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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화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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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철학답사 탐구생활] 나를 넘어서는 공간

작성자
오켜니
작성일
2025-06-22 23:14
조회
46

나를 넘어서는 공간

 

최옥현

 

1. 현충일의 사이렌 소리

 

현충일 아침에 잠에서 깨면서 오늘이 공휴일인지 토요일인지 분간이 안되었다. 만약에 토요일 아침이라면 아이를 깨워서 학원을 보내야 하는데 당장 벌떡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다가 토요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했다. 늦은 아침을 준비하려고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낮은 음으로 들려온다. ! 현충일 묵념 사이렌이구나. 다행히 내 옆에 아무도 없어서 고무장갑을 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전쟁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희생에 감사합니다. 인간을 위해 희생한 동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나는 이번 현충일에 뜻밖에 국가행사의 사이렌 소리에 반응하였다. 낮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나는 나를 넘어 어딘가에 접속하여 무언가를 간구하였다. 사이렌 소리는 나를 넘어서는공간을 창출했다. 우리는 나를 넘어서는경험 속에서 성스러움을 체험한다. 514일 허남린 선생님과 인문공간세종이 함께한 일본 철학사상 답사 여행은 일본의 각종 종교에 풍덩 빠졌다 나온 여행이었으며 수많은 종교적 형식과 도구들을 경험한 여행이었다.

 

2. 듣고,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머리를 숙이고

 

우리는 일본의 불교, 신도, 천리교 등의 사찰을 방문해서 각종 종교 체험을 했다. 모든 종교는 오감을 이용해 성스러운 공간을 만든다. 첫 번째는 소리이다. 절에 가면 들리는 진언과 독경 소리,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 소리는 가장 성스러운 소리다. 우리나라의 불전함은 돈을 넣는 구멍이 한 곳으로 한 일()자형 모양이다. 그리고 웬만하면 지폐를 넣기 때문에 돈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일본 사찰의 사이센(賽銭) 나무 상자는 돈을 넣는 위쪽이 창살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일본의 신도들은 동전을 나무 상자에 부딪혀 소리가 나게 던진 후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나무 상자에 동전이 부딪히는 소리는 신을 부르는 소리이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은 신도(神道)의 배전(拜殿) 앞에서 박수를 치거나 종을 울려 신을 부른다. 히에이산 엔랴쿠지(比叡山 延暦寺)에서는 100엔을 내고 한 번씩 개운의 종을 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스스로 종을 치고 종소리의 여운에 자신의 기도를 실어 보낸다.

두 번째는 시각이다. 우리는 사찰의 건축 양식과 불상의 모습과 제단의 구성 등을 보면서 각종 종교가 가진 의미를 유추하려고 노력하였다. 일본의 사찰은 어두운 갈색 톤에 천장이 높고 직선형 지붕에 가라하후(唐破風, 곡선형 지붕 장식)를 넣는다. 히가시 혼간지(東本願寺) 입구의 가라하후는 우리에게는 어색하고 낯선 일본 사찰의 미를 보여준다. 사찰 내부 제단은 금색의 촛대, 각종 금색 제기들, 금색 꽃 등으로 장식되어 우리나라보다 화려하였다. 히에이산 엔랴쿠지의 근본대탑(根本大塔) 안에 있는 제단은 우리가 서 있는 위치보다 한 단 아래쪽에 위치하고 그 제단에서 스님이 불을 피우면서 의례를 지내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하는 제단이 아니라 아래로 향하게 하는 제단이 신기했는데, 더불어 컴컴한 목조건물 안에서 불을 피우는 의례가 신비감을 더했다. 그리고 고야산 곤고부지(金剛峯寺) 안에는 두 개의 만다라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태장계 만다라는 큰 원 모양 하나로 구성되어 있고, 금강계 만다라는 우주가 여러 개의 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만다라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그냥 보기만 했다.

세 번째는 촉각이다. 고야산 입구 지손인(慈尊院)의 미륵불을 모신 전각 앞에 반질반질한 돌덩어리가 나무 상자 안에 들어있는데 그 돌을 만지면 건강과 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우리는 돌아가면서 그 돌을 만졌다. 지손인의 본당에는 구카이 스님의 금강저가 놓여 있었는데 꽤 크고 무거웠다. 지손인의 주지스님은 이 금강저를 왼쪽 가슴 쪽에 붙여서 드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금강저는 번개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러 생각과 번뇌를 무너뜨리는 지혜와 마음의 힘을 상징한다고 한다. 보기만 하던 금강저를 직접 들어서 몸에 가까이 대어보니 우리 마음에도 금강저와 같은 지혜와 힘이 존재할 것이라는 근거가 없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잠깐 삼천포로 빠져보면 히에이산 엔랴쿠지(比叡山 延暦寺)에서 가장 놀란 것은 법당 안에서 불교 관련 굿즈를 팔고 있는 모습이었다. 부처님 불상과 제단 바로 옆에 위치한 굿즈라니! 우리나라 사찰로 생각해보면 대웅전 안에 굿즈를 파는 가게가 함께 있는 꼴이다. 부처님 불상과 상품 사이에 아무런 거리를 두지 않은 것에 놀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법당에서 한 걸음만 나가면 바로 소원을 적는 기왓장을 판다. 우리 시대의 성스러움은 상품과 연결되어 있다. 50보와 100보의 차이를 두고 나는 놀란 것인가! 팔찌, 염주 등 종교 굿즈라는 것도 결국 촉각을 통해 성스러움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어느 사찰이든 향을 피워서, 후각을 통해 우리가 세속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환기시켜 주었다.

