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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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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을 나눌레오] 형식 놀이에 빠져 있는 범고래 부족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4-08-26 23:57
조회
110

형식 놀이에 빠져있는 범고래 부족

 

2024.8.26. 최수정

 

나는 형식이라는 것을 싫어했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겉으로 보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 있어 형식이란 어쩐지 빈약한 마음을 부풀리고 애써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쓰이는 화려한 포장지처럼 느껴졌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심지어 결혼식의 형식들이 크게 의미가 없었다. 때가 되었으니, 누구나 저절로 입학하고 졸업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 외에 내가 어떤 의미를 더 생각해 볼 수 있었을까.

인문공간세종이라는 공동체에서 몇 년 동안 공부하면서도 이와 같은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도서관 수업에서 처음 만난 오선민 선생님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면 강의가 어렵게 되자 온라인 카페를 개설해 강의하신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카페에 가입했다. 그리고 정식으로 인문공간세종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같이 공부하는 스텝이 되달라고 하셔서 그냥 그러겠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저절로 스텝이 되었던 그때만 해도 그것이 어떤 지위나 역할을 맡는 일이 아니었고, 그냥 가볍게 함께 공부하는 사이라는 의미였다. 점점 커져가는 인문공간세종의 일은 정기적으로 세종에 모이는 선생님들 중심으로 결정되었고,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을 바라보며 감사하기만 해도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문세에서의 나의 역할이 생기고 자리가 생겼지만 나에게 공부공동체라는 것은 내가 공부할 상황이 안되거나 그럴 마음이 사라지면 언제든 내 의지대로 그만둘 수 있는 곳이었고, 그럴 때 어떤 특별한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가볍게 스텝이 된 것처럼 그것을 내려놓을 때도 딱 그만큼의 무게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신변에 문제가 생겨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조용히 스텝이 모여있는 온라인 대화방을 나갔다. 내가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공부인데, 내가 잘 살지 못하게 됐을 때 공부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갑자기 들이닥친 내 삶의 위기에 당혹해하며 그 난관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이지 않은가. 원래 아무 의례적 형식 없이 들어왔던 그 자리를 인사 없이 조용히 나간다고 생각했을 때 어떤 부담감도 없었다. 그 공간, 사람들, 모든 것을 잊고 난데없이 벌어진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온 힘을 쏟아붓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에게 차츰 변화가 찾아왔다. 이상하게도 그곳에 돌아갈 수 없을까 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난처한 이 상황이 해결되면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갈 길이 끊긴 것을 느꼈다. 아무런 형식 없이 나온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떤 길을 만드는 형식이 필요할까. 그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무작정 몸을 들이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형식을 무시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번엔 어떤 형식이 꼭 필요했다. 삶은 끊임없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삶의 올바른 형식을 배울 차례인가 보다.

 

애매모호함의 경계에 서서

인문공간세종을 나와 나는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의 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로만 존재할 수 없음을 느낀다.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된 수많은 형식들에 의해 닦여진 라는 존재가 있다. 내가 좋았던 싫었던 나는 그 과정을 통과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고, 나를 이루는 그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로만 살기를 바라면서 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있었다.

인문공간세종을 떠났지만 그곳에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변함없이 나를 걱정하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무례한 무형식에도 불구하고 내가 빠져나간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내가 다시 돌아올 길을 만들어 주고자 고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돌아올 형식의 문을 만들고 열어주기 위해 범고래 체력장이라는 것을 만들고 있었다. 체력장이라는 형식을 통해 내가 돌아올 통로를 만들어 내가 돌아올 길을 돕고 있었다.

내가 <인문공간세종>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왜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무엇보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함께 공부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그 순간 그 상황 속에 같이 있음을 기뻐한다. 때로 멀리 있는 누군가가 보면 언제나 그들은 항상 모여서 재밌게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나 즉흥적으로 형식을 만들며 놀고, 놀이가 끝나면 또 그 형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새로운 놀거리가 생기면 어느새 저절로 만들어지는 형식이 태어난다. 끝없이 만들어졌다 부서지는 형식 속에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형식을 만들고 부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내가 점점 변하고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것은 어쩌면 매번 새로 시작되는 게임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게임의 규칙은 그때마다 조합되는 사람들, 공간, 우선순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무형식의 형식 같은 것에는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함께 말하고 행동하며 만들어내는 형식에 참여하면 재밌고 즐겁다. 누구나 저절로 그렇게 해보고 싶고 흉내 내고 싶게 만든다.

