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쿠노 카츠미] 가와카미 히로미와 <뫼비우스의 띠>(1/2)
일본어 강독팀에서 읽은 오쿠노 카츠미의 『モノも石も死者も生きている世界の民から人類學者が敎わったこと』(『물건도 돌도 죽은 자도 살아 있는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인류학자가 배운 것』)을 연재합니다. 이한정 선생님의 지도 아래 오선민 선생님, 김미향 선생님, 조혜영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물건도 돌도 죽은 자도 살아 있는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인류학자가 배운 것』
■ 읽는 순서
1 곤마리는 정리 계곡의 나우시카인가?
2 바람 계곡의 애니미즘
3 가와카미 히로미와 <뫼비우스의 띠>
4 벽과 연락 통로—애니미즘을 둘러싼 두 가지 태도
5 돌아와라, 살아있는 것들아
6 동양적인 견해로부터 애니미즘을 생각하다
7 미야자와 겐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다
8 잠자는 신의 꿈—융에서 애니미즘으로
9 순수한 기억과 죽은 자의 영혼—베르그송과 애니미즘
10 기호론 애니미즘—에두아르도 콘의 사고의 숲으로
11 인간인 것의 끝—말할 수 없는 것의 순수 경험
12 인간에게만 닫힌 세계에 애니미즘은 없다
3장 가와카미 히로미(川上弘美)와 <뫼비우스의 띠>
성스러운 것과 야만
작가 가와카미 히로미(川上弘美)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영화관에서 봤던 것은 그녀가 여자고교의 과학교사를 하고 있던 20대 중반 무렵의 일이었다. 그녀는 인간들의 잘못으로 생겨난 세계에서 그 세계에 구원을 가져오는 소녀 나우시카에게 조금쯤 충격 받아 ‘예쁘고 바른 소녀’에게 질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성스러운 것’의 상징으로서의 나우시카에 대해 자신은 잘못을 저지르는 많은 ‘그 외의 사람들’의 대표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고도 말한다.
그 후 오래 지나고 나서 나우시카가 ‘성스러운 것’의 상징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가와카미는 깨닫는다. ‘쓸모없는 인간’과 ‘쓸모없지 않은 인간’이라는 이항대립의 세계에 자신이 사로잡혀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가와카미는 《나우시카》 비디오를 다시 보고 아버지를 살해당했던 소녀의 야만을 발견한다. 나우시카는 전혀 성스럽지 않고 양으로든 음으로든 자연에 내맡긴 보통의 인간이었던 것이다(가와카미 2013).
가와카미 문학에는 대략 그러한 사고의 과정을 지나 형성되었을 이항대립의 세계 그 자체를 붕괴시키는 구조를 가졌던 작품들이 있다. 그런 작품들에서는 인간과 곰, 뱀, 도마뱀 등 인간 아닌 것과의 만남과 신기한 공존관계가 다뤄진다. 시미즈 요시노리(淸水良典)가 말하듯 그 작품들에서는 “모든 만남이 ‘이종’(異種) 개체와의 소란스러운 해후(邂逅)이고 공생과 같은 꿈”(시미즈 2003: 79)으로 이야기된다. 가와카미 히로미류의 애니미즘이다.
『신(神様)』과 『신 2011』
1993년 가와카미의 데뷔작 『신』에서 주인공인 사람은 곰에게 이끌려 강변으로 함께 산책을 나간다. 사람과 곰은 겉보기는 크게 차이나지만 마음으로 서로 이어져있다. 그러한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연결이 가와카미 애니미즘의 근저다.
그 후 2011년 동일본대지진 직후에 가와카미는 『신』의 무대를 ‘지진 후’로 바꾸어 『신 2011』을 출판했다. 그 소설 안에서는 주인공인 사람과 곰이 ‘방호복을 입고’ 산책에 나간다.
강변까지의 길은 원래 논이었던 지대를 따라가고 있다. 토양의 제염(除染)을 위해서 대부분의 논은 파헤쳐져 윤기가 났던 흙이 쌓여 있다.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 더운데 방호복에 방진마스크, 허리까지 오는 장화를 제대로 갖춰 입고 있다.
