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한반도 the Korean Peninsula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기] 다시 보는 돌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기(1) / 2024.09.09. / 진진
다시 보는 돌
산을 오르다 보면 항상 보게 되는 광경이 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 여기저기에 바닥에서부터 하나씩 쌓아 올려진 돌들이 탑을 이루고 있고 또 누군가가 거기에 마음을 보태고 있다. 산뿐만이 아니다. 바다, 강, 국내뿐 아니라 세계 곳곳 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돌탑에 쌓은 돌들은 어디 멀리서 가져온 귀한 돌이 아니라 인근에 널려 있는 돌이다. 사람들은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빌고 소원하면서 왜 흔하디흔한 돌을 쌓아 올릴까.
나는 인문세에서 ‘잃어버린 대칭성을 찾아’라는 주제로 떠난 ‘한반도 중남부 선사유적 답사’에서 이 흔해빠진 ‘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기저기 발에 차이는 게 돌이요,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격언이 보여주듯이 돌은 하찮고 하등 쓸 데 없는 물건으로 여겨진다. 나 또한 한 번도 돌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귀이 여겨본 적이 없음은 물론이다. 이런 돌들이 답사 동안 방문한 박물관에서는 귀한 유물로 둔갑해 유리 전시장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나 같은 일반인이 봐서는 그 돌이나 땅에 널린 자갈돌이나 별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박물관의 유리 전시관 앞에 서서 ‘저게 어딜 봐서 주먹도끼고 긁개인지, 사냥돌이고 찍개인지 어떻게 알아.’ ‘요 앞에서 저런 돌 본 것 같은데.’하며 흔하고 비슷한 돌의 모습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랬던 석기가 3박 4일 동안 선사유적 박물관들을 답사하면서 마지막 날 즈음이 되자 어느 순간 다르게 보였다. 작은 좀돌날과 격지, 찌르개들이 예쁘게 보이기도 하고 각각이 다르게 보이는 게, 지금 당장 발굴 현장에 투입되어도 석기들을 종류별로 구분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자 인류에게 돌이란 내가 지금 떠올리듯이 별 볼 일 없는 자연물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진 후포리 신석기 유적관>에서 보았던, 인골과 함께 매장된 잘 마연된 매끈한 돌들과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거석문화들과 지금도 볼 수 있는 돌탑들은 이러한 생각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인류에게 돌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였을까?
광물학자
충북 단양의 <수양개 선사유물 전시관>은 중기 구석기부터 원삼국 시대까지 인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특히 50여 곳의 석기제작소가 발굴되어 후기 구석기의 다양한 석기 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몇 가지의 석기 도구들만 전시된 여느 박물관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석기의 종류마다 그 석기를 제작하는 방법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데, 영상을 유심히 보다 보면 아무 돌이나 집어서 마구 두드리고 깨어서는 그 도구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먹도끼, 사냥돌, 긁개, 밀개, 새기개 등의 도구들은 사용된 암석도 도구에 따라 다르고 만들어진 방법이나 사용법도 도구의 종류나 용도에 따라 달랐다.
당시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처럼 주먹도끼, 슴베찌르개, 좀돌날로 이름 붙여 도구를 구별하여 만들거나 이 돌은 셰일이고 저 돌은 규암이라며 암석을 구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나 사용되는 목적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도구들을 만들고, 그 형태나 사용된 돌의 종류가 용도에 따라 비슷한 양상을 띤다는 것은 그들이 그 도구의 쓰임과 요구되는 특징들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생활의 지천에 널린 돌들을 얼마나 자세히 살피고 그 특성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단양역에서 집으로 서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중 손유나 선생님이 인근 공원 구석에서 직접 석기를 만들어본 것을 이야기해 주셨다. 함께 따라가 본 나는 같이 바닥에 주저앉아 종류가 다른 돌들 부딪혀 보고 깨뜨려 보며 박물관에서 본 ‘홈날 석기’를 만들어 보았다. ‘홈날 석기는 격지 또는 돌날의 어느 한 부분에 오목한 홈을 낸 석기로 홈의 폭이 좁은 것이 특징이며 주로 나뭇가지나 뼈를 다듬거나 잘라내는 데 쓰였다.’(수양개 선사유물 전시관> 유물 설명) 손유나 선생님과 나는 함께 만든 홈날 석기로 화단의 풀들을 잘라 보았는데, 홈날 석기를 만드는 것도 어려웠지만 풀을 자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잘 잘리는 풀도 있고 잘리지 않는 풀도 있고, 얇고 가늘다고 해서 잘 잘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긴간돌도끼
<울진 후포리 신석기 유적관>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매장 유적을 볼 수 있다. 40여 명의 인골과 껴묻거리가 함께 묻힌 그곳에서는 특이하게도 사용 흔적이 없는 긴간돌도끼 130여 점이 발견되었다. 직접 본 긴간돌도끼는 더 기이했는데, 성인 여성 팔뚝의 길이와 손목 두께만한 표면이 맨들맨들하게 잘 갈려진 돌들이 무덤의 흙 위에 널려 있었다. 이 외에도 돌이나 옥으로 만든 꾸미개들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이는 다른 신석기 무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고 긴간돌도끼는 그 모양과 많은 개수가 내게 기이하게 여겨졌다.
나는 맨들하게 마연된 모양과 크기가 비슷한 긴간돌도끼들을 보자 부산의 <복천 박물관>에서 보았던 ‘덩이쇠’ 매장품이 떠올랐다. 덩이쇠는 철기시대 매장 유적에서 볼 수 있는 껴묻거리로, 시신의 아래에 철을 납작하게 만든 덩이쇠들을 열을 지어 묻었다. 당시에 철은 생활용품이나 무기 등을 만들기 위한 단단한 재료로 덩이쇠는 유용하고 중요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또한 덩이쇠와 긴간돌도끼의 공통점은 두 부장품 모두 사용되지 않은 것이었다는 점과 도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점이었다.
사용한 흔적이 없는 것을 함께 묻었다는 것은 실생활에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간돌도끼의 경우 일상에서 사용하기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길이가 길어 그 자체로는 어디에 쓰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돌은 구석기부터 인간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크고 단순한 형태의 주먹도끼부터 찌르개, 긁개, 밀개, 새기기 등의 석기들까지 그 종류와 용도, 형태가 다양해졌지만 오랜 시간 동안 돌은 인류에게 중요한 도구의 재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