이연숙 선생님은 어느 곳에 도착하시든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고 기도를 하셨다. 제일 많이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신 분이 이연숙 선생님일 것이다. 일본 불교와 신도(神道)는 사찰의 역할이 전문적으로 분화가 되어 있다고 허남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건강을 비는 곳, 돈복을 비는 곳, 직장운을 비는 곳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불상 유적을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으로 해석하면서 보는데 일본인들은 영발이 좋은 불상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 이연숙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의 세부 사항에 따라 우리도 함께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였다.

우리는 여러 종교시설에 준비된 많은 것들을 듣고 보고 만지면서 잠깐의 경험이지만 그 의미를 헤아려보려고 애썼다. 한국으로 돌아가 공부해보면 좀 더 알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다음 답사지로 향했다.

 

3. 그냥 지금, 여기

 

덴리시의 천리교단에 도착할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매 답사지마다 우리 답사팀은 자동차 3대에 나누어 타고, 허남린 선생님의 쪽지 메모에 적힌 전화번호를 구글 지도에 입력하여, 무사히 목적지에서 함께 모일 수 있었다. 그런데 천리교 지역에서는 좀 헤매었다. 이곳 주차장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고 주차장 정보가 세밀하지 않아서 허선생님 차에 탄 일행을 한참 후에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넓은데 휑한느낌은 강렬하였다.

우리는 천리교 본당으로 향하였다. 자갈이 깔린 매우 넓은 마당에 천리교 본당 건물만이 우뚝 서 있다. 절 마당을 채우고 있는 나무와 꽃들, 석등, 탑 등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본당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본당의 문은 사방으로 뚫려 있고 본당 내부를 채우는 불상, 보살상, 제단, 제기, 공양물 등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본당 중앙에 음양을 나타내는 간단한 그림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 신도들은 본당 마루에 앉아 손짓으로 경전 구절을 읊고 있었다.

우리는 답사지 곳곳을 다니며 절의 외부와 내부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종교의 도구들을 보고 해석하느라 바빴는데 이곳에서는 아무런 할 일이 없었다. 앞의 답사지에서 무척 바빴던 우리의 오감은 할 일을 찾지 못했다. 서로 약속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동시에 각자 서 있던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앉아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지금의 공기에, 밖의 새소리에 저절로 집중하였다. 알고 있던 지식을 끌고 와서 비교 평가할 필요가 없었고, 나중을 위해 어떤 궁금증을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지금, 여기에 머무르기만 하면 되었다. 45일의 답사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천리교 본당이 우리에게 선물한 공간의 분위기였다. 수많은 종교적 도구가 우리를 성스러운 곳으로 데려가지만 지금 여기 고요히 머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신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넓고 휑한 마당에 놓인 천리교의 본당이나 본당 내부의 구조나 별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의 본당 내외부는 자연 그 자체인 어버이신을 모셔 인간 마음의 티끌을 계속 청소해나가면 된다는 그들의 가볍고 간단한 가르침을 닮아 있었다. 그들에게 진리는 복잡하지 않고 실천은 단순하다.

 

4. 성스러움으로 가는 길

 

꽃보다 할배시리즈가 한창 유행할 때 여배우들이 유럽의 어느 성당을 방문한 모습을 TV로 본 적이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김자옥 배우가 어느 성당에 들어가자마자 울컥하면서 바로 성당에 앉아 기도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성당이 만드는 공간의 분위기가 바로 그녀의 뒷무릎을 쳐서 그녀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종교는 우리의 자아 경계를 넘어서게 한다. 나의 욕심과 고집과 무지를 인정하고 다음 단계를 생각하게 한다. 욕심을 부리면 두 손이 모아지지 않고 허리가 숙여지지 않는다. 국가의 사이렌 소리부터 향 냄새, 독경 소리,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까지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나를 넘어서는 공간을 제공한다. 종교시설에 가든지, 일상에서 자기만의 의례를 만들든지, 나를 넘어서는 수많은 도구와 형식을 이용하여 우리가 아주 조금씩 성숙의 길로 나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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