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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15장 발제 “사랑에 빠진 네안데르탈인”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5-03-04 12:36
조회
47

종교인류학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15장 발제 2025-3-4 김유리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Hmmmmm’ 의사소통

사랑에 빠진 네안데르탈인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15장은 제목의 주인공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상을 입체적이고 공감각적으로 그려 보인다. 골격화석 및 유적지에 대한 발굴 자료와 유전자 증거를 통해서다. 미리 한 가지 밝히자면 네안데르탈인의 노래에는 가사가 없었다.

 

네안데르탈인의 큰 뇌(319-20)

네안데르탈인의 큰 뇌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뇌가 더 작았던 조상들인 호모 에스가르테르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도 도구제작을 했고, 복잡한 사회집단을 이루었으며, 환경 변화에 적응했다. 네안데르탈인은 큰 뇌는 의사소통에 대한 선택압 때문이다. 그들은 전일적(holistic) 성격을 갖고 있고 조작적(manipulative) 기능을 하며 다중성(multi-modal)과 음악성(musical)을 띠며 미메시스를 동반하는 정교한 의사소통 체계인 ‘Hmmmmm’을 구사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조상들보다 진보된 ‘Hmmmmm’을 활용해 환경 변화에 적응했고 문화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들은 정서가 풍부했다. 감정은 의사결정과 사회적 협력이 중요한 생활양식에 동반되는 마음의 측면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진화

“(1) 네안데르탈인과 현대 인류의 공통조상이 30~50만 년 전에 살았고, (2)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에서 진화한 반면, 현대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진화했으며, (3) 현대 인류는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에 살았던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3만 년 전 직후에 멸종했다.”(321)

 

네안데르탈인의 뇌, 몸, 생활양식

네안데르탈인의 뇌 크기는 추운 기후에 적응한 큰 몸에 비례한 것인 한편, 절대적으로도 상당히 큰 편이다. 몸 크기 대비 뇌 용량인 ‘대뇌비율지수’를 보면 호모 사피엔스가 5.3이고 네안데르탈인은 4.8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직계 조상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3.1~3.9다.

동굴 생활자 네안데르탈인은 불을 사용했고 친밀하고 작은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손재주가 있어 “격지석기”를 제작술”(324)을 발달시켰고 모방 능력이 있어서 기술이 전승되었다. 그들은 조상 인류들처럼 사냥꾼이었다. 유럽 빙하기의 큰 포유류를 사냥했는데, 짧고 꿰찌르는 창을 쓰기 위해 사냥감에 근접해야 했다. 네안데르탈인은 “몸을 혹사하는 생활을 했으며 자주 다쳤던 듯하다.”(325) 매장의 동기는 불분명하나 망자를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발성능력과 청각능력: 네안데르탈인은 언어를 사용했을까?

네안데르탈인은 “현대 인류와 동등한 수준의 발성능력을 가지고 있었다”(326)고 주장된다. 네안데르탈인의 설골, 혀밑 신경관, 흉추관은 성도, 혀, 숨쉬기를 위한 근육과 운동제어력이 현대 인류와 비슷했다는 해부학적 증거들이다. 그들의 직계 조상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머리뼈 화석은 30만 년 전 인류의 소리 지각 능력이 현대 인류의 수준이었음을 알려준다.

네안데르탈인은 발성능력과 청각능력을 보유했고, 20만 년이 넘게 사냥을 위해 협력하고, 사회생활을 유지 관리했으며, 석기제작기술을 계승하는 등 문화를 성취했다. 언어를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고 하지만 이들이 의사소통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네안데르탈인들의 비언어 의사소통 사용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세 가지 있다. 첫째, 사회적으로 작고 친밀한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공통의 목적을 지녔다. 이들은 새로운 발화를 ‘구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미 수없이 주고받은 메시지들을 ‘Hmmmmm’ 의사소통 체계(“발화의 억양, 리듬, 음높이, 멜로디, 제스처”(328))를 통해 전달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나머지 증거는 상징이 없었다는 점과 문화가 고정적이었다는 점이다.

 

상징적 인공물의 부재

 

“상징적 인공물이 없었다는 것은 곧 상징적 사고도 없고, 따라서 상징적 발화도 없었다는 뜻이다.”(329)

 

“상징적 인공물이란 어떤 사물을 임의적인 뜻을 갖도록 빚거나 장식한 것을 뜻한다.”(329) 네안데르탈인은 사물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검은 안료를 사용한 흔적에 대해서는 사냥할 때 몸을 ‘위장’하기 위해서 쓰거나, 성적 매력을 과시하기 위해 신체 일부를 강조하는 ‘치장’의 용도로 쓰였을 수는 있지만, ‘상징’적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볼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단어란 “상징적 의미를 지닌 개별발화”(329)이기 때문이다.

