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세계끝의 버섯 2부 발제 – 경계선 : 자유, 노동
세계끝의 버섯 2024년 12월 2일 강박순 / 제2부
경계선 : 자유, 노동
『세계끝의 버섯 2부는 진보 이후에 : 구제 축적』 짧은 부분을 읽으면서 송이버섯 채집의 세계가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있으면서도 거기에서도 나름대로 규칙과 룰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경매용어, 오픈티켓 익숙하지 않았지만 또 따른 세계로 이동해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경계선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자유
저자는 버섯채집인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얻었다. 그중에서 자유 언급이 독특했다. 자본주의 자유도 아니고, 정치적 자유주의도 아니였다.
버섯 관계자들의 자유는 불규칙적이며, 합리화의 외부에 존재한다. 공연 성격을 띠고, 공동체에 따라 다양하며, 기운이 넘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곳의 소란스러운 코즈모폴리터니즘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그 자유가 잠재적인 분쟁과 오해로 가득한 열린 문화적 상호작용으로부터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가 유령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장는 귀신 들린 풍경에서 유령들이 벌이는 협상이다. 자유가 귀신 들린 곳에서 귀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련되게 협상하고 살아남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세계끝의 버섯』 (저자 :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현실문화 p.144)
저자가 말하는 “자유가 유령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언급이 상당히 신선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자유를 넘어선 느낌이라고 해야될까. 저자는 “송이버섯 채집인이 사망해서 단지 유령이 되었다”라는 언급이 사람 뿐만 아니라 송이버섯도, 숲속도, 다민족도 모두가 자유이다고 한 것이 아닐까.
노동
송이버섯 채집하는 일은 노동인가 아닌가? 노동은 주어진 시간에 상사에서 복종하면서 나의 육체의 에너지를 써서 거기에 대한 얻은 보상이 노동 아니었던가. 그런데 여기에서 일하는 채집인은 이것은 노동이 아니라고 한다. 저자가 말하길 ‘찾는 행위’라고 한다.
톰은 분명한 태도로 노동을 거부한다. 채집하는 일은 구매인에 의해서 고용된 일꾼이 아니라 독립적인 사업가라고 한다. 이들의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문화도 있다. 채집인은 송이버섯을 주우면 그 자리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을 기린다. 이 행위는 노동이 아니다. 노동이라는 유령에 사로 잡혀 있을 뿐이다.
구매텐트
채집인들이 따서 가져온 송이버섯을 팔려고 구매 텐트 줄을 선다. 구매인이 선택되면 가격 제시뿐만 아니라 숙련된 선별기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등급에 따라 선별을 잘해야 된다. 가격의 변동이 꽤 있기 때문이다. 선별과정은 하나의 예술이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불 쇼와 같으며, 마치 백인들이 공을 저글링 하듯 말이다. 훌륭한 구매인은 버섯의 냄새, 모양, 크기에 따라 구분한다. 송이버섯 채집인들 보다 진정한 고수는 구매인이다. 이런 구매인들은 충성스러운 송이버섯 채집인을 ‘단원’으로 모시려고 하지만, 이들은 한 구매인에게만 팔 의무가 없다.
가끔 환심을 사기 위해서 이들의 가족과 친인척과 친해지지만 그때뿐이다. 이들보다 더 놓은 좋은 가격을 제시하는 구매인이 나타나면 그쪽으로 이동한다. 저자는 경쟁과 독립은 모두에게 자유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들은 트럭에서 5시 전에 팔아야 한다. 버섯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다림 또만 자유의 일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