 

의례의 형식, 범고래 체력장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숨을 쉰다. 그러나 이토록 당연한 생각을 깊이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인문공간세종> 범고래 체력장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숨을 헉헉 대며 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답답한 가슴을 빨리 비우기 위해 맹렬하게 새로운 공기를 빨아들이고 내쉬면서 현기증을 느낄 때, 머리 속에서 무언가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생명은 모두 하나의 폐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호흡을 해야 살 수 있는 생명은 모두 누군가 내뱉은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내가 들이마신 숨은 내가 그토록 증오하는 사람의 숨일 수 있고, 혐오스럽고 징그럽다 생각하는 파충류의 숨일 수도 있다. 내가 그들이 싫다고 해서 그들이 내뱉은 숨을 들이마시지 않을 수 없다. 단 한 번의 호흡만으로도 모든 생명과 하나가 된다. 그 속에서는 무엇과도 어떤 차이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2024618일 화요일, 새벽 540분에 부천팀 4명은 진진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세종으로 출발했다. 이유는 단지 함께 걷고 달리기 위해서였다. 함께 보조를 맞추며 그들의 숨을 바로 곁에서 느끼고 그들이 내뱉은 끈끈한 숨을 받아 내가 다시 숨을 쉬기 위해서였다. 약속된 장소에서 840분에 모두 함께 출발! <인문공간세종>이 있는 건물 1층에서 시작해서, 세종 호수 공원 4Km를 돌아 50분 안에 돌아와야 한다. 별로 어려운 미션이 아닌 것 같지만, 기온은 빠르게 오르고 햇빛은 더욱 하얗고 눈부시게 타오른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된다. ‘범고래 체력장이라는 것이 형식일 뿐일 수 있지만, 이 형식을 통과하는 데 나에게는 누구보다 큰 의미가 있다. 나는 지금 숨 쉬는 일을 잊고 사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형식을 멈췄을 때,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파장을 가져오는지 깨닫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마치 숨 한 번으로 모든 관계를 들이마시듯 단 하나의 형식에 얼마나 많은 절차와 의례적 관계가 얽혀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인문공간세종>의 스텝 모두가 모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스텝이 아니다. 나와 옥현샘은 이 형식을 통해 새로운 스텝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흰 바탕에 검은 범고래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 티셔츠야말로 정말 <인문공간세종>의 성격을 가장 잘 말해준다. 동화인류학팀은 얼마 전 타카하다 이사오 전이 열렸던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다녀왔다. 전시 관람 수 그날 미술관 카페에서 달남과 이기헌 선생님, 나와 남연아 선생님이 웃고 떠들며 즉흥적으로 티셔츠를 제작해보자. 스티커를 그려 다리미로 다려 붙여서 범고래 티셔츠를 만들어 보자고 농담 삼아 했던 이야기가 이렇게 현실이 되어 우리가 모두 함께 입고 있다. 말의 실행력! 이것이 <인문세>의 저력이다. 말한 하면 현실이 된다. 우리는 현실을 창조하는 사람들~

인문세 회원 정혜숙 선생님이 직접 디자인하고, 이기헌 선생님이 바로 제작 주문하신 검은 범고래가 그려진 흰 셔츠를 입고 햇빛 속으로 유영하듯 나아간다. 각오는 단단하다. 오늘 이 체력장 형식의 의례를 통과해야 말의 힘을 지닌 이들과 계속할 수 있다. 올라가는 기온에 따라 곁에 있는 사람들의 후끈후끈한 열기도 강해진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고, 숨을 섞으며 하나됨을 느낀다. 지금 여기 있는 선생님들과 4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공부하고 글을 썼다. 개인적인 문제로 잠시 이들을 떠났을 때 어떠했던가. 나는 어둡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이들은 가시풀로 뜨개질한 스웨터를 입혀서 새로 변신한 오빠들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길을 만들어 준 동화 속 여동생처럼 나에게 범고래 티셔츠라는 옷을 입혀주었다. 나를 위해 뜨개질로 통로를 만들어 준 사람들을 위해 내가 떠맡아야 하는 것은 내가 왜 이 길을 달려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멀리서 다시 돌아올 <인문공간세종>을 떠올릴 때 나는 달님을 떠올렸던가? 아니다. <인문세>라는 공간에서 각자 자기 재능이 되는대로 혹은 안되더라도 그냥 한번 해보면서 모든 일에 즉흥적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 옆에서 그들이 훅훅 내뿜는 활기의 숨이 그리웠다.