(가와카미 2011: 26)
방호복이라든가 피폭선량이라든가 하는 원전 관련 용어가 『신』에서 그려진 사람과 곰이 자아내는 ‘진짜’ 같은 ‘가짜’의 세계를 실로 괴로운 분위기로 만들어 버린다. 『신』과 『신 2011』에서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의 묘사를 비교해 보자.
『신』에서는 “방으로 돌아와 생선을 굽고 목욕을 하고 잠들기 전에 일기를 조금 썼다. 곰의 신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해 봤지만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가와카미 1993: 18)라고 기술한다. 그것이 『신 2011』에서는 다음과 같은 지진 후 모드로 바뀌고 있다.
방으로 돌아와 말린 생선을 신발장 위에 장식하고 샤워를 하고 정성껏 몸과 머리를 털고 잠들기 전에 일기를 조금 쓰고 마지막으로 언제나처럼 총 피폭선량을 계산했다. 오늘의 추정 외부 피폭선량 30µ㏜(micro Sievert), 내부피폭선량 19µ㏜. 연 초부터 오늘까지의 추정 누적 외부피폭선량 2900µ㏜, 추정 누적 내부피폭선량 1780µ㏜. 곰의 신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해 봤지만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가와카미 2011: 36)
『신 2011』에서 피폭선량의 숫자를 늘어놓음으로써 지진 후에 점점 더해지는 숨막힘. 이런 방법에 의해 그것은 지진 후 일상에 대한 문제 제기를 잉태하는, 풍요성을 띠는 문학이 되었다.
『뱀을 밟다』의 사람과 뱀
『신』과 그 변주인 『신 2011』과 같이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위화감 없이 서로 섞이고 서로 통하여 등장하는 가와카미 문학으로 정평이 나 있는 것이 1996년 아쿠다가와상 수상작 『뱀을 밟다』이다.
주인공인 사나다 히와코는 미도리 공원에 가는 도중 덤불에서 뱀을 밟는다. 가을의 뱀인 까닭에 움직임이 느렸다고 한다. 밟고 나서 뱀을 알아챘다. 뱀은 “밟히면 끝이군요”라고 말하고, 걸쭉하게 녹아서 형태를 잃었다. 그리고 사람의 형태가 나타났던 것이다. 사람의 형태로 된 그 뱀은 50세 정도의 여성이 되어 히와코의 방에 살게 된다. 자신에 관해서 히와코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이전부터 거기에서 살고 있었다는 듯이 상을 차리고, 히와코와 맥주를 주고받는다. 히와코는 그 여자가 뱀인 것을 알고 있다. 여자는 갑자기 잠을 잔다고 말하고, 뒷정리도 하지 않고, 방에 하나뿐인 기둥에 휘감고 몸이 얇아져서, 기둥에 달라붙어 천장으로 올라가며 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천장에 그려진 뱀과 같은 형태가 되어 눈을 감았다.
그 후, 히와코의 근무처인 염주 가게 카나카나당의 여주인인 니시코도 또한 뱀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니시코의 숙모라고 자칭하는 그 뱀은 상당히 나이를 먹어서 죽을 때가 가까워진 듯 하고 사람의 모습을 취할 수 없게 되어 뱀의 기호를 발휘해서 작은 새나 개구리를 먹고 싶어 한다. 니시코는 뱀의 세계는 정말 따뜻하다고 말한다. 뱀의 세계를 권유받았는데 몇 번이나 거절해서 마지막에는 권유받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니시코는 그 뱀을 밟아 뭉개려는 순간에 다친다. 죽은 뱀은 정원에 묻혔다.
카나카나당의 염주 납품처인 간신지(願信寺)의 주지 스님도 또한 뱀을 처로 삼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뱀은 집의 살림을 잘한다. 밤의 일도 일품이라고 한다. 아이는 낳을 수 없지만 알을 낳는다. 사람과 뱀이 서로 얽히는 세계에 관한 것이 차례차례로 나온다.
그 사이에 히와코의 방에 살고 있던 뱀인 어머니는 카나카나당에서 일하는 중인 히와코를 찾아오게 된다. 방으로 되돌아와서 “히와코짱. 더는 기다릴 수 없어”라고 말하며 히와코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그 후의 격투. 결론도 무엇도 없는 채로 이야기는 갑자기 끝난다.
