에 산다고 하면 꼭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집에 관한 것이다. 보통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기엔 다소 사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스웨덴은 대부분 잠깐 방문하는 나라이다 보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는 자연스레 생기는 호기심일 수 있다.
가족을 꾸리게 되면 고려하게 되는 주거 형태인 ‘주택’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고, 아파트만 기준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월세’와 ‘자가’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월세는 공공주택 대기 시스템(Förstahandskontrakt)에 이름을 올려 순서를 기다리는 방식이다. 월세가 저렴한 대신, 작은 도시에서는 대기 시간이 8년에서 15년에 달하기도 한다. 또 다른 방식은 민간 임대 시장으로, 이는 아파트 주민 조합의 동의를 받아 한시적으로 렌트할 수 있다. 내가 처음 도착한 예테보리에서는 약 3~4년을 기다려야 한다기에, 초기 정착 때 회사에서 구해준 아파트에 사는 동안 당장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공공주택 대기 시스템에는 이름조차 올리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한국의 청약 통장처럼 그냥 넣어두고 잊고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잠깐 들기도 했다.
스웨덴에는 한국처럼 대형 아파트 단지가 없고, 8층 이상의 아파트는 랜드마크로 여겨질 만큼 드물다. 이런 환경에서 아파트 주민 조합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1층에 어떤 가게를 입점시킬지부터, 주차장 요율 설정, 아파트 정원에 심을 꽃 종류까지 관장하는 범위가 넓다. 우리가 보기에 “오, 유럽 같다”는 느낌의 건물은 대부분 80년 이상 된 곳들인데, 이런 아파트를 구매할 때는 조합 면접이 필수다. 한껏 차려입고 왁스로 머리를 넘긴 친구에게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냐고 물었더니, 조합원 인터뷰가 있다며 긴장한 모습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집을 구매하는 사람도 까다롭게 선별하는 조합원들 입장에선 세를 놓는 일이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조합의 승인을 받으면 일정 기간 임대는 가능하다.
스웨덴에서는 거의 98%의 집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Hemnet이나 Booli라는 웹사이트에서 검색한다. 원하는 지역, 방의 수, 가격, 층, 엘리베이터 유무 등 조건을 입력하면 해당 조건에 맞는 집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집을 보여주는 시간도 함께 표시되는데, 이를 ‘Visning’이라고 하며, 집을 찍은 사진들도 함께 올라온다. 주로 주말이나 퇴근 후 시간에 구매자가 직접 집을 볼 수 있다. 인기 있는 집은 방문 시간(visning)에 사람들이 북적여, 아파트가 작은 시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집을 파는 사람들은 집값을 올리기 위해 수리를 하기도 하고, 특히 1층 집의 경우 인테리어 공사에 공을 들인다. 또는 수백만 원 정도를 들여 ‘홈 데코’를 하는데, 나중에 중개 수수료처럼 세금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세금 혜택을 고려한 스마트한 계획(Smart planering)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집값 상승분에 대한 양도세 계산 시 공제 가능한 비용으로 분류되도록 하기 위해, 인테리어는 개인이 하지 않고 업체를 부른다든지, 홈 스타일링 역시 전문가를 쓰면 그 비용도 공제 항목에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개인과 함께 “이건 공제가 가능하고, 이건 안 되는데 이 항목으로 바꿔서 넣어볼 수 있다” 같은 맞춤형 제안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준비된 홈 데코와 조건들은 Hemnet이나 Booli 같은 사이트에 올리게 된다. 나도 집을 판매할 때 그렇게 했었다. 꽃병을 놓고, 담요를 멋스럽게 소파에 걸치고, 부엌 싱크대에는 비싼 올리브유 병과 껍질도 벗기지 않은 마늘, 평생 요리한 적도 없는 아티초크 등을 놓고 사진을 찍었었다. 세상 불편하지만, 잡지에 나올 법한 집 사진이었다.
집을 보러 온 잠재 고객들은 구경이 끝나면 입찰을 원하는 경우 부동산 중개인에게 연락처를 남기고, 모든 방문이 끝나면 중개인이 연락처를 남긴 잠재 구매자에게 시작가를 문자로 보내 옥션을 시작한다. 대부분 시작가는 미리 공개되어 있고 사이트에도 나와 있으므로, 반나절 만에 3~4명이 입찰 가격을 문자로 보내며 최종 판매가가 결정된다. 비슷한 조건의 집을 찾는 수요자들이 서로 겹치기 때문에, 같은 커플들을 여러 집에서 반복해 마주치는 경우도 흔하다.
계약이 성사되면, 100% 현금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한다. 30년 전에는 스웨덴 정부가 아파트를 직접 지어 외국인에게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스웨덴어 선생님은 그런 대우를 받았던 이민자 초기 시대를 자주 이야기하셨다. 20년 전에는 집값의 95%까지 대출이 가능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집을 구매했다고 한다. 요즘은 85%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두 가지 조건이 붙는다. 연봉에 따른 대출 한도와 이자 외에도 원금의 2%를 매년 갚아야 한다는 점이다. 오래된 아파트 중에는 관리비가 거의 없는 곳도 있고(월 1,000원 수준), 새로 지어진 아파트는 이자만큼 관리비를 내야 하기도 한다.
하필 한국에 있을 때 생애 첫 입찰을 했는데, 60이 넘은 부모님과 함께 거실에 앉아 핸드폰으로 입찰을 시작했다. 문자로 가격을 보내는 모습을 부모님은 반은 걱정스럽게, 반은 신기하게 바라보셨다. 2시간도 안 돼 500만 원씩 몇 차례나 올리는 딸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500만 원만 더…” 하고 말을 꺼내자마자 아버지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셨다. 직접 가보지도 않은 집이었고, 수중에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는 동네였고, 돌아왔을 때 갈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에, 부산에서 스톡홀름으로 문자만으로 돈을 마구 써댔다. 다행히도 그 경매에서는 이기지 못했다.
스웨덴으로 돌아온 뒤, 2주간 겨울에 이 집 저 집을 방문하며 고민했다. 입찰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나는 구매 희망가보다 15%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대신 옥션 없이 바로 사겠다는 제안을 했고, 그렇게 첫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집을 팔 때도 첫 구매 문의자에게 곧장 팔아버렸다.) 요즘은 금리가 떨어지면서 다시 집을 팔고 이사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Hemnet이나 Booli를 인스타그램처럼 자주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엔 나도 스웨덴 사람들처럼, 잘 준비하고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아는 입찰로 집을 사볼까 생각 중이다.
아파트의 조합원들이 자신이 사는 곳의 다양한 풍경을 직접 결정하고 만들어간다는 이야기와 내부 인테리어와 같은 홈 데코까지 집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세금 공제가 된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스웨덴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곳 주변의 풍경, 분위기와 같이 실재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것들을 고려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연주쌤이 머무시는 곳의 풍경도 궁금합니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주민 조합이 세입자를 고른다는 것이 재미있네요. 이웃들이 같이 살 주민을 고르는 것 같습니다. 나라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을 좋아하는데(아파트가 지어져야 한국 경제가 유지되는?), 80년 된 아파트를 어찌 유지하는지, 새로 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많이 궁금했습니다.
헉 500만 더. . ^^ 외국에서의 집 구하기, 집 사기. 정말 중요한 문제 같습니다. 내가 어디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어떤 사람들과 장소에 나의 기억을 심을 것인가, 혹은 그 자리에서 자란 기억들을 받을까의 문제 같아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집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궁금해집니다.
어쨌든 ‘입찰’이라니 등에 땀 나는 일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