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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아니아 Oceania

 

[마나 모아나 답사기] 헤이 티키의 목소리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5-05-27 23:59
조회
30

 

유물이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나는 박물관 유리 진열장에 전시된 유물들을 보면서 그들은 깊은 잠을 자는 것처럼 느꼈었다. 하지만 지난주 다녀온 마나 모아나특별전 답사에서 듣게 된 오선민 선생님의 강의에 따르면 우리는 유물과 대화할 수 있다. 모든 유물은 각자가 가진 맥락이 있기 때문에, 유물을 마주할 때 공간을 배치한 박물관의 관점에서, 유물 자신의 이야기 속에 참여하고 있는 유물의 관점에서, 직접 전시회를 찾은 관람자의 관점에서 유물을 바라보면 대화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박물관이나 관람자의 관점을 생각하는 일은 가능할 것 같지만, 유물의 관점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 잘 떠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관람이 시작되었다.

전시회는 벽면과 바닥에 상영되는 영상을 통해 배를 타고 입장한다. 전시회가 오세아니아 항해자들의 이야기인 만큼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배를 타고 그들의 세계, 그들의 바다, 그들의 섬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 구역(1부 물의 영토)에서는 카누와 노, 카누 장식 조각, 항해용 나무 막대 지도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전사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다음 구역(2부 삶이 깃든 터전)에서는 방패, 망치 등과 악기, 다소 무섭게 생긴 가면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전시회 내부는 처음부터 계속 나무 악기(바누아투 말레쿨라 섬, ‘갈라진 틈 사이로 울림을 내는 거대한 북’)를 두드리는 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키가 3m가 훌쩍 넘는 이 악기 연주곡은 생각보다 음정 표현이 다채로웠다. 이어 큰 화면으로 오세아니아 원주민들의 의례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다음 구역(3부 세대를 잇는 시간)에서 나는 헤이 티키hei tiki’를 보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왠지 헤이 티키도 그런 것 같았다. 3년 전 나는 그를 알게 되었다. 인류학 세미나에서 읽은 증여론에서 만난 그는 마오리족이 사용하던 마나(mana, 신성한 힘)가 깃든 목걸이 팬던트다. ‘라는 호칭이 좀 어색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것이라는 표현이 더 어색한 이유는 유물에 담겨있는 신성한 힘이 물건이 아닌 어떤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시회 도록에 따르면 헤이 티키를 착용한 사람은 권력과 명예, 권위를 상징하는 마나를 지니게 된다. 또 헤이 티키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 남성의 전쟁 출전에 부적으로 사용되어 신의 보호를 빌기도 했다.

신성한 헤이 티키는 자기 마을 바깥으로도 나가는 일이 있었다. 바로 쿨라 교역때다. 증여론에서 말하는 쿨라 교역은 서태평양 말리네시아의 트로브리안드 제도를 중심으로 섬들 간에 이루어졌던 자발적 증여(교환) 시스템이다. 쿨라 사람들은 타옹가(물건)에 그들이 세대를 이어 살아온 지난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믿는다. 이 교환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물건을 자기 소유로 생각하지 않고, 모든 타옹가는 영혼을 가진 생명이자 선물을 준 사람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전통을 지닌 신성한 타옹가. 그러니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보이는 것 너머의 타옹가를 본다. 헤이 티키는 이 교역에서 타옹가 중 하나였다. 아름다운 옥빛의 몸체, 고개를 살며시 기울인 얼굴,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신비로운 생김. 그리고 스며들어 있는 신성한 힘. 헤이 티키를 목에 건 그들이 느꼈을 보이지 않는 기운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나는 전시회에서 헤이 티키를 만나자 세미나에서 공부한 그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전시회 관람에 앞서 들었던 강의에서 궁금했던 유물의 관점이라는 것은 유물이 살았던 그 풍경과 이야기에 대한 이해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생생하게 그 맥락을 이해하는 일은 단번에 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유물에 대해 알아야좀 보인다는 결론으로 좁혀진다.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유물과 관계가 무르익는 시간 말이다. 전시회가 9월까지라고 하니 헤이 티키와 친해지는 시간을 더 가져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내 목소리가 그에게 전해지고 그의 목소리가 나에게 들리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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