 

극도로 고정된 문화

20만 년간 거의 변하지 않은 문화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네안데르탈인은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 석기를 만들었고, 손에 들어오는 재료는 무엇이든 썼다(332). 그러나 혁신도 발명도 없었다. 구성적 언어 없이는 고정되고 한정된 사고를 하게 된다. “언어는 변화를 추동하는 힘”(332)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복잡한 사고를 이끌어내는 수단이다(332).

 

샤틀페롱 양식의 문제

3만 5천~3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유적지에서 발견된 뼈 물건과 이빨 펜던트(소위 ‘샤틀페롱’ 양식에 속함)는 전에 없던 발명이 아닌가? 그것은 유럽에 도래한 현대 인류와의 조우에서 발생한 기술 결합의 결과물로 해석된다. 단, 네안데르탈인은 목걸이 같은 물체에 어떤 의미가 담길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 채 기술을 모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마음(334~35)

네안데르탈인의 마음은 ‘현대적’인가 ‘원시적’인가? 그들의 생활양식에서 유추해 볼 때 양가적인 해석이 발생한다.

네안데르탈인은 현대적이었다. 그들은 작은 뇌를 가진 호모속 초기 인류들과 다르게 복잡한 석기를 만들었고, 큰 짐승을 협력 사냥했고, 혹독한 기후의 북쪽 땅에서 20만 년 넘게 살아남았다. 지능도 높았던 것 같다.

다른 한편, 네안데르탈인은 ‘원시적’이었다. 기술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고 상징적 사고를 지니지 못했고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지능이 그리 높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역설을 해소하기 위한”(335) 저자의 시도는 네안데르탈인의 지능이 ‘영역 특이적’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지식이 풍부했지만 영역별로 지능을 발휘했을 뿐, 하나의 사고로 통합할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기술 영역의 지식을 사회적 관계를 도모하는 데 쓰는 법도 알지 못했고, 사냥감에 대한 지식을 사냥도구 설계에 반영할 수도 없었다.

네안데르탈인의 큰 뇌의 신경망에는 (1) 도구제작, (2) 사회화, (3) 자연세계와의 교류로 나뉜 각 영역 간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추가신경망이 없었다. 이 연결 능력이 ‘인지 유동성’을 제공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은유를 사용하는 능력이다. 예술, 과학, 종교의 밑바탕이다.

그러나, 영역 특이적 마음을 지녔다는 것으로 그들의 행동과 고고학 기록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큰 뇌를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저자는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네안데르탈인이 현대 인류보다 더 발달시켰던, 그래서 뇌에 신경망을 추가로 가지고 있었던 분야를 제시한다. 그것은 그들의 의사소통 행위와 감정이 풍부한 생활이다.

 

‘Hmmmmm’하는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은 현대 인류와는 독자적인 진화의 경로를 통해 언어가 아닌 의사소통 체계를 사용하며 음악능력을 발달시켰다. 그들은 호모속의 이전 종들보다 ‘Hmmmmm’을 한층 발전시켰다. 더 많은 전일적 구절을 구사했다. 전일적 구절을 결합해 “단순한 이야기”(338)를 만들었다. “세밀한 뉘앙스”(338)를 발화에 담아 감정효과를 만들었다. 한편, 빙하기 유럽과 근동 여기저기에서 고립되어 살며 고유한 ‘Hmmmmm’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일부 의사소통은 집단 간에 해독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존투쟁

혹독한 빙하기에 네안데르탈인은 “삶이 힘들고 수명이 짧았으며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자주 시달렸다.”(339) 그러는 한편 병들고 다친 사람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치료가 행해졌고, 사회적 보살핌이 존재했다. ‘음악치료’가 동원되었을 가능성도 있다(339). 음악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치료효과를 높이며 운동 제어력 회복을 촉진한다(339).

빙하기에서 의사결정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다. 합리적인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감정을 느끼는 능력”(340)이 필요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협력해서 정보와 자원을 공유하고, 사냥할 때 팀워크를 이루고, 서로의 안녕을 보살폈다(340). 네안데르탈인은 어느 인류 집단 보다 “개인정체성에 앞서 사회정체성을 창출하는 것이 더 중요”(340)했다. 이를 위해 음악이 필요했다. 음악은 “사회적 결속을 다져주고 상부상조를 촉진한다.”(340)

 

미메시스와 사냥

네안데르탈인은 “때때로 무리를 지어 광범위한 협력이 필요한 사냥에 참여했다.”(340) 상호이익을 위해 계획을 짜고 실시할 때 “도상적인 제스처, 미메시스, 음성의 흉내, 의성어, 소리 공감각이 총동원”되었을 것이다. 벼랑 끝으로 큰 포유류를 내몰아, 벼랑 아래서 대규모 도축하는 대규모 사냥을 포함해 어떤 형태의 사냥에서든 이들의 의사소통은 앞선 사냥꾼 조상들의 것보다 더 절실했으며 훨씬 정교했을 것이다.

