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기] 부서진 토기와 함께 깨지는 ‘나’라는 형상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기>
부서진 토기와 함께 깨지는 ‘나’라는 형상
2024.09.09.최수정
애초에 이번 답사 목적지는 일본 조몬 유적지였다. 그런데 일본 지진 위험이 예고되며 현지 사정이 불확실하게 되자 방향을 틀어 국내 답사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고대인의 일본 유적지를 가는 것과 굳이 그곳이 아니어도 될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번 답사의 주제는 ‘잃어버린 대칭성을 찾아서’였다. 대칭성이란 바로 삶과 죽음의 대칭성이다. 삶과 죽음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 생명의 연속성 중 하나로 내재되어 있는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과정이다. 대칭성 속에서 삶이란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 질서화 무질서의 조합이 즉흥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세계다.
나카자와 신이치·사카모토 류이치, 조혜영 옮김, 「『縄文聖地巡禮』의 부분요약 (인문공간세종)」에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조몬 유적 답사를 ‘순례’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순례’란 영혼의 원향(原鄕)으로 돌아갔다 온다는 것인데, 원향이란 삶과 죽음이 함께 있던 곳이다. 그 원향의 정신이 가장 잘 남아 있다고 여겨지는 일본 조몬 유적지를 답사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꼭 절대적일 필요는 없었지 않을까. 순례, 답사란 익숙한 곳을 떠나 먼 곳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삶과 죽음의 운동과 같은 것이다. 그 운동은 언제나 역동적이다.
일본 답사가 아닌 국내 답사로 방향을 틀며 나는 의도치 않게 다른 방향과 즉흥적 연합을 했다. 이것이야말로 조몬의 방식이다. 어떤 환경이나 변화에도 민첩한 적응력을 보이며 유연성 있게 행동한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있던 것을 깨트릴 수 있다. 단단한 실재가 부서지며 새로운 탄생이 시작된다는 것을 조몬 문화를 공부하면서 배웠다. 죽음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생명력이 있는 죽음’을 찾아 나설 때 일본이어도 좋고 국내여도 좋다. 나를 깨트리고 내가 발견한 새로운 것들과 연합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면 어디든 좋지 아니한가.
부산 동삼동 패총
국내 첫 선사유적 답사지는 <동삼동 패총 전시관>이었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생활했던 고대인에게 조개는 중요한 식량자원이었을 것이다. 바닷물이 밀려난 질척한 개펄에서 조개를 캐는 고대인을 떠올려본다. 조개의 살 속에는 약간의 진흙도 들어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고대인들은 조개가 진흙을 먹고 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이미 죽은 조개가 자신의 속을 진흙으로 가득 채우고 묻혀 있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고대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개펄이 조개가 사는 곳이기도 죽어 묻히는 곳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조개무덤, 패총은 고대인이 식량으로 채취하여 먹고 버린 조개껍질이 오랜 시간 동안 쌓여 만들어진 유적이다. 무덤처럼 쌓인 모습 때문에 조개무덤 혹은 조개무지라고도 불린다. 그곳에는 조개껍질 뿐만 아니라, 토기의 파편, 동물의 뼈, 심지어 사람의 뼈가 함께 나온다. 현대인이 즉각적으로 쓰레기장이라고 떠올리는 그곳에서 사람의 유골이 나왔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고대인이 쓰레기장에 사람의 유골을 내던지듯이 버렸을까. 그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기 8,0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는 <동삼동 패총 전시관>에서 나온 조개껍질에 구멍을 뚫어 사람의 얼굴형상을 만든 유물을 보며 나는 『빙하 이후』에서 서기전 10,000년 어느 날 고대인들이 어른들의 두개골에 회를 발라 가면을 만들던 모습(『빙하 이후』, 80쪽)이 떠올랐다. 그들은 두개골에 하얗고 고운 회를 입힌 다음 붉게 칠하고 조개로 눈을 장식한 후 두개골을 집안에 놓는다. 조개껍질로 사람의 얼굴을 만든 사람들과 두개골을 진흙과 조개로 장식하던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에게는 진흙과 조개껍질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빙하 이후』에서는 이것이 죽은 조상에 대한 의식이 있었다는 증거로 설명되는데, <동삼동 패총 전시관>의 조개껍질 가면 또한 실제 크기가 작아서 직접 사람의 가면으로 썼다기보다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된다. 왜 하필 사람 얼굴 모양일까. 조개껍질 가면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 조상의 얼굴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그들에게 패총은 단지 쓰레기 더미가 될 수 없다.