오늘 <인문공간세종>의 범고래 체력장은 나를 위한 체력장이다. <인문세> 선생님들의 숨을 나누는 이 입문식을 통해 새로운 마음으로 스텝의 리듬을 맞추는 중이다. 주인이 따로 없는 이 리듬에 섞여 들어가기 위해 발맞추어 호흡을 따라가는 이 의식을 꼭 통과하고 싶다.

누군가는 묻는다. <인문세> 스텝을 하면 뭐가 좋아요? 무거운 책무만 있는 것 같은데 꼭 그것을 하고 싶나요? 가볍게 스텝 밖에서 공부만 해도 되지 않나요? 그러나 그것은 모르는 말씀. 스텝 밖에서 몇 달 있어 본 제가 잘 압니다. <인문세> 스텝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동감, 말을 하면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그 현실성이 얼마나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지! 그동안 <인문세>에서 공부하시던 최옥현 선생님은 근거리에서 이를 알아보셨다. 그래서 그녀도 오늘 스텝에 도전! 꼭 함께 통과해서 새로운 스텝 동기가 되어 보아요.

나는 범고래 체력장, 나의 입문식을 통과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인문세>라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이 공간은 때에 따라, 문제에 따라, 스텝들이 스스로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갈 때 눈앞에 드러난다. 이곳은 모두가 함께할 때만 드러나는 장소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현실적 공간이다.

 

형식 놀이에 빠져든 사람들

범고래 체력장은 인문공간세종을 아는 많은 사람들을 함께 뛰게 했다. 인문세가 만든 무심한 형식을 모두 함께 놀이처럼 가지고 놀면서 그것들을 모두의 입문식으로 변화시켰다. 범고래 체력장이 뭐라고 이것을 통해 새로운 질서와 상징이 떠오르며 선명해졌다. 체력장 하나로 새로운 구심점이 생겨가는 느낌이었다. 멀리서 또는 가까이 멀어지기도 하고 다가오기도 하면서 재결합되는 것 같은 묘한 일체감이 있었다. 인문공간세종이 연결된 공동체 전체가 이 통과의례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열기를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모두 인문세의 축제에 초대되어 함께 즐겁게 놀이에 참여하듯이 범고래 티셔츠를 입고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뛰었다. 그들로 인해 갑자기 인문공간세종의 공동체적 범위가 확 넓혀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나도 뛸까 말까 하다가 남들이 하나둘 뛰는 모습을 보면서 나만 아직 가만히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강제도 아닌 것이 반강제가 되어 함께 노는 재미에 푹 빠져드는 모습이 갈수록 놀라웠다. 미국, 일본, 스웨덴에서, 서울에서, 부천에서, 저 멀리 남도 땅 장흥에서,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또는 맨발로, 돌 지난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까지 미션에 성공 하거나 실패했지만, 자기만의 통과의례에 참여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위치를 되돌아보고 있었다. 범고래 체력장과 티셔츠의 상징성들이 끝없이 관계들을 변경하고 변환시키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이지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가 있을 수 있는가. 범고래 체력장을 함께하며 우리는 일생 동안 수많은 의례 형식을 치르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중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겉치레라고 생각했던 형식들이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이유는 나를 다듬고 빚어 주는 존재들에 대한 감사를 몸에 새기는 일임을 느낀다. 억지 형식으로라도 다시 한번 자기 자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서로의 취향과 요구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 만들어가는 과정을 몸으로 겪어보며 함께하는 리듬을 경험했다.

인류학이란 정해진 것이 없는 공부다. 마땅히 배우고 따라하야 할 절대적 개념 같은 것이 있다기 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보는 공부다. 그것은 마치 범고래 체력장처럼 어떤 가벼운 문턱을 넘는 일과 같다. 그 문턱에 서서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이 된다. 제도화된 공부, 장치, 형식을 걷어내고 새로운 형식, 약속된 질서나 형식이 없는 형식을 만들어가고 정해진 것이 따로 없다. 즉흥적 재조합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즐거운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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