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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해양 답사기] 바닷속 협주곡

작성자
유나
작성일
2025-03-03 14:32
조회
46

2025.3.3./해양인류학 답사기/손유나

 

바닷속 협주곡

 

어린 시절에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곧바로 거실에 있는 어항 앞에 앉아서 주홍빛 비늘을 반짝거리며 어항 속을 돌고 도는 금붕어를 구경하곤 했다. 굵은 모래와 자갈이 깔린 바닥과 곳곳에 배치된 바윗돌과 수초, 돌아가는 물레방아까지 넣은 작은 수족관에서 뻐끔거리는 금붕어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본 물속 세상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국립해양생물 자원관은 바닷속을 재현하여 방문객이 마치 바닷속으로 입수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높은 천장과 전구색 혹은 주광색의 조명. 빛이 들어오는 구역에 서식하는 해초, 해조류, 어류를 전시할 때는 초록색으로, 심해어를 만날 수 있는 전시관에서는 짙은 푸른색을 뒤에 배치하여 점점 더 깊숙한 바다로 들어가는 느낌을 연출했다. 벽에 곳곳에 전시된 해양생물 표본은 오묘한 빛깔을 간직한 채, 작은 더듬이와 미세한 털, 오돌토돌한 돌기까지 재현하여 마치 심해에서 살아 유영하는 바다 생물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전시관 전체의 배경과 조명, 전시된 해양생물의 알록달록한 색깔이 어우러져서 바닷속 영롱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얀 피가 흐르는 남극빙어, 몸을 세로로 길게 세우고 사냥을 준비하는 은빛 갈치의 무리, 오메가-3의 주원료의 크릴새우, 심해의 어둠 속에서 자체 발광하는 심해어, 전설 속 바다 괴물 거대 오징어. 신비롭고 영롱한 분위기에 취했다.

국립생태원으로 이동하여 첫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색을 뽐내며 헤엄치는 열대어에 눈길을 빼앗겼다. 한 수조에 대략 4~5종의 물고기가 어우러져 헤엄치고 다녔는데, ‘다른 종끼리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어릴 때 어항을 바라보며 느꼈던 고요함이 떠올랐다. 나는 바닷속에 잠겨있다는 환상에 잠시 빠졌다가 금세 물 바깥에서 수조에 담긴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리둥절했다. 나는 해양생물을 관찰자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연결될지는 못하는 것일까? 심해에 유영하며 해양생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은 그저 피상적인 환상일 뿐, 해양생물과 나의 연결고리는 되지 못했다.

해양생물과의 연결이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자, 내 마음은 곧바로 오래전 인상 깊게 보았던 한 영화를 떠올려 주었다. 2009년 개봉한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1960년대 미국 돌고래 TV 프로그램이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최고의 돌고래 조련사 리처드 오배리는 자신이 돌보던 돌고래 케이시가 수족관에서 고통스러워하다 자살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고 보호 운동가로 전향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일본의 타이지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무자비한 돌고래 남획을 고발한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매년 대략 23천 마리의 돌고래가 창과 작살에 찔려 죽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사거리 건널목에 서서 고통에 울부짖는 돌고래의 소리를 들려주며,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한다. 오배리가 들려준 그 소리는 내 마음에도 와닿아 반향을 일으켜, 그때부터 내가 음식을 소비하는 형태와 동물원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영화를 본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들었던 돌고래가 울음소리가 내 몸을 타고 울린다. 소리는 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호흡을 하는 해양생물과 육지 동물인 나를 연결하는 효과적인 끈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의 소리를 듣는다면 말이다.

답사를 다녀온 후 나는 해양생물이 내는 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피그미 열대어, 곰치, 흰둥가리, 카디날 피쉬의 울음소리 혹은 몸을 두드리는 소리, 딱총새우가 집게발로 딱딱거리는 소리. 수중에는 각기 특색있는 소리로 가득했다. 내가 식물이라고 착각했던, 사실은 광합성을 하는 동물인 산호초 역시 자신만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건강한 산호초가 내는 소리와 그렇지 않은 산호초의 소리가 달랐다. 건강하지 않은 산호초는 꺼져가는 잿불에서 나는 즈즉-’ 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건강한 산호초는 기분 좋게 고르륵 고르륵소리를 낸다. 피그미 구라미는 번식을 위해 삐요용-’ 영롱한 소리를 발산하며 상대를 유혹한다. 해양생물이 가진 다채로운 색깔만큼이나 그들이 내는 소리도 각양각색이고 신비로웠다.

물은 일종의 경계이다. 물 안과 밖의 소리는 물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다시 안으로 밖으로 반사된다. 하지만 조금만 귀 기울이며 해양생물이 살아가며 내는 다양한 소리가 가득하다. 낚시꾼들은 자신이 잡아 올린 물고기가 내는 소리를 들려주었고, 어떤 사람은 고가의 수중음향탐지기를 이용하여 해양생물이 내는 소리를 수집하고 있었다. 이 소리는 해양생물이 단지 먹거리나 구경거리가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임을 생생하게 일깨워준다. 인류는 우리 은하계 밖 생명체와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우주 탐사선에 바흐와 베토벤의 선율을 실어 보냈다. 머나먼 곳에서 외계 생명체가 우리의 소리를 듣고 응답하기를 기대하는 만큼 바닷속 생명체가 저마다 노래하는 선율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는 생명체로서 서로 연결되고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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