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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1] 수업 후기 “인류의 신화는 왜 그토록 싸우는가”

작성자
이성근
작성일
2025-05-20 17:44
조회
49

수요 인문공간세종 대중지성 / 세계종교사상사 15~6장 후기 / 2025.05.21.() / 이성근

 

인류의 신화는 왜 그토록 싸우는가

(투쟁을 통한 창조적 관계 맺기)

 

고대 인류의 신화들을 살펴보면, 이들은 끊임없이 치고받고 싸운다. 마치 구석기 인류가 동물들과 혈투를 펼치며 서로 먹고 먹히는 것처럼. 싸우지 않는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고대의 이야기는 투쟁과 복수와 전투로 점철되어 있다. 예를 들어 최초의 철기문화를 건설했던 히타이트는 매년 신년 축제 때 폭풍신과 용의 싸움에 대한 신화(45222P)를 암송했다. 여기서 용은 어둠과 혼돈, 가뭄 등을 상징한다. 중요한 것은 폭풍신은 인간의 힘을 빌려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 인간의 위대함이란! 인간은 신에게서 유래하는 힘을 가졌다니!

그런데 안 싸우고 태평 태세를 구가할 수는 없는 건가? 보라! 대지에서 풍요롭게 익어가는 곡물을! 식물들은 사이좋게 옹기종기 저마다 자기 열매를 평화롭게 품고 있지 않는가. 과연 그럴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들은 햇빛과 물이 없으면 생존과 번식이 불가능하다. 끝없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태양에 가까이하려 한다. 그마저 불가능하면 자신의 기둥을 90도로 구부려서라도 햇빛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심심찮게 누워있는 소나무를 보곤 한다. 그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하물며 물을 향한 뿌리의 경쟁은 어떨까. 동물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포식자를 피하고 먹이를 찾아 끝없이 진화를 해왔다.

하물며 인류는? 그렇게 우람하고 지능이 높았던 네안데르탈인조차 노래하며 수십만 년을 버텼지만, 결국 멸종을 피할 수 없었다. 언어를 통해 관계를 맺는 능력이 사피엔스에 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관계를 잘 맺는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자기 가족과 종족의 번영을 위해서도 필수이다. 그러려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석기 농업혁명이 일어나며, 더욱더 자연의 천문, 지리, 기후 등을 알아야 했다. 마침내 인류는 자연의 밤과 낮, 사계절의 순환을 터득했고, 이 중요한 순환 관계를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후손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게 신화가 탄생했다. 그 속에는 어둠과 혼돈과 무질서와 싸움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진다. 결국 인간은 전투와 투쟁이 피할 수 없으며 잘(?) 싸웠을 때, 죽어서도 영혼은 다음 생을 잘 이어간다고 믿게 된다.

그렇다면 잘 싸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싸움에는 반드시 고통과 난관을 겪게 된다. 그 험난한 과정을 공동체의 풍요와 증식을 위해 해쳐나가는 것이다. 크레타섬에서 전설 속의 미노스 문명을 탄생시킨 크레타 인들은 신성한 동굴과 관련해서 미궁 신화를 만들어 냈다. 여기서 달님은 2가지 입문 의례가 모든 사람에게 행해졌다고 했다. 첫 번째, 청년의 성인 의례이다. 신에게 머리카락을 바치거나, 특정 신전에서 제의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두 번째, 죽음 이후 명계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이다. 죽음은 매우 신성시되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충분히 공동체를 위해 봉사를 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묘지를 세워주고 의례를 행해 준 것이다. 이 두 의례의 공통점은 시련과 고통이 반드시 수반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종족과 문명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투에서 주어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죽어서도 평안하게 저세상 토착신에게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밤과 낮, 혼돈과 질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구한 5000년 역사를 품고 있는 바둑의 원리를 살펴보자. 바둑은 빈 공허한 바둑판에서 흑과 백이 뒤섞여 먹고 먹히며 문명을 창조하는 전략게임이다. 싸움을 피한다고 자신의 땅만 안전하게 지키면, 결국 고립되고 멸망한다. 타자와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성장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흑백의 돌들이 서로 붙고 치고받고 전투에 들어가면, 이쪽에서는 흑이 이기고, 저쪽에서는 백이 득을 본다. 그러면서 서로의 독창성인 개성이 창조된다. ‘. 상대와 붙어보니, 나는 공격을 잘하고, 상대는 방어를 잘하네. 나는 공격으로 내 스타일을 살려서 이야기를 풀어가야겠어. 부족한 부분은 상대에게 이따 물어봐야지.’

여기서 신기한 것은 아무리 전투에 강해도 100100승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세계 최강 바둑기사 신진서 9단도 역대 승률이 79%이다. 이와 반대로 아무리 약해도 100100패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자신의 재능이 요리에는 승산이 있는데 글쓰기에는 젬병일 수도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재능이 있으며 창조적인 이야기를 펼쳐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겨룸과 투쟁을 통해 제의나 시험이라는 통과의례를 밟아야 자기 능력과 잠재력을 알고 키워갈 수 있는 것이다.

신은 신진서 9단에게 바둑에서 이기는 재능을 주었다면, 이성근에겐 바둑을 음양으로 어떻게 쉽고 재밌게 수련해야 좋은지 연구하는 능력을 주었다. 그렇게 인류는 각기 다른 창조된 스토리를 가지고 문명을 창조하고 증식해 왔다. 때론 서로 돕고, 때론 서로 다투기도 하면서 관계를 맺어온 것이다. 투쟁에서 영원한 승자와 영원한 패자도 없다. 승부를 통해 졌다면 복기해서 더욱더 자신의 특출한 잠재력을 살리려고 해야 한다. 이겼다면 일단 자신의 스타일을 더욱 굳건히 밀고 나가면 된다. 지든 이기든 투쟁을 통해 서로 배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승부에서 격식을 깨지 않으면 고수가 될 수 없어.”가 메아리쳐 들려온다. 이 대사가 노쇠한 신을 뒤엎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바알신과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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