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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답사 가고 글을 쓰고!

 

[인류학을 나눌레오]-숨을 나누며 하나가 된다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4-08-13 00:57
조회
35

숨을 나누며 하나가 된다

 

2024.8.13. 최수정

 

<인문공간세종>에서 거의 2년 전쯤 고쿠분 고이치로 선생님의 중동태라는 책을 통해 중동태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능동과 수동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너무나도 낯선 중동태라는 개념은 거의 외계어였다. 그때는 아, 이런 것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하고 넘어갔었는데 <인문공간세종>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그토록 낯설었던 중동태라는 개념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중동태란 주체가 사건의 내부에 있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건의 내부란 무엇일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참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각자 어떤 방식으로든 삶에 참여하고 있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자기에게 조건 지어진 상황에서 좋든 싫든 이 세계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자기 삶을 꾸려나간다. 나의 세계는 내가 참여하고 경험한 만큼 넓어지고 확장된다.

나는 언제나 로 살기를 바랐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라는 상이 따로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다움의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문이 든다.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로 있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에서 분리된다면 나는 무엇일까. 정말 내가 로만 살 수 있을까?

나는 이 글을 통해 함께라는 의미를 말해보고 싶다. 능동과 수동의 구분 없이 동시적’,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숨을 쉰다. 그러나 이토록 당연한 생각을 깊이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인문공간세종> 범고래 체력장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숨을 헉헉 대며 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답답한 가슴을 빨리 비우기 위해 맹렬하게 새로운 공기를 빨아들이고 내쉬면서 현기증을 느낄 때, 머리 속에서 무언가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생명은 모두 하나의 폐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호흡을 해야 살 수 있는 생명은 모두 누군가 내뱉은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내가 들이마신 숨은 내가 그토록 증오하는 사람의 숨일 수 있고, 혐오스럽고 징그럽다 생각하는 파충류의 숨일 수도 있다. 내가 그들이 싫다고 해서 그들이 내뱉은 숨을 들이마시지 않을 수 없다.

2024618일 화요일, 새벽 540분에 부천팀 4명은 진진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세종으로 출발했다. 이유는 단지 함께 걷고 달리기 위해서였다. 함께 보조를 맞추며 그들의 숨을 바로 곁에서 느끼고 그들이 내뱉은 끈끈한 숨을 받아 내가 다시 숨을 쉬기 위해서였다.

약속된 장소에서 840분에 모두 함께 출발! <인문공간세종>이 있는 건물 1층에서 시작해서, 세종 호수 공원 4Km를 돌아 50분 안에 돌아와야 한다. 별로 어려운 미션이 아닌 것 같지만, 기온은 빠르게 오르고 햇빛은 더욱 하얗고 눈부시게 타오른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된다. ‘범고래 체력장이라는 것이 형식일 뿐일 수 있지만, 이 형식을 통과하는 데 나에게는 누구보다 큰 의미가 있다. 나는 지금 숨 쉬는 일을 잊고 사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형식을 멈췄을 때, 그것일 얼마나 커다란 파장을 가져오는지 깨닫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마치 숨 한 번으로 모든 관계를 들이마시듯 단 하나의 형식에 얼마나 많은 절차와 의례적 관계가 얽혀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인문공간세종>의 스텝 모두가 모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스텝이 아니다. 나와 옥현샘은 이 형식을 통해 새로운 스텝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흰 바탕에 검은 범고래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 티셔츠야말로 정말 <인문공간세종>의 성격을 가장 잘 말해준다. 동화인류학팀은 얼마 전 타카하다 이사오 전이 열렸던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다녀왔다. 전시 관람 수 그날 미술관 카페에서 달남과 이기헌 선생님, 나와 남연아 선생님이 웃고 떠들며 즉흥적으로 티셔츠를 제작해보자. 스티커를 그려 다리미로 다려 붙여서 범고래 티셔츠를 만들어 보자고 농담 삼아 했던 이야기가 이렇게 현실이 되어 우리가 모두 함께 입고 있다. 말의 실행력! 이것이 <인문세>의 저력이다. 말한 하면 현실이 된다. 우리는 현실을 창조하는 사람들~

인문세 회원 정혜숙 선생님이 직접 디자인하고, 이기헌 선생님이 바로 제작 주문하신 검은 범고래가 그려진 흰 셔츠를 입고 햇빛 속으로 유영하듯 나아간다. 각오는 단단하다. 오늘 이 체력장 형식의 의례를 통과해야 말의 힘을 지닌 이들과 계속할 수 있다. 올라가는 기온에 따라 곁에 있는 사람들의 후끈후끈한 열기도 강해진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고, 숨을 섞으며 하나됨을 느낀다. 지금 여기 있는 선생님들과 4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공부하고 글을 썼다. 개인적인 문제로 잠시 이들을 떠났을 때 어떠했던가.

멀리서 <인문공간세종>을 떠올릴 때 나는 달님을 떠올렸던가? 아니다. <인문세>의 대외적인 모든 일에 직접 나서며 언제나 발 빠르고 손 빠른 강평 선생님, 그야말로 우리의 금손 연금술사 이기헌 선생님, 누구의 빈자리도 빈틈없이 채우는 이진진 선생님, 아름다운 동영상과 카드뉴스 제작자 조혜영 선생님, 누구에게나 힘이 되어주고 언제나 적극적인 안보나 선생님, 영어 번역 세미나를 이끌어 주시는 윤연주 선생님. 이들 모두가 자기 재능이 되는대로 혹은 안되더라도 그냥 한번 해보면서 모든 일에 즉흥적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그곳. <인문공간세종>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들 옆에서 그들이 훅훅 내뿜는 활기의 숨을 들이마시고 싶었다.

오늘 <인문공간세종>의 범고래 체력장은 나를 위한 체력장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법! <인문세> 선생님들의 숨을 나누는 이 입문식을 통해 새로운 마음으로 스텝의 리듬을 맞추는 중이라는 것을 느낀다. 주인이 따로 없는 이 리듬에 섞여 들어가기 위해 발맞추어 호흡을 따라가는 이 의식을 꼭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 <인문세> 스텝의 일원으로서 한가닥 활기를 보탤 수 있다.

누군가는 묻는다. <인문세> 스텝을 하면 뭐가 좋아요? 무거운 책무만 있는 것 같은데 꼭 그것을 하고 싶나요? 가볍게 스텝 밖에서 공부만 해도 되지 않나요? 그러나 그것은 모르는 말씀. 스텝 밖에서 몇 달 있어 본 제가 잘 압니다. <인문세> 스텝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동감, 말을 하면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그 현실성이 얼마나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지! 그동안 <인문세>에서 공부하시던 최옥현 선생님은 근거리에서 이를 알아보셨다. 그래서 그녀도 오늘 스텝에 도전! 꼭 함께 통과해서 새로운 스텝 동기가 되어 보아요.

나는 오늘 범고래 체력장을 나의 입문식이라 생각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인문세>라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이 공간은 때에 따라, 문제에 따라, 스텝들이 스스로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갈 때 눈앞에 드러난다. 이곳은 모두가 함께할 때만 드러나는 장소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현실적 공간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가! 나는 이곳에 꼭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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