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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세계 끝의 버섯](3) 잠복해 있는 공유지

작성자
보나
작성일
2024-12-16 17:58
조회
105

잠복해 있는 공유지

 

이윤 추구와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글로벌 기업과 자본주의 체제의 구제 축적에 의한 상품 세계는 여전히 작동 중이고, 이로 인한 존재와 삶의 터전의 안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기후 위기, 빈부격차 및 양극화 현상, 착취와 소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분명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러한 거대한 흐름과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애나 칭은 세계 끝의 버섯4부에서 베벌리 브라운Beverly Brown정치적 듣기의 행위를 통해 성장한 다종의 세계 만들기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브라운은 북서부 숲의 버섯 채집인들을 포함해서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말을 듣기로 결정한 활동가였다. 브라운은 도시 엘리트 계층이 시골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언가 할 것을 다짐했고, 권리를 박탈당한 벌목꾼들과 시골 백인들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은 버섯, 딸기, 꽃 장식 식물을 채집하는 상업적 채집인들과의 관계로 이어졌고, 오리건주의 송이버섯 채집인들과 산림청이 참여해서 오픈티켓에서 벌어지는 안건들을 논의하는 회의가 열리는데 연결되었다. 도시와 시골 간의 간극 차에서 시작한 듣기 행위는 더 큰 격차를 뛰어넘어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로 성장한 것이다. 브라운은 어떤 모임이라도 이제 시작 단계인 많은 정치적 미래를 담고 있으며, 정치 활동은 정치적 미래 중 일부가 지금 생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업으로 구성되므로 불확정성은 많은 시작이 잠복해 있는 교점”(449)이라고 말한다.

이에 애나 칭은 우리가 염원하는 것들에 방해가 되는 것을 뛰어넘어 생각하는 브라운의 방식에 고무되었고, 이러한 인식을 일상생활로 끌어들일 때는 듣기만이 아니라 다른 유형의 각성이 동원되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좋은 의도라는 이유로 차이를 덮어 가려버리는 방식을 거부하며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으로, 우연한 마주침을 통한 오염도 재현의 방식이 아닌 번역을 통해 변형을 이루어야 함을 강조하며 인식하는 행위의 실천적 방식을 제안한다. 이러한 각성과 도전의 방식만이 우리를 옳고 그름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창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아직 미개발되어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잠복해 있는 공유지latent commons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어디에나 잠재해 존재하고 있다. 애나 칭은 알아차림의 기술을 실천해 복수의 시간적 리듬과 궤도가 중첩되어 다종의 삶의 방식의 얽힘으로 만들어진 공유지를 발견하고 만들어가기를 제안하다.

 

잠복해 있는 공유지latent commons

1. 잠복해 있는 공유지는 인간 집단 거주지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공유지를 개방하면 모든 것이 바뀐다. 유해동물과 질병을 포함하게 되면 우리는 조화를 희망할 수 없다. 유기체들은 서로를 먹기만 하지는 않고 서로 달라지는 생태계도 만든다. 잠복해 있는 공유지는 혼란의 게임에서 벌어지는 상호적이고 비대립적인 얽힘이다.

2. 잠복해 있는 공유지가 모든 이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협력이 이루어지는 모든 경우마다 어떤 이들에게는 기회를 주고 다른 이들은 배제시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충분히 좋은세상을 목표로 한다. 이런 세상에서 충분히 좋은것은 항상 불안정하고 수정된다.

3. 잠복해 있는 공유지는 잘 제도화되기 어렵다. 공유지를 정책으로 전환시키려는 시도는 용감한 일이지만 잠복해 있는 공유지의 활기는 그런 시도로 포착되지 않는다. 공유지는 법의 간극에서 움직인다. 위반, 감염, 부주의, 침범에 의해 촉진되기 때문이다.

4. 잠복해 있는 공유지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급진적 사상가들은 진보가 우리를 구원하는 유토피아적인 공유지로 이끌 것이라고 희망한다. 잠복해 있는 공유지는 문제로 에워싸인 지금 여기에 있다. 인간들은 그것을 절대로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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