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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종교의 풍경들] 시각과 신성

작성자
이달팽
작성일
2025-05-18 04:38
조회
47

어제 아침 다시 만난 원숭이 신입니다. 앞에 누가 이끼를 두었더라고요. 그 꼬마 아이일까, 누구일까 궁금했습니다.




막 뽑은(^^)듯한 신선한 이끼가 공물입니다. 쿨라 교역에서, 다음 섬으로 간 목걸이가 이전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처럼, 땅에서 조용히 자라던 이끼가 신 앞에서 순식간에 성스러운 공물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단에 올렸던 과일들은 신의 가피를 받아 이전과 다른 과일이 됩니다. 신에게 바치긴 했지만 여튼 다시 먹는 건 인간입니다(태우거나 파묻는 경우도 있지만요). 영적 세계로 들어가 가치를 증식하고, 다시 현실로 불러오는..  은행계좌에 저금했다가 이자를 붙인 채 출금하는 것과 약간 닮았습니다(신의 가피는 은행이자처럼 똑같은 것을 조금 늘려주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류의 가치를 증식한다는 차이가 있네요) 음식을 바로 먹지 않고 신에게 올리면 이런 이익(?)이 있답니다. 인간의 증여가 신의 순수증여로 헤아릴 수 없이 갚아지는 모습입니다.







여기는 다람살라의 메인템플 옆에 있는 ‘남걀 사원’이라는 밀교 사원입니다. ‘칼라차크라’라는 밀교의식을 보존하는 사원인데요. 이 의식은 세계의 평화와 조화에 기여한다고 합니다. 





요새 사원 안에는 이렇게 천이 드리워져있는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이 안에는 모래로 그린 ‘칼라차크라 만다라’가 있습니다. 2주 전에는 스님들이 만다라를 만드시는 모습을 직접 보았는데요. 사진을 못 찍어 자료 사진을 첨부해봅니다. 이렇게 금속으로 된 빈 원뿔에 색모래를 넣고 조금씩 흘려서 만다라를 그리시더라고요. 




여러 만다라 도식 중에 ‘칼라차크라 만다라’라는 도식이 있습니다. 완성된 만다라는 위에서처럼 천으로 가려놓으셔서 볼 수가 없는데요. 검색해보니 이렇게 생겼다고 합니다. ‘칼라’는 시간, ‘차크라’는 바퀴라는 뜻인데, 합치면 ‘시간의 바퀴’, 흐르는 시간을 표현하는 만다라라고 합니다. 밀교는 멀고 멀어.. 잘은 모르겠습니다. 여튼 이 도형과 색이 각각 의미하는 내용이 있을텐데요. 크게는 우주의 생성소멸, 생명의 생과 죽음. 그리고 깨달음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사원에서는 정해진 도식에 따라 매번 반복하여 만다라를 그리고, 다시 부수는 의식을 합니다. 이 도식을 입체로 표현한 만다라도 있고요. 해서 하나의 모형을 알면, 다른 곳에서 또 그 도식을 만났을 때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시각적인 단어 하나를 배우는 느낌이네요. 종교에서는 이런 상징과 표징 등을 무지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시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일까요? 




이런 모양으로 만다라를 다 만들고 나면, 봉헌 의식을 합니다. 천막 앞에 놓인 마른 나뭇가지, 향, 물그릇, 조형물 등이 이 의식의 일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왜 보지 못하게 가려놓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안에 만다라가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그것의 모양도 심지어 모두가 아는 모양인데 말입니다.^^ 가끔 사원에 가면 보이지 않게 가려놓은 성상들이 있습니다. 이름을 안다면 모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데도 말입니다. 시각과 신성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전체 1

  • 2025-05-21 23:08

    윤하쌤께서 계신 곳의 종교적 풍경을 아는 만큼 하나하나 이해해보고 떠오르는 질문을 하나씩 품어가는 과정이 소박하면서도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람살라의 신들은 색감이 참 풍부하고 화려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이미지가 그곳 신성의 특징과 관련이 있을까 하는 질문도 들고요.
    얼마전 일본철학답사에서 만난 사원들이 다람살라와는 다른 색을 띠고 있었던 것도 떠오르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