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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말/호시노 미치오] 8장 두 개의 시간, 두 개의 자연(3/3)

작성자
덕후
작성일
2024-12-09 12:38
조회
95

일본어 강독팀(매주 월 오후 4-6)에서 읽은 호시노 미치오의 魔法のことば自然 연재합니다.

아래는 이한정 선생님의 진두지휘 아래 김완수 선생님, 이종호 선생님, 오선민 선생님, 임영희 선생님, 권수현 선생님, 조혜영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알래스카는 일본인에게도 미국인에게도 먼 곳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기분상으로 멀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리적으로는 아주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왜 알래스카에 사람이 사는가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명은 일본인 친구, 다른 한 명은 미국인 친구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일본인 친구는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에 알래스카에 왔지요.

  남동알래스카라는 지역에 와서 함께 작은 배로 고래를 쫓는 여행을 했습니다. 그곳은 숲과 빙하로 둘러싸인 장소로, 많은 섬이 있고 매년 혹등고래가 찾아옵니다. 제가 1개월 정도 그 지역을 여행했을 때, 그 친구도 일주일간 참가했어요.

  그는 평소에는 도쿄에서 일하는 아주 바쁜 사람으로, 1주일간 여행이었기 때문에 고래를 보는 것이 가능할지 어떨지 걱정이었지만, 어느 날 1마리의 혹등고래를 만나서 그 고래와 계속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항상 우리 앞에 혹등고래가 헤엄치고 있고, 그 뒤를 계속 천천히 쫓아가는 여행이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혹등고래가 공중에 솟아올라서, 그것을 브리칭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엄청난 브리칭이었습니다. 순간적인 일이어서 사진을 찍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혹등고래는 그 후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천천히 헤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는 그 순간이 매우 강하게 인상에 남은 것 같았고, 그가 일본에 돌아가고 나서, 편지를 받았어요. 그 편지에는 알래스카에 가서 너무 좋았다는 식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도쿄에서 매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에, 문득 알래스카의 일들을 떠올립니다. 지금 제가 바쁜 시간을 살고 있을 때에 문득 알래스카에서는 지금 혹등고래가 어쩌면 브리칭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기분을 아주 잘 압니다. 그것은 제가 처음 자연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졌던 기분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무렵이었는데, 매우 홋카이도를 동경했던 시기가 있었고, 언젠가 홋카이도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홋카이도는 매우 먼 곳이었지요. 왜 그 정도로 동경했냐면, 홋카이도 책에 자주 나오는 곰이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쿄에서 전철을 타고 있을 때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문득 홋카이도에 대해 생각하고, 지금도 홋카이도에는 곰이 살고 있다고 하는 일이 신기하기 짝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홋카이도의 어딘가에 곰이 있고, 산을 오르고 있다는 그런 일이 너무 신기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말로 할 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여러 가지 존재에게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모든 존재에게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신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또 하나 생각한 것은 우리는 두 개의 시간을 갖고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매일 여러 가지 일에 쫓기며 살아가는 시간과 또 하나의 다른 시간을 갖고 있어서 그것이 자연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친구는 어쩌면 그 다른 하나의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알래스카에 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라는 기분이 듭니다.

이제 다른 한 사람, 미국 친구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알래스카는 먼 곳으로 특히 동해안의 뉴욕이나 보스턴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알래스카는 땅 끝과 같은 이미지일 테지요.

조금 이상했던 것은 알래스카 사람들은 미국본토의 이야기를 할 때 로우어 포티 에이트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죠. 그것은 알래스카보다 아래 48라는 의미입니다. 저도 그 표현이 익숙해서 처음 보스턴에 갔을 때 상대방과 이야기하며 로우어 포티 에이트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킥킥 웃는 것이에요. 왜 웃는 걸까 이상하게 생각하면 보스턴은 특히 역사적인 지역인데 그들에게 있어 알래스카란 땅의 끝과 같은 이미지라서 이만큼의 시간이 흘렀어도 신참자와 같은 취급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알래스카 사람들에게 있어 로우어 포티 에이트라는 표현은 어딘가 긍지가 들어 있어서 보스턴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이스트 코스트에서 알래스카로 온 제 친구의 가족 이야기를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참 전에 왜 사람들은 알래스카에 오는 걸까라는 내용의 기사를 써야 해서 그때 그 가족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알래스카에 온 것과 같은 1978년에 알래스카에 건너왔습니다.

