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인류학
[빙하이후]빙하 이후 인류의 역사
빙하 이후 인류의 역사
스티븐 마이든은 『빙하 이후』에서 존 러복을 가상인물로 내세워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서아시아에서 시작한 러복의 여행은 유럽,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에서 마무리된다. 각 지역을 여행하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기도 하고 거꾸로 올라가기도 한다. 하나의 규칙이 있다면 그 지역의 사람들의 생활을 둘러보는 여행이 최후빙하극성기부터 시작해서 농경이 시작되면서 끝난다는 것이다. 남아시아로 떠났던 여행도 인도부터 서아시아로 연결되는 지역까지 시간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유적지를 살펴보다가 농경 마을에서 그 여정은 멈춘다. 그는 왜 이 시기 인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까?
이번 남아시아 여행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농경 마을의 유적지를 여행하며, 스티븐 마이든이 인류의 첫 문명지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원을 언급한 부분이었다. 그는 문자 발명과 함께 등장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수렵채집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문명은 서기전 3,500년 즈음 등장하지만 그 기원은 서기전 11,000년 수렵채집 생활, 야생정원, 잠시 출현했다 사라졌던 농경 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그들의 생활상에서 이미 원거리 교역과 기술의 발달, 종교, 장례 문화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런 유적지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서기전 11,000년의 자위체미 샤니다르(Zawi Chemi Shanidar)와 그보다 약 1,000년 이전의 케르메즈 데레(Qermez Dere), 서기전 9,600년의 넴릭(Nemrik)이다. 이 곳에 살던 수렵채집민–농경민의 후손들은 곡물을 이용하면서 바로 벼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곡물 재배는 서쪽으로는 유럽으로,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들어갔을 것이라고 스티븐 마이든은 말한다. 이는 이곳의 땅과 지형, 기후는 집약 농경을 하기에 아주 유리했기에 가능했다.
한편 그 외의 지역에서는 농경으로의 이행이 단선적이고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수렵채집에서 농경이 전면화되기까지 생활상은 그 모습에 있어서도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서기전 8000년의 마그잘리야(Maghzaliyah)는 스텝에서 야생 당나귀를 사냥하면서 양을 길렀고, 야생 식물을 채집하면서 밀밭도 가꿨다. 서기전 7500년의 움 다바기야(Umm Dabaghiyah)는 물이 부족하고 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사냥감이 풍부해서 사냥꾼들이 사냥철에 찾아와 동물을 잡는 계절 주거지로 이용되었다. 또 서기전 6400년의 야림 테페(Yarim Tepe)는 토기와 조각상, 구리 장신구와 같은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교역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빙하 이후 남아시아의 여러 마을과 소도시까지 세계 곳곳의 유적지를 따라오다 보니, 내가 『빙하 이후』를 읽을 때는 재밌게 읽었는데 과제를 할 때는 컴퓨터 앞에 앉아 책을 펴 놓고도 한참을 한 자도 못 쓰고, 아니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어려움을 느꼈는지를 깨닫게 된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수렵채집민의 생활은 이렇고, 농경 생활은 저렇다는 특징을 발견하고 계속 구분하려고 했다. 자연 환경에서도 평야, 산악, 열대우림, 계곡, 사막과 같이 내가 아는 지형으로 가르고 그 각각에 따라 생활상이 이렇게 저렇게 달라진다고 분류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계곡이나 산악 지대라 해도 위도에 따라 또 강수량이 얼마나 되느냐, 바람의 방향, 토양에 따라서도 동식물의 생태가 달랐고, 평야도 그 기후나 동식물의 생태, 주변의 교역 등에 따라 주거의 형태가 비슷하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했다.
“역사란 사람의 독창성과 완전한 우연, 그리고 환경변화와 인간의 반응이라는 원인과 결과가 실타래처럼 얽힌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역의 사건들과 함께 그것이 일어난 더 넓은 세계의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서기전 9600년 지구온난화와 함께 신석기시대의 세계가 시작될 즈음 역사가 어떤 길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았던 사람은 없었다.”(『빙하이후』, 스티븐 마이든 지음, 성춘택 옮김, 사회평론아카데미, 541쪽)
서기전 20,000년 이후의 최후빙하극성기부터 서기전 12,700~10,800년의 최후빙하기의 빙간기, 다시 기온이 떨어지고 건조해진 서기전 10,800~9,600년의 영거드라이어스기, 이후의 온난해진 홀로세의 기후 변화는 지구 자연환경의 변화의 바탕에 있다. 스티븐 마이든은 요동치는 기후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환경, 그리고 그에 반응하고 적응하는 인간의 다양한 생활상을 수렴하고 정리하기보다 쫙~ 펼쳐놓는다. 그가 펼쳐놓은 인류의 기나긴 이야기를 다시 하나의 주제로 그러모을 과제가 나에게 남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