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종교 인류학


 

[마음 인류학 에세이] 모방, 소유하다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4-12-15 17:51
조회
102

<2024 인문세 학술제 에세이>

2024.12.15. 최수정

 

모방, 소유하다

 

프란스 드 발의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에서 타인을 관찰하고 흉내를 내고 모방하는 능력(감각적인 연결)이 풍부한 문화의 원동력이었다. 관찰과 모방은 어떤 누군가가 주기로 마음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누군가를 모방하고 싶은 자의 의지에 달려있다. 내가 따라하고 싶은 점을 그가 가지고 있을 때 나는 그의 허락과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고도 그를 모방할 수 있다. 모방은 모방하는 자가 매혹된 상대방에게서 일방적으로 훔쳐온다.

모방의 이와 같은 일방성은 브로니스라브 말리노브스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의 트로브리안드인들이 선물을 줄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선물을 요구하기 위해 쿨라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쿨라 여행은 누군가를 모방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었다. 이는 쿨라 원정을 떠난 사람들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임시로 정착한 섬에서 자신들의 평상시 행위 모델을 바꾸는 모습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몇 주 혹은 심지어 몇 달씩 그들의 파트너, 친구 혹은 친척 집에서 주의 깊게 그 지방의 관습을 지키며 산다. 그들의 일을 도와주고 고기잡이도 따라 나선다. 특히 고기잡이 작업 형식은 자신들이 살던 곳과 다르고 색다른 경험이 된다. 그 섬에 있는 동안 그들은 섬 주민들을 모방하며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한다.

트로브리안드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섬 바깥을 여행할 명분이 되는 쿨라가 없다면 그들은 울타리에 갇힌 동물처럼 고립될 것이다. 오랜 시간 외부와 차단되어 그들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신들만의 문화에 갇힌다면 절멸했을지도 모른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의 삶을 기술하던 말리노브스키가 그들이 얼마나 바다 건너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지 묘사한 글이 있다. 그 안도와 위안에는 자신과 다른 누군가가 자신에게 줄 선물, ‘모방할 만한 타자성을 갖고 있다는 데서 온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이 도착하는 지점마다 자신들의 행위 모델을 바꾸고새로운 가치에 적응한다. 타자를 모방함으로써 소유하려고 하는 그들의 사고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소유개념과 너무도 다르다.

 

야생의 사고, 구체의 사고

마르셀 모스의 몸 테크닉에 의하면 문화는 인간의 총체적 신체와 같았다. 한 사회의 행동 제약과 규칙들뿐만 아니라 개인적이라고 생각했던 감정들과 표정들도 사회제도에 의해 규정되었다. 하나의 문화에 속한 우리는 문화의 관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각 문화에 따라 존재하는 사물을 각기 다른 양식으로 파악한다. 지배적 문화의 관점에 따라 사물과의 상관관계가 변하고 그에 따라 개인의 주관성도 확립된다. 그에 따라 사고체계의 관념이 바뀌고 규정된 관념에 따라 가치관도 달라진다.

내가 소유의 의미를 떠올릴 때도 나의 사회적 가치관에 따라 소유의 사전적 의미를 떠올린다. 소유란 개인적인 관계에서 물건을 갖는 것, 지배하는 일이다. 나는 그 이상의 의미는 알지 못한다. 내가 소유하다는 개념으로 사고할 수 있는 범주는 기껏해야 추상적 물질적 소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의미를 단순화하고 숨은 의미를 손쉽게 생략해 버리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고대인들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복잡한 사고체계를 갖고 있었는지 설명한다. 야생의 사고는 구체의 사고다. 야생의 사고를 하던 트로브리안드인들의 소유하다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생기 넘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구체적 사고를 하는 야생의 사고는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사고 체계에 넣는다.

모든 성스러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야생의 사고, 62) 제자리란 어떤 것일까? 나는 이 제자리가 우주의 아름다운 질서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의 차이를 모방하고, 선물로 주고받으며 서로를 붙들고 있는 자리다.

