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탐구생활》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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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세.소] 경이로운 생명에게 배우다
[우.세.소] 자연학 세미나를 소개합니다
경이로운 생명에게 배우다
2024.11.10. 이기헌
◎ 주제문 : 자연은 무한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다
◎ 글의 취지와 의의 : 자연학 세미나의 공부 방식은 맡은 부분을 아는 ‘만큼’ 발표한다. 자연학 공부가 주는 즐거움을 소개해보자.
인문세에서 격주로 자연학을 공부한다. 천천히 읽는 것 같지만 각자 선생님이 되어야 하기에 시간이 좀 필요하다. 자연학 세미나는 생명의 근원을 탐구하고, 그것이 생존하기 위해 작동하는 법칙을 들여다본다. 자연학을 공부하다보면 내 주변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새, 벌레, 잡초, 흙,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도 탐구의 대상이 된다. 매일 봐서 어떤 존재인지도 인식하기 어려운 인간종(種)도 예외는 아니다. 공부로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알던 것을 다르게 보게 되었을 때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학 공부가 주는 기쁨은 클 수밖에 없다. 봄이면 금세 담장을 채우는 담쟁이 덩굴이 씩씩하게 걷는 모습을 본다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이 나온다.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 뚫을 때 내는 소리를 들으면 이 유능한 존재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자연학 세미나로 세상이 더 잘 보이고, 세상의 소리가 더 잘 들린다.
2년 전 자연학을 공부를 시작하게 된 몇 가지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나는 자연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산이나 바다에 가서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친구들과 책이라도 읽자는 마음이었다. 친구가 같이 공부하자고 옆구리 찌른 것도 큰 이유였다. 공지를 보니 아는 만큼만 발표하라고 하는 점도 좋았다. 아는 게 없다고 걱정할 게 없고, 책 읽고 느끼고 배운 만큼 준비해서 발표하면 되니까 글쓰기보다 수월하리라고 생각했다. 지나고보니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격주로 만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연을 배워갔다. 배울수록 그 세계가 얼마나 광대한지 깨닫게 되었다.
작은 것부터 큰 것들이 연결된 자연
2년 전 자연학 세미나 첫 시즌은 <공생>을 주제로 시작되었다. 세상 수많은 생물이 이 지구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요즘 날씨가 더워야 할 때, 훨씬 더 오래 덥고, 추워야 할 때도 덥다. 몇 년간 지구는 이상 기온을 보여준다. 고작해야 100년을 살 수 있는 인간이 보기에 불안함을 지울 수 없지만 자연학 공부를 하고보니 지구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45억 년 전부터 지구는 과한 추위와 더위, 산소의 급증으로 그 모습을 변화시켜왔다. 지구 혼자서 결정한 일은 아니다. 당시 지구에 살아가던 식물과 동물, 대기를 채우는 공기들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그런 질문으로 만난 학자들의 시선이 신선했다. 린 마굴리스는 『마이크로 코스모스』에서 생물이 서로 싸우며 지구를 차지한 게 아니라 서로 협력하면서 지구의 주인들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중 아주 작은 미생물(微生物, microorganism) 진핵세포는 30억 년 전, 미토콘드리아와 서로 에너지와 서식처를 주고받으며 생존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공생을 공부하다보니 생명체들에게 궁금함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구체적인 식물의 작동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 그 부분에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 <초록의 생명사>라는 두 번째 시즌을 열었다. 이 시즌에 만났던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싸우는 식물』은 식물들이 생존하기 위해 공생도 하지만 어떤 식물은 투쟁하고, 외롭게 고난을 이겨내고, 어떤 경우는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독을 사용해 쫓아내기도 한다. 자연을 관찰하다보면 생명이 경이롭고 우아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국화쥐손이(학명 Erodium Stephanianum)는 씨앗을 땅으로 박기 위해 드릴처럼 진화했고,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봉선화는 (학명 Impatiens balsamina)은 씨앗 주머니의 압력을 증폭시켜 주머니가 터지는 동시에 씨앗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손도 발도 없는 식물들은 정말 많은 방식으로 용쓰며 버티는 것 같았다. 