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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 수업후기 “내란기 이집트의 종교적 풍경”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5-05-06 17:43
조회
30

종교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 1』 수업 후기 2025-5-6 김유리

 

문학작품을 통해서 본 내란기 이집트의 종교적 풍경

 

 

BC 삼천년경 이집트 문명 최초의 통일 왕국이 세워졌다. 가장 중요한 사회, 정치, 문화적 창조가 고왕국 시대(1~6왕조)에 완성되었다. 파라오의 신성에 관한 교의가 뒷받침하는 통일국가의 창건은 우주 창조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신의 화신인 파라오가 수립한 고차원적인 문명은 부동의 모델의 지위를 획득한다. 신세계의 기초를 흔드는 위기를 피하는 일이 지극히 중요했다. 신들이 창조한 우주 질서와 신성왕국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혼돈으로의 퇴행이나 악마적 세력의 승리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제6왕조의 마지막 파라오가 죽은 후, 이집트는 심각한 내란으로 흔들렸다. 소국의 왕들이 들고 일어나 무정부 상태가 되었고 국토가 황폐해졌다. 통일왕국이 붕괴해 두 개로 분열했고 내전이 종식될 때까지 혼란기를 겪는다.

『세계 종교 사상사』에서 엘리아데는 이집트 “제1중간기”(40년)의 문학작품들을 통해 위기의 시대에 발생했던 근본적인 변화의 궤적을 따라간다. 작품의 저자들은 전통적 권위의 붕괴에 실망하고, 만연한 부정과 범죄에 대해 언급한다. 작품은 사람들의 내면적 변화도 보여준다.

이 시기에는 이집트 역사에서 유일하게 파라오의 나약함이나 부도덕성이 비난받았다. 『예언자 이푸웨르의 훈계』에서 예언자는 대담하게도 무질서에 대한 책임을 파라오에 묻는다. “폐하는 온 나라에 혼란과 불화의 목소리를 함께 불러왔습니다. …… 폐하의 행동이 이러한 사태를 불러일으켰으며, 폐하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161)

『메리카라 왕을 위한 교훈』에서 한 왕은 아들을 위해 지은 글에서 자기가 지은 죄를 겸허하게 인정한다. 나라의 불운은 “나의 행위들로 인해 발생했으며, 나는 그 일을 행한 후에야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은 아들에게 살아갈 시간이 길다고 안심하지 말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정의(마아트)를 실행하라”고 권한다. “모든 이를 사랑하라! …… 슬피 우는 자들을 위로하고, 과부를 학대하지 말라. …… 유산을 빼앗지 말라 …… 살인하지 말라!”(162)

위 두 작품에서 무덤 약탈과 훼손에 대한 고발도 나온다. 『하프 연주자의 노래』는 같은 소재를 다른 관점에서 노래한다. “(왕과 귀족의 거처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라! …… 그 누구도 ……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 살아 있는 동안 그대의 욕망을 따르라. …… 번뇌하지 말라.”(163) 전통적 제도의 붕괴에 따르는 불가지론, 회의주의, 깊은 절망에서 비롯된 향락의 찬미가 표현된다. 신성 왕권이 중단되고 파라오가 더 이상 신으로 행동하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진다. 삶의 의미와 사후 세계의 실재성이 흔들리고, 죽음의 종교적 가치가 하락한다.

『자살에 관한 토론』은 절망에 빠진 한 남자가 자기 영혼과 나누는 대화를 담고 있다. “이제 내가 누구에게 말을 건네겠는가? 형제들은 고집쟁이들이고, 옛날의 친구는 더 이상 사랑이 없다. ……나라는 악한 이들에게 넘어갔다.”(163) 남자는 지금이 자살하기에 적기라고 영혼을 설득한다. “지금 나에게 죽음은 마치 환자가 병에서 회복되는 것 …… 비 내린 뒤의 대지의 향기 …… 오랜 세월 포로로 잡혀 있던 자가 고향을 그리는 그 그리움과 같다.”(164) 그는 죽음을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긴다. 영혼은 남자에게 자살한 자의 매장이 금지되어 있음을 상기시킨 후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여 고통을 잊으라고 설득한다.

중간기 문학 작품들은 정치적 통일을 회복한 다음에도 계속 읽히고 전파되었다.

 

<토론>

위기가 초래하는 정신적 메커니즘이 발견된다.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 사람들은 종교를 버리는 게 아니라 자기를 버린다. 낙관적일수록 위기 앞에서 회의적으로 변하기 쉽다.

모든 사회는 악을 다르게 정의한다. 이집트 문명의 특징인 부동주의는, 최초의 위업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모든 변화를 악한 것으로 여긴다. 고왕국 시대 5왕조 이후 이집트 문명에서는 문화적 유산에 첨가될 만한 창조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자연현상에서 종교적, 문화적 실재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창조된 원초기는 “분노, 소음, 갈등, 무질서가 등장하기 이전”의 절대적으로 완전한 황금시대였다. 종교적 의례는 악의 세력을 패배시키고 원초적 완전성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에 비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창조 신화는 신들의 세대 갈등을 주제로 한다. 젊은 신들의 소란을 견디지 못한 원초적 신들의 부동주의 경향이 오히려 악으로 설정된다. 한편, 원초적 신들에게 현재적 창조는 부정적인 것으로 표현된다. 그들이 새로 만들어내는 것은 괴물들이다. 원초적 신과 괴물들은 젊은 신들에 의해 패배한다. 인간은 원초적 신들로부터 재질을 받고, 형상은 젊은 신들에게 받는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신과 인간의 기원 신화는 원초성과 현재성의 종합이다.

이집트에서 원초성과 현재성의 종합은 죽음의 신비를 사색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 『사자의 서』와 같은 장례 문서들은 이집트 문명이 종식될 때까지 인기를 누린다. 이 책에 실린 기도와 주문은 영혼의 사후 여행을 도와주려는 의도로 쓰인 ‘최고의 안내서’다. 『사자의 서』의 안내에 따르면 죽은 자들은 자기 기억을 보전하고 자기 이름을 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기도문을 외우면서 지하 세계의 판관 앞에서 해야 할 변론을 준비해야 한다. 극도의 향락주의로 흐르던 마음이 저승 준비를 해야 하니 더 이상 즐길 시간이 없다는 상반된 삶의 태도로 갈아탄 것이다.

18왕조 이래 오시리스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신이 된다. 명계가 재판정이 되었다. 그래서 죽은 자가 준비하는 말도 변론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재판관이 된 마흔 두 신의 이름을 부르며 하는 사자의 말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이곳에 계신 신들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을 알고 있으며, 이름도 알고 있습니다. …… 저는 지금까지 마아트의 지배자를 위하여 마아트를 실천해왔습니다. 저는 결백합니다.”(177) 이렇게 이집트에서 종교는 개인의 자기 구원의 서사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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