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동물원 답사기] 관찰로 발견되는 나
관찰로 발견되는 나
오늘의 미션은 동물원 답사이고 집중적으로 볼 것은 유인원관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인간이 동물보다 좀 더 우월할 것이라고, 동물의 행동에 인간처럼 깊은 뜻이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왔다. 최근 인류학에서 읽었던 프란스 드 발의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는 영장류를 관찰하고, 인간만 가진 줄 알았던 문화가 그들에게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동물들의 행동을 추적하는 그의 시선이 세심하고 정교해 보였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동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직접 돌보고, 그림을 그리며 관심을 가져왔었다고 한다. 프란스 드 발의 책을 읽은 다음이라 동물들이 이전과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며칠 전부터 답사가 기다려졌다. 직접 만날 동물보다 그들 앞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어떨지 궁금했다. 프란스 드 발이 이야기하는 관찰법을 상기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동물원 입구를 지나 유인원관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우리는 인간과 그 외의 생물 사이에 인위적인 벽을 쌓지 않는 연구자로 돌아가야 한다. 동물에게 충분한 경의를 보이고, 동물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살짝 엿볼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아는 연구자. 동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감정을 투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자. 선입관에 의거하기보다는 동물에 대한 자신의 직관을 믿는 연구자로 말이다.(프란스 드 발, 박성규 옮김,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수희재), 75쪽)
뚜껑을 돌리는 오랑우탄
처음 유인원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유리창 너머 오랑우탄을 만났다. 오랑우탄들은 팔 길이가 키보다 길고 팔 힘도 무척 세다고 한다. 이 친구들은 갈색 털과 튀어나온 입, 착해 보이는 눈망울을 가졌다. 눈을 보고 있으면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주름진 피부 뒤로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이 동물원에는 오랑우탄 암컷, 수컷 커플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에는 오랑우탄이 친구 없이 혼자 놀고 있었고 출구로 보이는 외부 놀이터에도 다른 오랑우탄은 안 보였다. 수컷의 양볼에는 지방층이 있다는데 내가 만난 오랑우탄은 볼이 홀쭉한 걸로 봐서 암컷이다.
처음 내 눈에 보인 오랑우탄의 실내 공간은 좀 지져분해 보였다. 이불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고, 물통이 나뒹굴고, 천정에는 뭔가 늘어져 있다. 오랑우탄은 연신 노는 듯 움직였는데 이불을 덮어쓰고 걸어다니고, 플라스틱 물통을 들었다 놨다 하고, 천정에 매달린 굵은 매듭에서 간식을 꺼내느라고 집중했다. 뭔가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엉망으로 널부러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 기준에 방은 정리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건 여기, 저건 저기로 살림살이마다 제 자리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오랑우탄 방에 적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보다보니 이곳은 오랑우탄에게 장난감 가득한 놀이방이었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관찰하는 나를 향해 오랑우탄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걸어왔다. 이내 천정에 매달린 매듭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손가락을 넣고 뭔가를 찾는다. 곧 호두를 찾아서 껍질을 벗기고 열매를 빼먹는다. 그 큰 손으로 이렇게 섬세한 행동이 가능하다니 놀랐는데 그 다음 행동은 더욱 놀랍다. 다시 유리창 앞으로 온 오랑우탄은 앉아서 플라스틱 물병을 손에 쥐고 뚜껑 쪽은 입에 물고 돌린다. 바로 뚜껑이 열리고 물을 마시는데 한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았다. 어쩌면 오랑우탄은 이불 뒤집어쓰고, 뚜껑 따는 일이 뭐 대수라고, 너도 나도 어린애도 다 하는 일인데 놀라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도 하다. 오랑우탄을 계속 보다보니 그의 몸짓, 그의 살림살이, 거주 공간을 인간의 기준에 빗대어 재단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동물을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관람객은 고릴라
유인원관 실내를 통과해 관람로를 따라가니 유인원의 바깥 놀이터가 보였다. 이번에는 매력적인 고릴라에게 눈길이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우리나라에는 고릴라가 한 마리만 남아 있다고 한다. 국제적으로 1급 멸종위기종이라니 우린 귀한 분을 영접한 것이었다. 고릴라는 암컷이고 40대 후반으로 연령대가 나와 비슷하다니 괜히 친근감도 느껴졌다. 고릴라의 수명이 30~4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나 같은 중년은 아니고 노년의 할머니다. 영장류 중 가장 덩치가 큰 동물인 고릴라는 키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몸무게가 최대 300kg에 육박하고 근육질 몸매에 힘이 세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관찰하니 그녀의 눈빛까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색의 털 때문인지 킹콩을 연상시켰다. 안내문에 따르면 고릴라는 친구들이 싸우면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을 말리는 평화주의자라고 한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관람객과 고릴라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고릴라 집 건물과 마당 사이에 낮게 돌담이 보이고, 풀들이 차지한 마당에 모형처럼 보이는 대형 그루터기가 있었다. 고릴라는 마당 가운데에 나무를 엮어 만든 놀이기구에 앉아 있었다. 정글짐처럼 생긴 3층 놀이기구에는 오랑우탄 집에서 본 굵은 매듭이 매달려 있었다. 이 매듭은 유인원들의 전용 놀잇감인가보다. 내가 보는 동안 고릴라는 내내 1층에만 앉아 있었다. 고령이라 체력이 안되나 걱정스런 마음도 들었다.