이 시즌에서 내가 아무 생각없이 뽑아냈던 잡초가 나름 살아남기 위해 씨앗을 잔뜩 남기는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배우니 헌편으론 살기 위해 편한 것만 찾고 있는 내가 뭘 좀 더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식물들의 작용을 관찰하다보니, 생명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졌고, 처음 모습부터 차근차근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래 이번엔 <진화>를 살펴보자’라는 마음으로 다윈을 찾았다. 처음엔 다윈의 『진화론』부터 읽을 계획이었지만 진화론은 과학자들마다 다른 방식으로 주장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우선 과학자들을 찾았는데 그중에서 우리의 눈에 포착된 과학자는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22)였다. 그는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훌륭한 과학자이기도 했고, 진화를 진보적 시간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비판이 마음에 끌렸다. 공부를 하다보니 이 과학자는 진화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생명의 다양성’을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말을 남겼다. 네 발로 걷던 인류의 조상이, 두 발로 걷고, 무기를 들게 되는 인류의 진화과정을 순서대로 표현한 그림은 너무 익숙했는데, 그런 관점이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당시 나에게는 놀라움을 주었다. 과거 열등한 인류에서 문화를 이루고 언어를 사용하는 오늘날 인류로 우월해졌음은 당연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굴드의 진화에 대한 설명은 좀 어려워서 뛰어넘기도 했다. 과학적인 전문 용어나 약간 비트는 말의 늬앙스의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농담을 하는 것 같긴 한데 웃을 수도 없고 난감한 적도 있었다.
『탄소 교향곡』의 로버트 M. 헤이즌에 따르면 생물의 경쟁적인 진화론은 광물을 다루는 법을 터득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는 끝없는 생명들이 무한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무대, 지구의 광물과 암석을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았다. 미세하게 원소들까지 공부해보고 싶었는데 화학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라 이건 정말 어디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했다. 손효현 선생님의 주기율표 발표로 나는 원소들이 다른 원소들과 결합하기 위한 팔(arm)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소들이 다른 존재들이랑 끊임없이 연결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지점이었다. 처음 세미나를 시작할 때는 주기율표를 외우자며, 주기율표송 따라 부르기도 했는데 간절하지 않은 건지 암기력이 딸리는 건지 아무튼 아직 못외우고 있다. 최근 최수정 선생님이 백악기가 언제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못했다. 분명 외웠던 것 같은데 그새 까먹었나보다. 아, 자연학을 공부한다며 2년을 보냈는데 씩씩하게 주기율표를 외고, 지질 연대를 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게 왜 좋을까? 잘난 척을 하고 싶어서, 똑똑해 보이고 싶어서 일 수도 있고, 아주 가끔 내가 아는 자연학 지식들이 조금 더 위치가 선명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 내 말을 들어봐
자연학 세미나는 공부 방식에서 다른 세미나들과 차이가 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맡은 분량을 발표한다. 발표를 위해 책과 책 밖에서 자료를 찾고 정리하여 프리젠테이션을 만든다. 사실 꼭 프리젠테이션을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발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가장 선호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자연학 자료를 찾으면서 유튜브에 올라온 자료들이 선생님처럼 느껴진다. 사실인지 아닌지 신뢰도에 대한 부분이 우려될 때도 있지만 책에 기준하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 없이 찾아진다. 보통 프리젠테이션으로 책 내용을 정리해서 발표하고 더 구체적인 내용을 유튜브나 인터넷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발표 자료를 준비하다보면 더 많은 이야기로 연결된다. 소어 핸슨의 『씨앗의 승리』는 씨앗들의 생존 방식을 보여주는데, 나는 이 책의 발표를 준비하면서 씨앗 은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계 각지에 있는 씨앗 은행은 인류의 위기에서 생존 대책으로 지어진 모양이었다. 러시아의 바빌로프(1887~1943)는 척박한 기후에 맞춘 종자를 개발하는 노력으로 사람들을 배고픔으로 구하고자 했다. 이 멋진 영웅의 삶이 궁금해졌고 관련된 책을 찾아보았다. 책에서 알게 된 내용과 책 밖으로 나가 더 많은 정보들을 발표하게 되었다. 세미나원 손효현 선생님은 발표 말미에 이 책의 내용과 관련된 다른 책을 소개해준다. 우리가 읽는 책을 보충하는 이야기나, 책의 관점과 다른 관점을 알려주고자 한다.
