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종교의 풍경들] 시각과 신성
어제 아침 다시 만난 원숭이 신입니다. 앞에 누가 이끼를 두었더라고요. 그 꼬마 아이일까, 누구일까 궁금했습니다.
막 뽑은(^^)듯한 신선한 이끼가 공물입니다. 쿨라 교역에서, 다음 섬으로 간 목걸이가 이전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처럼, 땅에서 조용히 자라던 이끼가 신 앞에서 순식간에 성스러운 공물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단에 올렸던 과일들은 신의 가피를 받아 이전과 다른 과일이 됩니다. 신에게 바치긴 했지만 여튼 다시 먹는 건 인간입니다(태우거나 파묻는 경우도 있지만요). 영적 세계로 들어가 가치를 증식하고, 다시 현실로 불러오는.. 은행계좌에 저금했다가 이자를 붙인 채 출금하는 것과 약간 닮았습니다(신의 가피는 은행이자처럼 똑같은 것을 조금 늘려주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류의 가치를 증식한다는 차이가 있네요) 음식을 바로 먹지 않고 신에게 올리면 이런 이익(?)이 있답니다. 인간의 증여가 신의 순수증여로 헤아릴 수 없이 갚아지는 모습입니다.
여기는 다람살라의 메인템플 옆에 있는 ‘남걀 사원’이라는 밀교 사원입니다. ‘칼라차크라’라는 밀교의식을 보존하는 사원인데요. 이 의식은 세계의 평화와 조화에 기여한다고 합니다.
요새 사원 안에는 이렇게 천이 드리워져있는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이 안에는 모래로 그린 ‘칼라차크라 만다라’가 있습니다. 2주 전에는 스님들이 만다라를 만드시는 모습을 직접 보았는데요. 사진을 못 찍어 자료 사진을 첨부해봅니다. 이렇게 금속으로 된 빈 원뿔에 색모래를 넣고 조금씩 흘려서 만다라를 그리시더라고요.
여러 만다라 도식 중에 ‘칼라차크라 만다라’라는 도식이 있습니다. 완성된 만다라는 위에서처럼 천으로 가려놓으셔서 볼 수가 없는데요. 검색해보니 이렇게 생겼다고 합니다. ‘칼라’는 시간, ‘차크라’는 바퀴라는 뜻인데, 합치면 ‘시간의 바퀴’, 흐르는 시간을 표현하는 만다라라고 합니다. 밀교는 멀고 멀어.. 잘은 모르겠습니다. 여튼 이 도형과 색이 각각 의미하는 내용이 있을텐데요. 크게는 우주의 생성소멸, 생명의 생과 죽음. 그리고 깨달음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사원에서는 정해진 도식에 따라 매번 반복하여 만다라를 그리고, 다시 부수는 의식을 합니다. 이 도식을 입체로 표현한 만다라도 있고요. 해서 하나의 모형을 알면, 다른 곳에서 또 그 도식을 만났을 때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시각적인 단어 하나를 배우는 느낌이네요. 종교에서는 이런 상징과 표징 등을 무지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시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일까요?
이런 모양으로 만다라를 다 만들고 나면, 봉헌 의식을 합니다. 천막 앞에 놓인 마른 나뭇가지, 향, 물그릇, 조형물 등이 이 의식의 일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왜 보지 못하게 가려놓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안에 만다라가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그것의 모양도 심지어 모두가 아는 모양인데 말입니다.^^ 가끔 사원에 가면 보이지 않게 가려놓은 성상들이 있습니다. 이름을 안다면 모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데도 말입니다. 시각과 신성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윤하쌤께서 계신 곳의 종교적 풍경을 아는 만큼 하나하나 이해해보고 떠오르는 질문을 하나씩 품어가는 과정이 소박하면서도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람살라의 신들은 색감이 참 풍부하고 화려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이미지가 그곳 신성의 특징과 관련이 있을까 하는 질문도 들고요.
얼마전 일본철학답사에서 만난 사원들이 다람살라와는 다른 색을 띠고 있었던 것도 떠오르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