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 4장 라와 오시리스, 빛과 어둠의 대순환
종교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1』4장 25~33절 발제 2025-4-29 이성근
라와 오시리스, 빛과 어둠의 대순환
이집트의 역사에 무지했던 나는 대학원 리포트 마감과 이번 발제 마감이 겹쳐서 심한 압박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가지고 책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마음은 단번에 속독하고 빠르게 요약해서 그럴싸한 글을 쓰고 싶은데, 번번이 역사의 흐름과 번역의 애매모호한 문장에 막혀 읽고 이해하는데 수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결국 욕심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기로 마음먹고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이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쉽게 쓰리라고 마음먹었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오직 글로만 쏟아내다 보니, 기본적인 연표와 지도가 없어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곤혹스러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글링을 통해 자료를 첨부한다.
25. 잊히지 않을 기적: 최초의 시간 > 완벽한 황금시대를 확립하라!
BC 4000년 전, 현재까지 알려진 인류 최초의 문명인 중동의 수메르가 이집트에 다가왔다. 그들은 문자, 건축, 조선, 인장, 예술 등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방이 트여있어 적들의 침입을 쉽게 받는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비해 지리적으로 고립된 이집트는 특유의 독자적인 문명을 이룩했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서쪽의 사막과 북쪽의 지중해, 동쪽의 홍해로 적들은 쉽사리 넘어오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이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쪽의 거대한 산맥이 펼쳐져 있는 한반도가 5천 년 동안 거의 한민족으로 굳어진 것과 비슷하다.
최초로 이집트를 통일한 메네스 왕은 멤피스를 수도로 정하고 화려한 즉위식을 한다. ‘큰 집, 성스러운 권좌’를 뜻하는 ‘파라오’는 죽어서도 영혼은 남아서 하늘로 가서 천계를 다스린다는 강력한 신권을 확보했다. 그래서 무려 3000년간 이집트의 왕들은 성대한 즉위식을 통해 매번 새로운 신권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것은 BC 2686~2181년 동안 ‘사회와 정치 문화적 창조의 완성’을 이루게 했다. 모든것을 완벽히 이루었으니, 그 이후 모든 변화는 혼돈이요, 악마적 퇴행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종교적 의례를 살펴보면, ‘악마적 세력을 물리쳐 원초적 황금시대의 완성을 회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황금시대는 죽음도 질병도 없는 태양신 RA에 의해 완벽하게 다스려진 때를 말한다.
26. 신들의 계보와 우주의 창조, 미약한 인간 기원 신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철학적인 신화로 알려진 ’멤피스 신학‘에서 프타신은 그의 영靈(=심장)과 그의 말(=혀)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한다. 프타는 가장 위대한 신으로 선언되고, 만물을 자라나게 하고 거기에 깃든 다른 신들도 존재하게 했다. 우주를 창조한 것이다. 검색해 보니 추후 라신과 합쳐진다는데 어떤 연유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못 찾았다.
우주 창조 신화와 비교하면, 인간 기원의 신화는 빈약하다. 인간은 태양신 RA의 눈물로부터 만들어졌고, 신의 가축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27. 육화한 신의 책임, “혼돈을 멸하고 질서를 회복하라”
우주의 창조는 유일한 실체적 만물의 변화를 의미하는 세계의 출현을 의미했다. 그래서 역동하는 생명의 리듬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천체의 운행, 계절의 순환, 달의 모양, 나일강의 간조와 만조 등등 완벽한 질서의 순환을 이해해야 한다. 그와 반하는 무질서, 혼돈은 악마적 소행이다.
우주의 질서 확립과 사회 질서의 확립은 이어졌기에, 왕권은 세계가 시작될 때부터 존재했다고 여겨졌다. 즉, 라신은 인간사회에 왕으로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라신의 창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되었다. “혼돈 대신 질서(ma’at 마아트)를 세웠다” 그래서 마아트의 화신은 파라오이고 황금시대의 완전성을 혼돈으로부터 지킨다고 생각했다. 혼돈은 그 자체로 잠재적이어서 혼돈을 상징하는 아포피스 뱀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매일 아침 내쫓아서 질서를 회복한다. 그렇게 승리의 재현을 반복하는 의식이 계속 이어졌다. 점점 그러한 제의는 신관들에게 노래와 춤과 음악과 신상과 함께 위임되었다.