발표를 준비할 때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것은 세미나원 모두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덕분에 각자의 방식으로 선생님이 되어 세미나는 풍성해진다. 맡은 분량에 책임을 지닌 선생님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내가 준비한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표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원래 좋은 선생님은 많이 알고 있는 선생님이 아니라 잘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 이제 내 말을 잘 들어보세요, 내가 이해한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해 드릴게요’라고 말로 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발표를 시작한다. 책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발표하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고 자문하고 진땀을 흘리기도 한다. 어느 때는 발표하면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자동으로 정리되기도 하고, 다른 발표자들의 내용과 연결하여 발견하기도 한다.
평소 직업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은 권수현 선생님은 내용을 알기 쉽게 잘 요약한다. 뿐만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한눈에 쏙쏙 들어오게 만들기 때문에 언제 그 기술을 좀 전수받고 싶어진다. 최근 합류한 이현주 선생님은 발표하는 공부가 떨리지만 준비하고 발표하면서 느끼는 이 공부의 매력이 있다고 했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게 몹시 떨리고 울렁증이 있다면 수행 차원으로도 참 좋은 세미나라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엔 사고가 정지될 정도로 경직되고, 땀이 뻘뻘 났었는데 그래도 요즘은 땀은 안난다.
권수현 선생님의 발표
나는 요즘 내년 시즌을 고민한다. 생명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좀 더 알아볼까? 그렇다면 동물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지 식물 차원, 공기 차원, 원소 차원 등 어떤 차원으로 접근하면 좋을지. 아니면 무한한 방식으로 연결된 생명들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아님 우주로 나아가볼까?
<읽은 책들>
○ 로버트 M. 헤이즌, 『지구 이야기 :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로 푸는 지구 이야기』
○ 린 마굴리스, 『마이크로 코스모스』
○ 스티븐 제이 굴드, 『판다의 엄지』
○ 세라 블레퍼 허디,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 : 상호이해의 진화적 기원』
○ 데이비드 몽고메리, 이수영 옮김,『흙』(삼천리)
○ 이나가키 히데히로, 박유미 옮김,『싸우는 식물』(더숲)
○ 소어 핸슨, 하윤숙 옮김,『씨앗의 승리』(에이도스)
○ 레나토 브루니, 장혜경 옮김,『식물학자의 정원산책』(초사흘달)
○ 스티븐 제이 굴드, 홍욱희 · 홍동선 옮김, 『다윈 이후(Ever Since Darwin)』(1977)(사이언스북스)
○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옮김, 『원더플 라이프(Wonderful Life)』(1989)(궁리출판사)<구판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옮김, 『인간에 대한 오해(The Mismeasure of Man)』(1981)(사회평론)
○ 스티븐 제이 굴드, 김명주 옮김, 『플라밍고의 미소(The Flamingo’s Smile)』(1985)(현암사)
○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 손향구 옮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Leonardo’s Mountain of Clams and The Diet of Worms)』(1998)(세종)
○ 도널드 R. 프로세로, 김정은 옮김, 『지구 격동의 이력서, 암석25』(뿌리와이파리)
○ 요시다 다카요시, 박현미 옮김, 『주기율표로 세상을 읽다–우주, 지구, 인체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해나무)
○ 로버트 M. 헤이즌, 김홍표 옮김, 『탄소 교향곡』(뿌리와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