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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의 생각>에서는 만물이 하나임을 통찰하는 오강남 선생님의 ‘아하’ 체험을 매월 게재합니다. 비교종교학자이신 선생님께서는 종교란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고 의존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의 연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하’ 체험이 가능하도록 깊은 성찰의 기회를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요. 오강남 선생님은 캐나자 리자이나대학교 명예교수로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의, 강연을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의 저서로는 『예수는 없다』,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세계 종교 둘러보기』, 『종교란 무엇인가』,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등이 있습니다.

속담으로 보는 세상 <미운 사람 고운 사람>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09-30 23:17
조회
37

애증(愛憎)의 함수 <미운 사람 고운 사람>

 



오강남 선생님(리자이나대학교 명예교수)


미운 사람 고운 데 없고, 고운 사람 미운 데 없다는 속담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중국 위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임금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하루는 임금과 함께 궁전 뜰을 거닐다가 땅에 복숭아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주워서 한 입 먹어보니 너무나도 맛이 있었다. 먹던 복숭아지만 임금께 바쳤다. 임금은 이 신하가 자기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먹고 싶은 것도 참고 남은 것을 자기에게 바치는 것이라 생각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먹었다. 어느 날 밤 미자하는 그의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급해서 임금의 허락을 받을 겨를도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고 어머니의 병상을 향해 달렸다. 국법에 의하면 임금의 수레를 함부로 타는 것은 사형감에 해당되지만, 임금은 그 신하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함을 가상히 여기고 오히려 칭찬했다.

해가 바뀌고 임금님의 마음도 바뀌어, 이제 미자하를 미워하게 되었다. 충신 미자하는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바칠 정도로 무엄한 신하, 임금의 수레를 허락도 없이 훔쳐 탄 무법의 신하라는 죄명을 쓰고 결국 사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우리 범속한 인간 대부분의 경우, 어떤 사람을 한 번 이쁘게 보면 그의 생긴 것,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 웃는 것, 걷는 것, 모두가 이쁘게 보이고, 한번 밉게 보면 이 모든 것이 밉상스럽게만 보이기 마련이다. 순이가 이쁘게 보일 때는 이쁜 순이가 이쁜 사과를 아삭아삭먹는데, 일단 밉게 보면 미운 순이가 미운 사과를 으석으석먹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김 씨를 놓고 그를 이쁘게 본 사람은 그가 자상스럽고, 검약하고, 용감하고, 신념이 있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끈기가 있고, 쾌활하고, 달변이고, 유머러스하고, 적응력이 있고, 침착한 사람으로 보는데, 그를 밉게 본 사람은 그의 자상함을 좀스러운 것으로, 검약한 것이 쩨쩨함으로, 용감함이 만용으로, 신념 있음이 고집불통으로, 정직함이 융통 머리가 없음으로, 성실함이 우직함으로, 끈기 있음이 미련함으로, 쾌활함이 가벼움으로, 달변이 입 싼 것으로, 유머러스함이 싱거운 것으로, 적응력 있음이 무원칙함으로, 침착함이 고지식함으로 보게 된다. 동일한 행동, 동일한 태도가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과단성 있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고, 경솔한 짓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이 미우면 가사도 미워지지만’ ‘마누라가 이쁘면 처갓집 주춧돌도 이쁘게보인다. 가사나 주춧돌의 잘잘못이 아니라 더 큰 일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자세, 주관적 입장이 문제다. 이런 기본적 태도 여하에 따라 장점이 단점일 수 있고 단점이 장점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리가 남을 볼 때 우리가 갖게 되는 선입견을 절대화해서 그들을 판단할 것이 못된다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을 함부로 죽일 놈, 살릴 놈으로 딱 갈라놓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어느 사람 자체가 죽일 놈이냐 살릴 놈이냐 하는 것을 따지기 전에 내가 그를 고운 이로 보기로 했느냐 미운 놈 취급하기로 했느냐를 냉철하게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전체 3

  • 2024-10-02 00:03

    ‘관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드라마 <미생>에서 임시완은 상사에게 울먹이며 “모르니까 가르쳐줄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데요.
    처음 직장을 들어와서는 너무 공감이 되는 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나에게 언제 그런 시절이 있는지 오만한 마음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인류학에서도 영장류들이 모방으로 배우려고 해도 기다려주고, 다시 재연해주고, 자세를 잡아주고 하며 올챙이 시절을, 감정이입으로, 아무런 보상도 없이 해주는 걸 공부했는데요. 어쩌면 이 ‘관용’이야말로 실천하기 어려우면서도, 이 사회에서 필요한 보석 같은 개념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2024-10-02 00:39

    세상을, 사람을 보는 시선이 나의 마음에서 나온다.
    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정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긴데, 이게 또 막상 내가 그 속에 있게 되면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이 안 보이게 마련이지요.
    일단 누가 미울 때 덮어놓고 죽여 살려를 따지기 전에 내 마음이 어떤지를 들여다봐야 겠습니다.


  • 2024-10-05 12:46

    큰 일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자세. 주관적 태도 시선이 문제입니다. 내 의견이 그저 의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고 가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