저는 그 가족의 아들과 데날리 국립공원에서 우연히 만나서 친해졌습니다. 그는 알래스카 대학의 학생으로 저도 그해부터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왠지 모르게 친구가 됐던 거예요. 그때부터 그의 가족과도 점점 친해지게 되고, 그렇지만 그의 가족의 역사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왜 메사추세츠라는 동해안 지역에서 알래스카로 옮겨왔는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2년쯤 지난 어느 날, 그들 가족이 알래스카로 이주해 온 이유를 그 친구가 가르쳐줬습니다. 그 가족에게는 전부 다섯 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실은 또 한 명, 따님이 있고 그 따님이 죽었던 것이죠. 그것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그녀의 친구에게 살해당했던 것입니다. 2개월 후에 엄마는 아직 어린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메사추세츠에서 알래스카까지 운전했습니다. 실은 그 해에 저와 그들이 만났지만 그때는 아직 그 일을 몰랐습니다. 메사추세츠에서 알래스카까지는 매우 먼 거리지요. 왜 그 엄마가 아이들을 태우고 알래스카에 가려고 생각했느냐하면 그녀는 겨울 한철을 알래스카에서 보내고 나서 다시 메사추세츠로 돌아갈 작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10년 이상 알래스카에 살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왜 사람은 알래스카에 오는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그 가족의 어머니에 대해 꼭 써보고 싶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만약 아무 일도 없이 메사추세츠에 살고 있었다면, 보통의 보수적인 가족의 어머니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촬영에서 돌아오면 그 가족에게 자주 초대받아 저녁식사를 대접받고 했었습니다만, 그럴 때에 그 어머니는 저의 여행 이야기를 아주 열성적으로 듣고 싶어 했어요. 정말 열심히 저의 이야기를 듣고 곧 자기 발로 알래스카의 자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북극권 카리부의 이야기를 특히 좋아하고, 아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누구도 가지 않을 것 같은 황무지에 가서 캠프를 하면서 카리부의 대이동을 보거나, 그런 여행을 스스로도 조금씩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그런 여행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점점 그 어머니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일을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쓸 때 허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왜 알래스카로 사람들이 오는가라는 테마로 당신에 대해서 기사를 써도 좋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허락을 해 주었고 그 후 일본어 기사를 충실하게 영어로 번역해서 그녀에게 전했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쓸 때에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지요. 살해를 당한 딸의 이야기도 쓰여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 일을 제가 알고 있다는 것에 아주 놀랐습니다. 그녀는 그 일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저는 페트라는 그 어머니가 왜 알래스카에 왔는가라는 것을 일방적인 상상만으로 썼던 것입니다.

  그 기사를 쓰고 있을 때 생각한 것은 알래스카에서 힘을 받고 싶었다라는 것입니다.

  저도 역시 알래스카에 이주해 살려고 생각했을 때 친한 친구가 산에서 죽기도 해서 그런 점에서는 어머니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지요. 때문에 어머니에게는 알래스카의 자연이 아니면 안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래스카에는 인간의 하찮음을 압도하는 듯한 자연의 거대함이 있고, 그것은 알래스카의 자연이 좋은지 싫은지 같은 것이 아니라 더 큰 자연이나 생명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지요. 맨 처음에는 겨울 한철만 체류하려고 생각했던 가족이 10년 이상 알래스카에 사는 동안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기운을 얻었습니다. 그런 힘을 자연은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미 아이들도 커서 각각 미국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어머니도 수년 전에 알래스카를 떠나고 어딘가에 다음 살 장소를 찾아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 두 개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또 하나 생각한 것은 자연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치바현의 이치가와에서 컸습니다만, 이치가와에 오마치(大町) 자연공원이라고 하는 손바닥만 한 정도의 숲이 남아 있습니다. 알래스카에서 이치가와에 돌아오면 거기에 자연이 있다고 하는 것에 매우 안심을 하지요. 알래스카의 자연이 가지고 있는 스케일과는 물론 비교할 수 없지만, 자신의 생활권에 작은 숲이 있다고 하는 것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 인간에게 있어 두 개의 중요한 자연이 있고, 하나는 가까운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토에 와도 그런 것을 몹시 느낍니다. 기타야마와 같은 그런 자연이 남아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또 다른 하나의 자연이란 무엇인가하면, 그것은 먼 자연이라고 생각해요. 알래스카의 자연을 생각할 때 저는 언제나 먼 자연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알래스카는 거의가 황무지여서, 좀처럼 사람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제가 가장 큰 주제로 찍고 있는 카리부의 계절이동은 알래스카의 북극권을 수만 마리의 카리부가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만, 알래스카에서도 99%의 사람은 본 적이 없지요. 저도 카리부의 대이동을 항상 만날 수는 없고, 지금까지 셀 수 있을 만큼밖에 만나지 못했지요.