흙과 토기
『빙하 이후』에서 조몬인들은 저장 구덩이에 도토리를 저장한다. 이는 겨울을 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쓴맛을 제거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몬 문화 답사 자료집」(인문공간세종)에 의하면 조몬인들의 식생은 떫은맛 처리가 필요한 칠엽수 열매가 주를 이룬다. 매일 먹어야 하는 식재료와 함께 흙의 성질을 생각했던 고대인들에게 흙이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물질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흙이란 어떤 변용을 일으키는 힘을 담고 있는 주술적 물질이었을지 모른다.
고대인들에게 진흙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진흙에서 캐낸 조개의 뼈, 껍질은 부서져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동물의 뼈도 사람의 뼈도 마찬가지다. 고대인들에게 흙이란 조상의 뼛가루와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조상의 뼛가루를 모아 토기를 만드는 일은 조상의 부활을 의미했을까.
사람의 얼굴을 의인화한 것 같은 토우와 토기는 잠시 살아 돌아온 조상들일지도 모른다. 흙으로 빚은 조상의 형상이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연결한다. 삶과 죽음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연결한다. 그들에게 흙은 삶을 창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연결의 고리였다.
<국립 김해 박물관>
패총에서 발견된 토기는 대부분 ‘부서져’ 발견된다. 세월과 기후변화로 저절로 부서진 것이 아니라, 일부러 부서트린 흔적이 있다. 더할 수 없이 화려하게 만들어진 토기를 깨부수는 일은 파괴와 재생, 죽음과 삶의 순환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토기를 깨트리는 의례를 통해 죽은 조상들이 잠시 진흙형상으로 구체화되고 실체화되어 산 자들의 의례에 참석하고 부서져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간다.
연속된 세계
인류 최초의 도구는 돌로 만들어졌다. 주먹도끼를 만들던 구석기인들은 돌에서 박편을 떼어내며 형태를 만든다. 처음부터 만들고자 하는 주먹도끼의 형태를 구상하면서 다듬어 가는 것이다. 돌과 뼈로 만든 도구는 있던 것을 덜어내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 흙으로 토기를 만드는 조몬, 신석기인들은 거꾸로 재료를 덧붙이며 형태를 만든다. 부분을 조합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돌에서 흙으로 재료가 바뀌면서 새로운 물질에 적응하고 천천히 모티프를 연합해 나간다. 강하고 단단한 돌보다 흙이라는 재료가 즉흥적 영감을 이끌어내기가 쉬웠던 것일까. 인류 도구의 발달이 돌에서 흙으로 이어질 때까지 그들은 아마 수많은 조합을 시도해봤을 것이다.
<동삼동 패총 전시관>
<동삼동 패총 전시관>앞에 서서 지층의 경계가 어딘지 확인해 보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패총의 경계는 저희들끼리 섞이고 뒤틀리며 거의 한몸이 되어 있다. 일본 조몬 문화 대신 떠난 국내 선사유적 답사에서 우리는 주로 구석기 시대의 유적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국내 구석기 유적이 많지 않기도 했지만, 나의 눈으로는 어디서 어디까지가 구석기 시대이고 신석기 시대인지 또는 청동기 시대 인지 확연히 구별할 수 없었다. 전문가의 설명이 없으면 유적들의 모양과 형식이 뚜렷이 구별되어 보이지 않았다.
토기를 만들었던 고대인도 어느 날 갑자기 진흙으로 도구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창조의 원리나 방향성은 다양하고 복잡한 연속성에서 온다. 그 안에는 시험하고 시도하며 실패하는 중에 죽어간 수많은 존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죽어간 죽음과 함께 고대인들은 자신의 삶을 멈춤 없이 이끌었을 것이다. 조상숭배란 그런 죽음이 재생되어 되돌아오는 힘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고대인들의 토기를 만들어 조상숭배 의례를 치르고 흙 속에 무덤을 만들어 재생과 풍요를 기원했던 것은 죽음의 연속성에 기댄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을 모두 창조하는 흙의 잠재적 가능성을 믿었다. 기꺼이 흩어지고 모아지고 단단해지며 깨지는 흙의 유연한 형태가 사람들에게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불안을 달래주었을 것이다. 눈앞에서 과감하게 부서지는 토기의 형상을 기억하고 때가 되면 부서져 되돌아가는 흙의 순환으로 위로하며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경험과 약해진 심신을 극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