 

석기와 짝짓기 패턴

네안데르탈 남성들은 조상과 달리 ‘성적 과시용’ 주먹도끼를 만들지 않고, ‘사냥용’ 돌촉을 만들어 썼다. 이는 여성들이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이 변한 것과 관계되어 있다. 여성들에게 빙하기의 삶은 고달픈 것이었다. 열 손실을 막기 위해 커진 몸집과 의사소통 발달로 커진 뇌는 임신기간 동안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으며 신생아가 무력한 상태인 기간을 늘렸다. 수명이 짧아져 육아에 대한 할머니 지원이 부족했다. 여성들은 석기와 외모만으로 배우자를 평가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사냥무기를 다루고 식량과 필수품을 공유할 의사가 있는 배우자가 더 필요했다. 이제 노래와 춤은 성선택을 위한 과시가 아니라, 짝 결합을 과시하고 돈독히 하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아기를 위해

네안데르탈 아기들은 자주 ‘내려놓아졌고’ 고아가 되는 일도 흔했을 것이다. 따라서 “아기를 울리지 않으려면 노래를 많이 불러주어야 했을 것이다.”(346)

네안데르탈 아이들은 현대 인류의 아이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랐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의사소통 체계를 익혀야 했다. 어릴 때 빠르게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해야 했던 조건은, 성인이 아기와 의사소통을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매장

젊은 남성의 묘지가 네안데르탈인의 매장 유적의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젊은 독신 성인의 손실은 집단 전체에 재앙을 부를 수도 있었다. 집단에 대한 공헌이 그들의 죽음에 대해 특별대우를 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무덤 주위에서 “집단의 결속을 다지고 감정의 공유를 표현하기 위해 추도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347)

 

텅 빈 공간은 무대였다

‘Hmmmmm’ 의사소통은 춤 등의 공연을 동반한 것 같다. 동굴 유적 안에 있는 “‘텅 빈’ 자리”(348)는 음향 효과와 어른거리는 조명이 있는 무대였던 것 같다.

 

플루트는 아닌 듯

공연에 악기도 연주되었을 것이다. 변형을 가하지 않은 “막대기, 조개껍데기, 돌, 가죽”(352)이나 뼈와 신체(“목소리, 손뼉 치기, 허벅다리 치기, 발 구르기”(350)) 등이 음향 도구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연물에 고의적인 변형을 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영역 특이적인 마음으로는 자연사 영역에 속한 물체를 사회적 영역의 용도로 바꾸는 인지 유동성을 발휘할 수 없다.

 

네안데르탈인과 함께 산책하기

네안데르탈인에게는 ‘Hmmmmm’ 음악성을 위한 신경망 진화가 있었지만, 호모 사피엔스 계통에서는 그렇지 않다. 더구나 “언어가 진화하면서” 네안데르탈인과의 “공통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음악능력이 가로막혔”다(352).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에 비하면 현대 인류가 음악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352) 그렇지만 우리도 때로는 “강렬한 음악적 경험”(352)을 한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이 빙하기의 대자연을 산책할 때 들었을 “소리의 파노라마”(353) 속 “자연의 멜로디와 리듬”(353)을 상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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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가 우리 주위를 둘러싼 음악 같은 소리에 얼마나 ‘무감각해져 있는지’”(353) 일깨운다. 네안데르탈인은 음악에 둘러싸여 살았다. “동굴 안에서 불가에 앉아” “춤을 날마다 보았다.”(352) 빙하기 대자연의 멜로디와 리듬이 펼치는 소리의 파노라마 속을 산책했다. 그들은 사람을 포함한 대자연에 전일적으로 융합되어 있었다. 감정의 교류도 전일한 경험이다. 우리는 사랑에 푹 빠지지 않고, 사랑을 지시하는 것만으로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랑 안에서만 사랑의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 감정이 풍부하며 음악적으로 의사소통한 네안데르탈인들은 세계에 마주 서 있지 않고 세계 속에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이 맺는 관계는 외부와의 관계가 아니고, 내부에서의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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