‘진짜’와 ‘가짜’의 교차, 일상 경계의 붕괴
가와카미에 따르면 『뱀을 밟다』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진짜’와 ‘가짜’의 교차이다. 문고본의 ‘후기’에서 자신의 작풍인 ‘가짜 이야기’를 언급하여 가와카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짜’ 나라는 ‘진짜’ 나라와 바로 이웃해 있어서 군데군데에서는 ‘진짜’ 나라와 중첩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짜’ 나라는 입구가 좁지만 폭은 의외로 넓습니다. (가와카미 1999: 172-3)
『뱀을 밟다』에서는 ‘진짜’와 ‘가짜’가 절묘하게 융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문고본에 수록된 「해설ㅡ분류학의 유원지」에서 마츠우라 히사키(松浦寿輝)는 또 하나 교차로써의 사람과 뱀, 혹은 인간과 동물의 교차를 언급하고 있다.
수많은 동물과 식물이 뒤섞이는 가와카미 히로미의 이야기 세계에서는 종과 종 사이의 경계가 갑자기 걸쭉하게 녹기 시작해, 분류학의 질서에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이 생긴다. 이 작가는 분명 대학에서는 생물학을 전공했을 터인데 마치 린네의 명명(命名) 시스템 따위 전혀 믿고 있지 않아서, 존재는 하나의 종에서 또 다른 하나의 종으로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다고 완전히 믿고 있는 것 같다.
실제 그녀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제멋대로 자신을 동물화하고 식물화하여 궁극에는 생물과 무생물과의 경계도 사라져버린다. (마츠우라 1999: 174)
처음에 히와코가 공원으로 가는 도중의 덤불에서 뱀을 밟아 각기 다른 종이라 생각했던 사람과 뱀이 뒤섞여 융합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갑자기 스위치가 들어와 종의 경계가 소멸을 향해 내달려 간 것이다.
강렬한 것은 뱀이 뱀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장면이다. “밟히면 끝이군요” 라고 뱀이 말하면서 뱀은 걸쭉하게 녹아 ‘액체’로 변해 형체를 잃고, 연기나 안개 같은 것이 자욱하여 ‘기체’에 이끌리듯이 사람이라는 ‘고체’가 된다. 그러나 그 뱀은 완전히 사람이 ‘되버렸’냐면 그렇지도 않아서 잠잘 때는 기둥에 휘감겨 뱀으로 되돌아간다. 뱀은 뱀과 사람 사이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한다.
히와코는 뱀을 밟았을 때 문득 느낀다. ‘뱀은 부드러워서 밟아도 밟아도 끝이 없는 느낌이었다’(가와카미 1999: 10). 마츠우라는 이 ‘끝이 없는 느낌’이야말로 세계의 분류 질서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가와카미의 ‘악의의 표현’이라 본다.
우리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 풍경의 경우 ‘끝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끝’이 적절히 분류 정돈되어, 예를 들면 사람은 사람이고 뱀은 뱀이어서, 그들 범주 사이의 혼동은 있을 수 없다는 명료한 이해가 거기서 이루어지는 안온한 삶의 지속을 보증하고 있다. 세계는 바둑판의 눈금처럼 확연히 ‘경계’ 지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이 ‘경계’의 개념을 붕괴시켜버리는 것이 가와카미 히로미의 소설이다. (마츠우라 1999: 177)
이 소설에서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람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뱀인지 분명하지 않다. 히와코의 방에 자리 잡고 사는 뱀이 그러하듯이 뱀은 과연 뱀일까, 아니면 사람(히와코의 어머니)일까. 종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더 모르게 된다. 즉, ‘경계’가 없다. 그런데도 이야기 자체는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뱀과 나 사이에는 벽이 없었다”(가와카미 1999: 29). 뱀은 사람이 되었다가 사람으로부터 스러지듯이 뱀으로 되돌아가려 한다든지, 반대로 사람도 뱀의 세계로 불려가기도 한다. 그로 인해 사람과 뱀은 안정적인 종이 아니라 어느 쪽이건 어느 쪽도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양자가 서로 녹아내려 뒤섞이고 서로 통하여 교감하며 교환(交歓)하는 세계가 문학 표현 안에서 또렷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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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이야기 너무 이상하고 재미있어요.
뱀과 사람의 경계가 없는, 애니미즘의 세계면서 동화의 세계이기도 하지요. 작가가 생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는 것이 더욱 흥미롭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