고릴라는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때때로 손키스를 날려주었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박수치며 환호하고 언제 다시 보내줄까하는 마음으로 주시했다. 나 역시 그녀가 언제 손키스를 보내는지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기다렸다. 최옥현 선생님은 고릴라를 보면서 아무래도 서커스 출신일 것 같다고 말했다. 멋진 쇼맨쉽을 보니 훌륭한 선생님께 배운 것 같기도 하다. 프란스 드 발의 말에 따르면 유인원들의 행동에는 의도가 있어서 장난도 하고 위로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손키스에는 어떤 의도가 숨어있을까 상상해보았다. 거동은 어렵지만 덜 힘든 방향으로 자신을 보러온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관람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오랑우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눈에 사람들은 어떻게 보일까? 오늘은 인간들이 많이 왔네. 작은 인간, 큰 인간, 머리 긴 인간, 안경 쓴 인간.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인간들이 가장 반응이 뜨거웠는지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릴을 즐기는 침팬지
고릴라 집 바로 옆에는 침팬지 가족이 놀고 있었다. 아빠 침팬지와 엄마 침팬지, 남매 침팬지까지 가족 구성원이 넷이라는데, 한 마리는 어디로 가고 우리가 관람하는 동안에는 셋만 놀고 있었다. 침팬지들은 다른 유인원들처럼 팔이 길지만 대조적으로 몸은 날씬하다. 몸매가 늘씬하고 근육질이라는 것은 멀리서도 알 수 있다. 안내된 사진에서 보면 침팬지는 오랑우탄이나 고릴라보다는 털은 적고 귀가 크다. 인간 종(種)과 마지막으로 분류된 동물이라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더니 피부색이 인간과 비슷한 살색이다.
동물원을 다 돌아본 건 아니지만, 침팬지네 집은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를 가진 집으로 손꼽힐 것 같다. 침팬지들의 공간에는 24m의 거대한 타워가 있다. 정말로 높아서 관람객들이 다 목을 위로 최대한 젖히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타워에 올라가 있는 세 마리가 각각 떨어져서 노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같은 곳으로 모였다. 높은 것은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침팬지 가족들은 하나같이 얼마나 날쌘지 저 높은 곳에서 긴 팔로 매달려 성큼성큼 건넜다. 씩씩하게 많이 움직여서 몸매가 좋고 팔 힘이 좋은 것일까. 내 눈에는 침팬지들이 국가대표급 구름다리 건너기 선수처럼 보였다. 사육사가 던져주는 먹이도 타워 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척척 받는다. 내가 저렇게 높은 곳에 있다고 상상하니 오금이 저리는데 저들은 하나도 겁이 없는 것 같아 무척 대단해 보였다. 문득 내가 끊임없이 인간과 동물을 견주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이런데, 쟤들은 저러네. 인간은 이런데 동물은 저러네. 동물이 저런 행동을 하다니 귀엽네. 대단하네. 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인간과 동물을 위계 속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나는 동물들의 행동에 깊은 뜻이 없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인간이라고 사실 늘 깊은 뜻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아니면서 인간에 대해 어떤 대단한 상(狀)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인류학 공부를 하면서 동물들도 저 나름대로의 의미가 담긴 행동을 한다는 것을 배웠다. 동물행동학 전문가의 말이 그렇다니 그렇다고 믿었고, 그런 마음이라면 동물의 행동에서 그전과 다른 무엇을 파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동물의 행동을 엿보면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단지 상상할 뿐이었다. 책 한 번 읽고 동물을 보면 다른 관점을 갖게 된다고 기대했던 건 욕심이었다. 다만 그전과 달라진 것은 하나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에 대해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 앞에서 나는 나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만났던 유인원들을 떠올리자니 고마운 마음에 애정을 담아 손키스를 보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