트로브리안드인들은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계를 모방한다. ‘선물이라는 형식을 반복하며 세계의 질서를 기억하고 유지하려는 지혜를 발휘한다. 이 질서에서 탈락해 고립될 때 따라오는 위험을 알고 있다. 타자를 모방해서 소유함으로써 단단히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에게 의무를 부여한다.

정기적 쿨라를 통해 바다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에게 받은 선물로부터 내 삶이 꾸려진다고 생각하며 사는 일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이루어진다는 나의 사고 체계와 확연히 다르다.

 

주기 위한 소유, 자연을 모방

브로니스라브 말리노브스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은 소유를 탐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그것을 나눠주면서 관대함의 느낌을 향유하기 위해서다. 만물이 자연의 풍요로움과 관대함에 신비로운 경외감을 드러내듯이, 풍요를 나눠주는 자신의 관대함에 남들이 감탄하는 모습에서 위신과 명예를 느낀다.

그들은 밭 작업을 인내와 목적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열심히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잉여분은 다른 사람을 준다. 그런데 그 잉여는 자연에 주는 잉여도 포함되어 있다. 잉여를 생산하는 노동에는 많은 부분이 실용적인 생산보다 심미적인 측면에 투입된다.’ 타인이 모방할 것을 많이 가진 나는 타인에게 좋은 선물이 된다. 많은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연이 주는 것과 같은 전능감을 줄 수 있다.

쿨라는 해외, 바다 너머 다른 섬으로 향한다. 선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기 위해서 떠나는 위험한 항해다.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를 여행을 위해 목숨을 건 항해를 떠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물을 주고받는 관계다.

쿨라의 관계에서 팔찌(음왈리mwali)는 서에서 동으로, 조개목걸이(술라바soulava)는 동에서 서로 순환한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서로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운동 속에 그들이 보는 것이 있다.

쿨라의 순환 안에서 팔찌(음왈리mwali)와 조개목걸이(술라바soulava)는 서로를 끌어당긴다.팔찌와 조개목걸이 중 하나를 받았으면 다른 것을 줘야 하기 때문에 주고받는 관계는 처음부터 서로를 향해 있다.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이는 선이 더 단단히 서로를 붙들게 만드는 그물망의 방식으로 묶여있다.

이때 이 바이구아는 인간을 대체하는 사회적 관계의 도구이다. 자연물을 인간이 가공하며 인간은 자연물 안에 자신의 힘을 넣었다. 최초의 선물은 인간의 노동이 들어있고, 만든 사람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들어있다. 개인적 미적 감각이 바이구아가 되어 선물이라는 형식으로 작동한다. 바이구아는 개인의 장식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소유되는 물건이 아니다. 장식품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자신이 자연과 맺은 감각적 관계를 사물에 새겨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누군가가 그것을 모방할 선물이 될 수 있게 세상에 내보낸다.

나를 통과한 바이구아가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돌며 내가 경험한 감각을 모방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 힘을 얻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나의 힘이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바이구아 자체가 인격적 힘이 되어 자신을 그 사회에서 강한 일원으로 만들어주고 있음을 느낀다.

쿨라는 팀 잉골드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에서 모스의 증여론을 빌어 이야기하듯 영원히 지속 가능한 조건으로 상호침투의 가능성을 시연한다. 선물을 통해 나의 영은 너의 영을 뚫고 들어간다. 즉 나는 너의 사고 속에 너와 함께 있다. 또 네가 답례한 선물을 통해 너는 나의 사고 속에 나와 함께 있다. 그리고 선물을 주고받는 한 이 상호침투는 계속 수행된다. 팔찌(음왈리mwali)와 조개목걸이(술라바soulava)는 맛잡은 두 손처럼 서로를 함께 묶거나 맞당긴다.(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 29)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준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