28. 승천하는 파라오
파라오가 그렇게 세상의 질서를 회복하다 죽으면, 남은 영혼이 새나 풍뎅이 여치 등의 모습으로 별에 올라간다고 믿어졌다. 그때 ‘공물의 들판’에서 뱃사공의 질문에 답하며 정화 의례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면 천계에서 태양신의 환영을 받고 왕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29. 오시리스, 살해된 신 “죽음, 영혼이 다시 영적인 존재로 태어나다”
신석기 문화에서는 사후 영혼은 지하에 있다고 여겨졌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저승의 지배자 ‘오시리스’의 신화로 내려져 온다.
오시리스는 공정하고 활력 넘치는 왕이었다. 그러나 동생 ‘세트’의 모략으로 살해당한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임신 상태였는데, 무사히 도망가서 아들 호루스를 낳는다. 호루스는 장성하여 숙부와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한쪽 눈을 잃는다. 그러나 다행히 승리하여 잃어버린 눈을 찾고 죽은 오시리스에게 바치자, 오시리스는 환생한다!
이렇게 부활한 오시리스는 재생의 모든 힘과 식물의 풍요를 상징하여, 비옥한 대지와 대양을 위한 성장의 원천으로 상징된다. 그래서 이집트 중왕국 시대, 사람들은 라신에서 약속과 번영을 보증하는 오시리스를 점점 믿게 된다.
오시리스의 신화는 죽음을 유의미하게 바꿔놓았다. 죽은 자는 인간의 변용이 성취된다. 즉 모습이 바뀐 영혼으로 남아서, 무력한 망령에서 ‘지식을 갖춘 상태’로 비밀스러운 종교의식(비의)을 전수 받은 영적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정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30. 신성 왕권의 중단: 무질서, 절망 그리고 사후 삶의 ’민주화‘
제6왕조 마지막 파라오 페피2세의 죽음으로, 이집트는 내란으로 붕괴 되었다. 통일 국가가 무너지고 무정부 상태가 되고, 국토는 황폐해졌다. 이때를 제1중간기(공백기)라 한다. 이 틈을 타서 귀족들은 왕처럼 자신의 관에 ’피라미드 텍스트’를 새겼다.
그중 한 이집트의 왕은 아들에게 비장한 어조로 아들 ’메리라카‘를 위해 글을 남겼다. “나라의 불운은 나로 인해 생겼다. 살아있는 한 ma’at(마아트)를 실행하라. 살아가는 시간이 길다고 안심하지 마라. 사후 심판관들은 인생을 한순간으로 여긴다……”
전통이 붕괴는 백성들에게 회의주의와 절망으로 허덕이게 했다. 또한 현세 삶의 향락을 추구하기도 했다. 결국 파라오가 ‘육화된 신’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와 사후 세계의 실재성이 의심되었다.
31. 태양신화의 신학과 정치
다행히 11왕조는 이집트를 재통합했고, 중왕국은 경제적으로 팽창하며 350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특히 12왕조는 ma’at(마아트)의 원칙을 굳건히 행했고, 그 중심은 ‘아멘(아몬)신’이었다. 헤르모폴리스 숭배의 8신 중 하나였던 그는 태양신과 동일시되었고, 이후 신왕국의 보편신이 되었다.
이후 15왕조 때 이집트는 힉소스 아시아인의 침입으로 무려 200년간 제2중간기를 맞는다. 제1중간기가 40년 동안 벌어졌으니, 얼마나 혼란이 심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 힉소스 인들은 전차와 복합궁(複合弓)으로 하이집트(나일강 하구)를 무력화시켰다.(2쪽 두 번째 지도 참고) 그러면서 시리아의 바알과 테슈프 신들이 들어왔다. 테슈프는 오시리스를 죽인 세트하고도 동일시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정복당한 이집트인들은 자부심에 큰 타격을 당했고, 서서히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드디어 17왕조 때 이집트인들은 정복자의 무기를 익혔고, 그들을 무찔러 신왕국을 건설했다. 특히 18왕조의 투트메스 3세는 힉소스 인들의 복수와 더불어 자국의 방어를 위한 길이 공격에 있다고 생각하고, 17번의 원정을 거쳐 이집트 역사상 최대 땅을 거느린 제국을 건설했다.
제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른 민족에게 어느 정도 관대한 대외정책이 필요했고, 이는 국제적인 문화로 발전되었다. 다양한 이국의 신을 허용했고, 이들은 이집트의 신들에게 동화되기도 했다. 또한 ‘아멘–라’신은 이국땅에 널리 퍼졌다.
