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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블루 머신] 전일적 메시지로서의 몸

작성자
조재영
작성일
2025-03-03 17:50
조회
55

전일적 메시지로서의 몸

 

 

 

헬렌 체르스키는 그녀의 저서 블루 머신에서 인간은 빛과 소리라는 두 전달자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빛으로는 소리를 알 수 없고, 소리로는 빛을 알 수 없듯 전달자가 메시지의 유형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메시지는 어떤 의미나 내용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일 수도 있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거나 함께 소통하려는 필요나 의지일 수도 있다. 메시지는 발화되는 지점과 그것이 닿는 지점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이다. 인간인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메시지 전달 방식은 당연 말과 글, ‘언어이다. 그리고 말과 글을 통해 오독이나 오해 없이 있는 그대로 그 의미가 옮겨가는 것을 첫째 미덕으로 삼기도 한다.

나는 여태껏 언어 없는 메시지를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블루 머신을 통해 몸을 매개로 소리와 빛으로 메시지를 발화하는 해양 생물들을 보자니 새삼 인간이 우리에게도 말과 글 이외에 여러 메시지 전달 방식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실상 단어와 문장을 통해 전달되는 의미보다 그 행간에서 읽혀지는 의미에 더 힘이 실릴 때가 많다. 구어에서도 목소리의 크기, 눈빛, 손의 제스처들을 통합적으로 파악해서 의미를 받아들이고 소통한다. 언어는 생각보다 복합적이다. 언어 이외의 메시지 형식의 여러 가능성이 인간에게도 똑같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육지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간인 우리들과 바다를 매개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해양 생물 사이가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빛과 소리라는 전달자 자체가 대기와 바다에서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일적 메시지로서의 소리와 빛

메시지로서 소리와 빛의 특징은 무엇일까? 인간에게 익숙한 말, 글과는 무엇이 다를까? 그것을 전달 가능하지만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흘려보내지만 스스로를 박제하지 않는다. 소리와 빛은 찰나적이다. 그리고 또 빛과 소리는 분절되지 않는다. 인류도 소리와 빛이 물질적 특징과 같이 분절되지 않는 메시지를 사용하던 시기가 있었다.

 

레이는 언어의 전구체는 단어보다는 메시지로 이루어진 의사소통 체계였다는 의미로 전일적이라는 말을 썼다. 호미니드가 내뱉은 발화는 현대 언어의 단어와 비거튼이 주장하는 원시언어의 단어처럼 통째로 하나의 임의적 의미를 가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레이가 말하는 원시언어에 따르면 호미니드가 내뱉은 다음절짜리 발화들은 더 작은 의미단위들(말하자면 단어들)을 결합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더 작은 의미단위들을 임의적으로, 또는 법칙에 따라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가진 발화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레이는 전일적 발화가 분절되어단어가 생기고 그 단어들을 합쳐 새로운 의미를 지닌 발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때 현대 언어가 진화했다고 생각한다.(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20)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에서 저자 스티븐 미슨은 인류사에서 음악과 언어는 불가분의 관계로 함께 발달해왔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는 문장화된 것이고, 문장은 흔히 단어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단어는 문장으로부터 분절되었다, 다른 단어들과 조합을 이루면서 새로운 문장이 되어가는 식이다. 스티븐 마이든이 이 같은 사고는 우리가 현대라고 부르는 시기에 시작된 현상에 불과하며 원시언어에서 호미니드(hominid, 유인원)의 발화는 통째로 하나의 의미를 가져 분절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호미니드에게 단어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의사 전달을 하는 메시지로서 분리될 수 없는 통째문장, ‘통째발화가 있었을 뿐이다.

 

훔볼트 오징어의 몸언어, 현재를 조정하는 능력

헬렌 체르스키는 바다에서 빛은 신호를 보내는 도구라고 말한다. 빛이 산란되는 덕분에 해양 생물들은 잠재적 빛 신호에만 집중할 수 있다. 바다 생물 76%가 스스로 빛을 생성한다고 추정된다. 훔볼트 오징어는 젤리 같은 근육 안에 쌀알과 크기와 형태가 비슷한 수백 개의 미세 입자가 있는 해양 생물이다. 입자 내부 기관이 각 기관에 있는 루시페린과 루시페레이스라는 두 가지 화학 물질을 결합, 밝은 파란색 빛이 폭발적으로 뿜어낸다. 이 빛은 외부가 아니라 다시 오징어 내부로 향하고 근육 조직에서 반사되어 근육 대부분이 파란색으로 빛난다. 독특한 피부 신호를 생성하는 부위가 강렬히 빛을 내는 것이다. 진한 색소가 담긴 주머니가 확장되면 밝게 빛나는 근육에 뚜렷한 무늬가 나타나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훔볼트 오징어 무리는 이 메시지를 토대로 행동과 움직임을 조정한다.

이들 훔볼트 오징어에 대해 MBARI의 선임 과학자 브루스 로비슨와 공동 연구자 벤 버포드 역시도 몸의 색상 변화가 오징어가 서로 소통하는 방법일 수 있다고 알려준다. 예를 들어, 훔볼트 오징어가 먹이를 먹을 때 종종 보이는 반쯤 밝고 반쯤 어두운 패턴은 경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심하세요. 저 등불 고기를 잡을 거예요!”라고 말이다. 또한 이 두 과학자들은 오징어가 때때로 인간이 문장에서 단어를 배열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특정 순서로 패턴을 사용할 뿐 아니라 이 특정 패턴을 사용하여 다른 패턴의 의미를 수정하여 인간이 구문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알려준다. 훔볼트 오징어가 신체 패턴의 변화를 일관되고 효과적인 의사 소통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패턴에 있다는 것, 그 패턴을 수정하거나 조정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일종의 뉘앙스같은 것일까? 멜로디를 연주하듯, 음을 조금 높게 혹은 낮게 조절하거나, 어느 부분에 속도와 강세를 달리하거나 하는 식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또한 훔볼트 오징어의 빛언어는 그 자체로 곧 신체언어이기도 하다. 신체언어는 본능적이며 즉각적이고 직관적이다. 우리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요건에는 청자와 화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빛을 보내는 오징어가 있으면 그 빛을 보고 반응하며 행동을 조정하는 다른 바다 생물이 있다. 오징어의 빛 또한 다른 바다 생물에 의해 발산하는 것이기도 하다. 해서 이들의 빛언어이자 몸언어는 타자들과 함께 엮어내는 지금이라는 그물망을 벗어나 성립되지 않는다. 지금 바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재빨리 인식하고 그것에 맞게 판단하며, 상호 의사 교류를 통해 행동에 결정을 내린다.

내용을 담아 발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표현이자 전달이라는 점에서 모든 메시지는 언어다. 언어에 담긴 의미, 내용과 그 언어를 전달하는 형태, 형식이 다를 뿐이다. 언어는 단어의 조합이라는 믿음, 단어로 구성되는 문장이라는 믿음을 내려놓는다면 단어와 문장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오직 소리와 빛으로 또는 오직 표정과 몸짓으로만 인식 가능한 인간의 다른 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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