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답사
북아메리카 North America
‘직조’를 통해 우주의 균형과 조화를 배운다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2024.7.24. 최수정
‘직조’를 통해 우주의 균형과 조화를 배운다
국립 중앙박물관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전시회에서 맨 처음 우리를 맞이 한 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색과 무늬로 장식된 사슴 가죽 ‘요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 이것을 나무로 만든 스키 신발이라고 생각했다. 얼굴을 내밀게 뚫린 구멍에 발을 끼워 넣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보게 된 것이 ‘티피’라고 하는 원주민 부곡의 집이었다. 실물 크기로 전시된 이 집은 마치 머리가 생략된 마네킹에 입혀 놓은 드레스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조립과 해체가 간편하게 땅바닥에 나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들소 가죽을 덮는 형태인데, 티피 겉면에는 주로 부족의 주요 사건이나 개인 경험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들소 가죽에 들소를 사냥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티피’ 속에서 들소 고기를 먹는 들소 털로 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자기와 들소, 삶과 죽음이 함께 있는 이 세계를 어떻게 생각할까.
‘요람’도 ‘티피’도 북미 원주민들의 민첩한 이동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스키 모양의 요람도 이동을 위한 탈것처럼 보이고, ‘티피’도 정체성을 이동하며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처럼 보인 데서 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다.
북미 원주민이 생각하는 우주는 하나의 원을 이룬다. 이를 원형 세계관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공간에 대한 사고뿐 아니라 시간에 대한 개념에서도 나타난다. 과거, 현재, 미래가 직선이 아닌 원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둥그런 세계에서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세계관이다. 그들은 이 둥그런 세계를 이동하며 살아간다.
올바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는 직조
이는 그들이 인생 자체라고 생각하는 ‘직조’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의 직물은 방수가 될 만큼 촘촘하고 단단하며 색상과 문양이 아름답다. 그것은 마치 이 세계에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존재들 같다.
나바호족은 직조를 통해 일상생활에 살아 있는 ‘신성한 사람들’의 영향력을 인식하고 인정한다. 그들은 올바른 생각으로 인도하고 옳지 않은 관계에 의해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게 돕는다. 삶의 조건을 만드는 것은 관계이기 때문에 나쁜 관계에 들어서지 않게 생각을 인도한다. 직조를 통해 일어나는 일들을 ‘건강하고 아름답게(hosho)’ 유지하기 위해 올바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직조를 통해 생각을 질서 있게 정리하며 살아 가는 동안 땅과 하늘, 그리고 동식물 등 자연의 모든 것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요람에 있을 때부터 자연을 보고 배우고, 조금 자란 뒤에는 놀이를 통해 배운다. 여러 가지 다양한 모형을 가지고 직물 짜기, 집 짓기 놀이로 올바로 생각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자연의 질서를 지키고, 다른 존재들과 균형과 조화로운 삶을 살도록 한다. 놀이를 통해 만들어 봄으로써 자연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그들을 공경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따라서 직조 예술은 일상생활과 분리할 수 없다. 매일매일 올바른 생각을 위한 기도를 하듯 베틀 앞에 앉는다. 일상의 직조는 언제나 그들이 살고 있는 풍경에서 시작된다. 그 곳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곳에서 직조하는 여인은 풍부한 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본다. 식물들에게서, 흙과 먼지에서도 색을 본다. 그녀는 그 색으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있게 한 경치, 언덕들, 고원들의 이야기를 짠다. 이 땅에서 자라며 뛰어다니고, 나무를 오르고 바위를 오르면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곳에서 그녀만이 볼 수 있는 수많은 색깔을 추출한다.
직조를 위한 전체 공정은 사실 아주 노동집약적이다. 양을 키우고 매일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초원에 풀어 놓고 풀을 먹이고 돌본다. 세척하고 다듬고 건조한 후 빗질을 하고 색깔이 있는 양털과 흰색 양털을 섞어서 회색 톤이나 베이지 톤의 색조를 만들어 낸다. 모든 과정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직조를 준비하는 과정이고, 실제로 베틀에 앉아서 직조를 하는 일은 가장 쉽다고 한다. 날실을 거는 과정 또한 매우 지루하지만 실을 만든 대지, 동물들, 하늘, 식물들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생각하며 베틀에 앉는다.
직조를 하는 동안 항상 좋은 생각을 해야 하고, 직물 앞에서는 베틀 앞에서는, 절대로 욕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내 베짜기가 순조롭게 흘러간다. 매일 직조 작업과 소통한다. 자신이 짜고 있는 러그에게 말을 걸고 심지어 가락을 돌릴 때도 양털과 대화하며 무슨 일인지, 왜 안 늘어나는지 얘기한다. 이것은 일상적인 의례와 같다. 올바르지 않은 생각을 하면 실이 엉키고 질서가 흐트러지며 모양이 완성되지 않는다. 직조하는 사람은 날실과 씨실로 기억과 상상의 이야기를 짜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공동의 이미지를 만들며 우주에 질서를 배운다.
균형과 조화의 길을 걷는다
북미 원주민들의 ‘요람’, ‘테피’, ‘직물’들 대부분은 ‘술’이 달려있다. 항상 여분의 끈이 남도록 하여 그 끈과 연결될 존재를 기다린다. 그런 의미로 이것들은 모두 영혼의 탈 것이다. 모두 벽처럼 나와 나 바깥을 가르지만 손쉽게 허물어져 전체와 균형을 이루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들의 거주하는 공간은 언제나 걸어 다녔다. 그들에게 ‘나’란 옮기고, 옮겨지는 존재였다. 원주민들의 집들은 벗어버릴 수 있는 옷이나 갈아 신을 수 있는 신발처럼 간단한 끈으로 풀어낼 수 있다. 언제든 자기를 벗고 우주와의 새로운 매듭을 지을 준비가 되어 있다.
팀 잉골드는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에서 “모든 상상하기는 기억하기다”라고 했다.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 268쪽) 전시회 안에 있을 때 내가 느꼈던 평온한 기분은 내가 상상하는 그들에게서 나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예전에 거기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나도 온 우주와 깊은 유대감을 느꼈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비록 우리는 우주와 인간의 유대가 풀어져 버려서, 우주와 최초로 얽혔던 상태를 느끼지 못하지만, 분명 언젠가 그 길을 지나왔던 것 같다.
원주민들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꿈을 통해 집을 짓고, 직조하며 그것 가운데에 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자신들의 삶의 맥락을 기억하고 서로 조화되는 가치들을 생각한다. 그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거했던 여러 거처들이 상호침투하며 지난날을 간직한다. 집과 옷과 직물의 보호와 지지를 받으며 그 안에서 삶의 기운을 되찾고 매듭을 맺을 끈을 찾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