  알래스카를 여행하고 ‘100년 쯤 빨리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항상 있던 중에, 처음 카리부의 대이동을 만났을 때 시간을 딱 맞췄다라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미 천년이나 이천년이나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고 지금도 같은 카리부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비로운 느낌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북극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유전개발을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을 보호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 이 논쟁은 벌써 20년 정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알래스카의 주지사가 했던 말이 잊을 수 없는데, “북극권을 보호하라고 말해 봐도 거기에는 아무도 갈 수 없고, 카리부의 계절이동도 아무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어떻게 해도 상관없는 것으로 조금 더 인간을 위한 유전개발을 추진해야 하는 게 아닌가입니다. 그 주지사의 주장도 이해가 되지만 인간이 갈 수 없다고 해서 자연을 보호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냐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북극권에서 유전개발이 진행되고 늑대나 카리부의 큰 무리가 사라져 버렸어도 분명히 실제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확실하게 뭔가 잃어가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상상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늑대가 정말로 없어진다면 늑대를 상상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늑대나 카리부가 있으면 비록 실제로 그것을 볼 수 없더라도 자신의 의식, 상상력 상에서의 풍성함 같은 것을 가져다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 자연이라는 것은 가까운 자연만큼이나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전개발이냐 자연보호냐 하는 문제는 정말로 어려워서, 자연보호라고 말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거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등에서는 사자 한 마리를 관광객이 둘러싸서 보고 있는 장면을 자주 봅니다만 그런 장면을 알래스카의 자연과 비교했을 때 생각나는 것은 저 사자는 오래 살겠구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극단적 논의가 될지도 모르지만 케냐나 세렝게티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일로 돈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알래스카에는 좀처럼 사람이 북극권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돈이 되지 않는 자연은 커다란 시련에 부딪쳤을 때 간단하게 뒤집혀 버립니다. 알래스카의 야생은 그런 연약함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식으로 알래스카의 자연에 대해 생각하면 지금부터 조금씩 변해가는 건가라는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알래스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에스키모나 인디언의 삶도 점점 변해갑니다. 우리는 무심히 바깥에서 보고 옛날 그대로였으면 좋겠어라거나 변하지 않기를 바라라는 생각을 가질 뿐인데, 그렇지만 저는 그래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알래스카에는 이런 대단한 비경이 남겨져 있다랄까 그런 것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고 가장 흥미 있는 것은 지금부터 에스키모나 인디언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을 해나갈까에 대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에스키모 마을에 가면 지금은 이미 개썰매는 거의 없어져 버렸습니다. 스노모빌로 바뀌었습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스노모빌 쪽이 편안한 거지요. 개를 보살피지 않아서 좋고요. 그렇지만 스노모빌에 모두가 만족하고 있느냐하면 역시 고장도 있기 때문에 그러면 그들에게는 불안도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했냐면 개를 마을에 남겨 놓은 거예요. 이미 개썰매는 하지 않지만 개는 모두 기르고 있습니다.

옛날그대로의 전통적인 생활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이상과 보다 편안하고 편리한 것에 끌리는 현실이 있어서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조금씩 생활이 변해 갑니다.

이전에 에스키모와 생활을 함께 했던 사람이 에스키모 사람들의 생활이 변해버려서 자신은 이미 흥미가 없어졌다고 썼었는데요, 그것은 거기에 사는 사람에게는 심한 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조금씩 변해가고 싶고, 알래스카의 자연도 변해갑니다. 그 속에서 모두가 어떤 선택을 해 갈까요.

알래스카의 자연을 보호할까 개발할까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문제이고, 그렇지만 그 문제는 어딘가에서 자신들과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 세계의 일이 아니고 일본에서 살고 있어도 반드시 똑같은 문제는 있을 것이고, 그런 일을 저는 지금부터라도 알래스카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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