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수요종교인류학 글바다(5), 신화적 사고와 종교적 사고
신화적 사고와 종교적 사고
무문자사회에서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신화라는 구체의 철학을 통해 사고의 구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문자와 국가가 생겨나면서 만들어진 ‘초월’은 인간 사고의 구조를 완전히 파괴하는 비상사태 속에서 만들어졌다. 구체성이 제거된 추상의 직관으로 세계의 ‘밖’을 바라본다. 그래서 GOD는 無조건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어제 수업에서 했었다.
소제목 ‘신화적 사고와 종교적 사고’ 바로 뒤에 순수증여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순수증여를 내재적 초월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신화적 사고에서 나온 개념이라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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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구체적인 것, 즉 동물의 생태, 식물에 관한 사실, 여성의 몸 등을 사고의 소재로 삼는다. 신화는 구체적인 것을 사용해서 철학을 한다. 그때 신화는 비유를 한다. 사고를 위해 수집된 소재들을 비교해보고, 어떤 점이 유사한지 조사한다. 그런 다음에 이것과 저것은 ‘은유적’으로 유사하다고 하든지, 저것과 이것은 ‘환유적’으로 연결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일종의 문법에 의해 결합해간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에는 ‘구조’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적 사고에서는 전혀 다른 현상이 전개된다. 유동적 지성이 이질적인 영역을 횡단적으로 연결해감으로써, 인류의 기본적인 사고능력은 획득된다. 그러나 그렇게 획득된 사고의 내부에서 바라보면, 자기 내부로 흘러들어 왔다가 다시 밖으로 흘러가버리는 ‘유동하는 것’의 본질은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해서 순수사고인 유동적 지성은 ‘초월’에 대한 직관을 눈뜨게 하고, 그것을 통해 마음이 포착하는 세계의 ‘밖’을 향한 통로가 열리게 된다.
이때 인간의 직관이 포착하는 것은 어떤 사고 형태임에는 틀림없지만, 몇가지 점에서 일반적인 사고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우선 거기서는 이미지가 갖는 구체성이 제거되고, 추상적인 힘만이 다이내믹하게 활동하게 된다. 또한 그것은 유동성을 본질로 삼고 있으므로, 어떤 ‘구조’로도 통제가 불가능하다. ‘구조’를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월’이 출현하는 곳에서는 사고를 비롯한 모든 것의 안정적인 순환이 멈춰버린다. 사고를 비롯한 모든 것의 매끄러운 흐름은 거기서 일단 끊기고 다른 질서가 나타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