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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유덕한 사람은 자유롭다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5. 오만에서 자긍심으로

작성자
그럴수있지
작성일
2024-07-21 19:04
조회
166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미움과 노여움, 무시 등에 대하여 그가 할 수 있는 한 사랑으로 또는 관대함으로 보답하려고 노력한다.
미움의 모든 정서들은 나쁜 것들이다. 이에 따라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그가 할 수 있는 한 미움의 정서들을 겪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도 이 정서들을 겪지 않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미움은 상호적인 미움에 의해 증대되지만 반대로 사랑에 의해 소멸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미움은 사랑으로 변화된다. 그러므로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미움 등에 대하여 그가 할 수 있는 한 사랑으로 또는 관대함으로 보답하려고 노력한다.
상호적인 미움으로 침해에 대하여 보복하려고 하는 사람은 분명히 불행하게 살아가게 된다. 반대로 사랑으로 미움을 극복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기쁘고 확고하게 투쟁하며, 많은 사람들에 맞서서도 한 사람만큼이나 손쉽게 저항하고 운으로부터의 도움을 거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가 극복해낸 사람들은 분명히 힘의 부족이 아니라 힘의 증대를 통해 기쁘게 굴복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랑과 지성에 대한 정의만으로도 아주 분명하게 따라 나오기 때문에 별도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
– 「에티카4부 정리 46, 증명, 주석

자유인은 기쁘게 굴복한다.

그러나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자유인의 자유는 절대 수동적 정서를 겪지 않는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정신신체 복합체의 일정 부분에서는, 그러한 정념들이 그의 행위를 절대 지배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는 사실이다. –117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유인은 자연과 자연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특히 자기 능력의 한계와 모든 사물을 관장하는 필연성을 잘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겨도 이를 침착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122

자기 능력의 한계와 자연의 필연성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량은 극히 제한적이며 외부 원인의 역량에 의해 무한하게 압도된다. 이에 따라 우리는 우리 바깥에 있는 실재들을 우리의 사용에 맞춰 조정하는 절대적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다 했으며, 우리가 가진 역량은 우리가 이 일을 피할 수 있는 게 하는 데까지 미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그 질서를 따르는 자연 전체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유용성의 원칙이 요청하는 것과 상반되게 일어나는 것을 평정하게 견뎌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를 명석판명하게 인식한다면, 지적 능력에 의해 정의되는 우리의 부분, 곧 우리의 더 나은 부분은 이에 대해 기꺼이 만족할 것이며, 이러한 자족감 속에서 존속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식하는 한에서 우리는 필요한 것 이외의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을 수 있으며, 오직 참된 것에서만 절대적으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가 이것들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한에서, 우리의 더 나은 부분의 노력은 자연 전체의 질서와 합치하게 된다.– 「에티카4부 부록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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