왜냐하면 ‘아멘’의 태양신화에서 태양은 다른 어느 민족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유일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보편화되었고, 이렇게 기준이 철저히 정립됨에 따라 정치 질서에 긴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렇게 종교 융합으로 태양신이 지상신으로 회복되자 ‘아멘–라’의 신전은 엄청나게 팽창되었다. 신도들이 늘어나며 수입이 증가하자 사제들은 권력이 커지고 점점 국사에 관여하게 되었다. 결국 대사제의 권력이 파라오와 비슷하게 되었다.
32. 아켄아톤 혹은 좌절된 개혁 “유일한 신이시여…. (꾀꼬닥)”
대사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아맨호테프 4세는 아마르나 개혁(BC 1375~1350)을 일으켰다. 요지는 다른 신을 몰아내고, 태양신 아톤(아텐)을 유일한 지상신으로 격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아켄아톤(아톤을 섬기는 자)’으로 변경하고 새로운 수도를 건립했다. 그리고 자연주의를 권장하고 마아트(ma’at) 중 생명의 리듬을 강조했다. 병약했던 그는 아톤의 무한한 창조력에 매료되고, 신성한 빛에서 오는 행복에 심취한 것이다.
그러나 유일신은 왕실과 일부 궁정 신하들의 한정된 신앙으로 머물렀고, 정치와 군사적 소극성으로 수많은 영토를 상실했다. 오랜 영광의 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투탕카멘의 죽음으로 이집트의 창조성은 종말을 맞았다.
33. 최후의 종합: 라와 오시리스의 결합, 죽음과 삶의 리듬
이집트의 최대 전성기였던 신왕국 500년간, 수많은 신학자는 서로 반목하는 신들의 상보성을 강조했다. 「라신에게 드리는 기도」를 살펴보면 파라오의 죽음은 지하 세계로 내려가 ‘오시리스’가 되는 과정을 의미했다. 그리고 다시 젊은 라신으로 환생하는 것이다. 런던 클라크는 말한다. “현세를 초월하는 라신과 현세에 나타나는 오시리스는 신성의 상보성을 나타내는 두 형태이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천계와 지하 세계는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죽음은 영혼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누구든 사후에는 왕의 운명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완결된 논리구조는 주술의 권위를 크게 상승시켰다. 이집트인들은 죽음의 신비를 사색함으로써 최후의 종교적 통합을 실현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동시대 BC3000년에 동양의 음양 사상이 이집트의 삶과 죽음의 상보성과 상당히 일치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과 고조선의 농경사회에서는 당연히 자연 관찰을 통한 역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음양 사상은 세상의 기본 원리로 채택되었다.
죽음이 있어야 삶이 있고, 반대로 삶이 있어야 죽음이 있다. 어둠 속에 잠들며 우리는 다음날 미래의 꿈을 꾼다. 잠을 잘 자야 아침이 되어 맑은 기분으로 일상의 스토리를 창조할 수 있다. 즉 밤은 낮에 체험한 일상이 정리되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이고, 낮은 밤에 꾼 꿈을 실현하고 물질적인 성장을 실현한다. 이렇듯 어느 하나 경시할 수 없고 서로 대립하며 보완하는 관계를 맺는다.
현대인들이 죽음과 어둠과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을 비과학적으로 매도하고, 죽음과 삶의 이분법에 빠져 삶은 좋은 것이고 죽음은 안 좋은 것이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우리 현대인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힘든 노동의 삶 속에서 깊이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더 나은 죽음을 향한 정신적 태도를 돌아봐야 한다. 뜨겁게 1년 내내 태양이 작열하는 필리핀에서 살다 보니, 이집트인들의 육체노동 속에 숨겨진 죽음의 정신적 고뇌가 조금 더 느껴지는 기분이다. 현생에서 반복되는 어찌 보면 지루하고 힘든 일상을 살면서 미아트를 실현하고 더 나은 사후 삶을 소망했던 그들이 오히려 돈과 성공의 양적인 물질의 증식에만 매달리는 현대인들보다 더 충만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나 또한 고대의 이집트인처럼 적어도 오늘 하루는 음양의 리듬을 밟으며 안 보이는 어둠과 죽음이 내포하는 역동적인 생명력을 느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