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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채식주의자] 나무와 피_수정

작성자
콩새
작성일
2024-12-02 17:49
조회
66

동화 인류학<채식주의자>


                                   나무와 피


                                                           2024.12.2. 정혜숙


  영혜의 육식 거부는 폭력에 대한 저항이기도 합니다. 어릴적 영혜에게 폭력을 저질렀던 영혜의 아버지는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에게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혜를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마치 폭력을 도모하는 단체에서 일원을 제압하는 폭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호한 영혜는 스스로의 결정을 굽히지 않습니다. 

  꿈을 꾼 후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는 아버지의 폭력과 대치 끝에 더 이상 자신이 과거의 영혜가 아님을 손목을 그어 선언합니다. 영혜의 상처에서 쏟아진 따끗하고 끈적한 검붉은 피는 영혜의 몸을 동물에서 식물로 바꾸는 과정으로 보여집니다. 그렇게 영혜는 한 발 더 식물에 가까워진 듯 합니다. 자신을 식물로 인식하는 영혜는 바람이 일어야 겨우 움직이는 나무처럼 말 수가 적습니다. 식물처럼 광합성으로 생을 지탱하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영해는 그게 무엇이든 먹어야 생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꿈꾸는 식물로 의식하고 잠자는 영혜는 식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영혜는 동물로서 먹어야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운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세상과 거리를 둘 수록 영혜는 천천히 나무가 되어 갑니다. 단단하고 조용하게 굳어져 갑니다. 먹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 영혜는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영혜에게는 더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왜 죽으면 안되는지를 언니에게 묻는 영혜의 질문에 그럴듯한 대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왜 죽으면 안될까요?

  영혜의 몽고반점은 식물의 꽃잎처럼 살아있습니다. 나무가 되어가는 그리고 죽어가는 그녀의 몸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을 발견한 사람은 언니의 남편입니다. 그는 영혜의 몽고반점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영상으로 담으려는 비디오 작가입니다. 아내와의 대화 도중에 알게 된 영혜 몸에 남아있는 몽고반점. 그 작고 푸른 몽고반점은 말라가던 그의 예술적 상상력에 불씨를 띄웁니다. 하지만 그의 욕망은 가족 관계를 파멸로 이끌고 맙니다. 

  하지만 영혜는 자연이 응당 그러하듯 다른 꽃과 식물이 번식하기 위해 다른 개체와 한 몸이 되는 것처럼 형부를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영혜는 이런 과정을 자신을 확장하는 것 이외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혜에게 그 대상이 누구인지 특정하는 것은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식물과 동물 자연계에 윤리는 사람의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영혜와 형부의 관계로 비춰지지 않습니다. 영혜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식물의 번식은 벌, 바람, 새, 비, 사람 모든 자연 현상들에 의해 벌어질 뿐입니다.

  영혜는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능동적 행위로서의 폭력성을 내려놓은 듯 보입니다. 누군가 말을 걸기 전에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취하기보다는 마치 식물처럼 광합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제안 앞에서도 의심 따위는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무장 해제 된 인간의 모습은 세상에서 결국 정신병자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무 같은 사람은 인내심 있고 평화롭고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런 생각들은 온전히 인간의 문화 속에서 발전한 관념들로 보여집니다. 

  <채식주의자>속 ‘살아있는 나무’ 영혜는 타인에게 존경이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 괴기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존재로 여겨집니다. 음식으로 위를 채우지 않는 또는 못하는 영혜는 더 이상 사람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음식을 거부하는 영혜에게 음식을 주입하기 위해 콧줄 삽입을 시도하지만 실패합니다. 이제 영혜는 또 다른 곳으로 생존을 의지 하기 위해 옮겨지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소설에서 인혜는 처음 그러니까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된 동생을 구하지 못해서 등 자신이 했던 과거의 선택이나 결정이 달랐더라면 지금 상황에 봉착하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선택을 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택은 온전히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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