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해양 생물 답사기] 삶의 방식이 형태를 빚는다
딸 아이의 학교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끊었더니, 옆에서 듣던 아이가 묻는다. “엄마 왜 목소리가 달라져?” 평소 엄마가 본인에게 하는 말투나 목소리 톤과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선생님께 좋은 엄마 이미지를 보이고 싶었는지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된 것 같다. 가족에게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인 것을 보니, 내가 상대를 어떻게 인식하냐에 따라 나는 나를 바꾸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타자를 인식하고 변신하는 일에 노련한 것은 아니다. 내가 자리한 곳에 맞게 태도를 가져야 하는데 외부와 연결된 나를 인식하기보다 당시의 내 상태와 마음이 먼저 나를 결정한다. 기분파로 살면 나의 정신 건강은 좋을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내 위주의 말만 하게 되고 꽉 막힌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상황에 맞게 변신을 잘하는 능력이 있다면 참 좋겠다.
변신하는 항해자들
예전에 보았던 넷플릭스의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에서 문어의 변신 능력은 실로 놀라웠다. 문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산호초처럼 몸의 형태와 색을 바꾼다. 어느 때는 상어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공모양으로 만든 몸 겉면에 조개껍데기류를 빈틈없이 붙인다. 형태를 바꾸는 게 사는데 이득이 된다는 것을 문어는 알고 있다. 인류학 세미나에서 읽은 『블루 머신』은 문어처럼 변신 능력이 좋은 생명체를 ‘항해자’라고 말한다. 상황에 맞게 자신을 바꾸는 항해자들은 선호도에 맞추어 해양 지형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드나든다. 대서양 참다랑어는 온혈 어류라 차가운 바닷물을 찾을 것 같지만, 실제로 항해를 나서는 곳은 따뜻한 바다인 난수성 소용돌이이다. 이곳에는 참다랑어의 근육질 몸매 유지를 돕는 청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항해자로 산다는 것은 나와 나의 바깥을 동시에 조망하고, 환경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전 <해양 인류학>팀과 충남 서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나는 이날 수많은 항해자들을 만난 것 같았다. 어류들은 오랜 기간 자기가 살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몸을 바꾸어왔다는 점에서 능동적인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류 전시는 장어형Anguilliform, 구형Globiform, 종편형Depressiform, 방추형Fusiform, 측편형Compressiform 등으로 생김을 구분하고 있었지만 이런 구분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체형도 많다고 한다. 어류들 중에는 어린 시절과 다 자란 시절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런 형태 변화를 ‘탈바꿈(변태, metamorphosis)’ 이라고 한다.
이번 해양 인류학 세미나를 통해 바다 생물의 다양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류 한 마리 한 마리의 생김을 관찰하면 각양각색의 모습에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공치(Halfbeak, Hyporhamphus sajori)는 연안의 해면 가까이에 서식하는 가늘고 긴 식용 물고기이다. 일본에서는 ‘사요리(サョリ)’라 부르며 초밥 재료로 귀하게 여겨지는 흰살생선이라고 한다. 학공치는 부화 후 자라면서 아래턱이 점점 길어져 어릴 때와 전혀 다른 형태의 주둥이를 가지게 된다. 학처럼 길게 뻗는 아래턱 덕분에 학공치라는 이름을 가졌고, 학꽁치라고도 불린다. 학공치의 입이 왜 유난히 길어졌는지는 아직 정보를 찾지 못했다. 궁금함과 동시에 다른 물고기의 탈바꿈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황새치(Swordfish, Xiphias gladius)는 학공치와 다르게 자라면서 아래턱이 짧아지고 위턱이 길어지는 특징이 있다. 어린 시절 몸 전체 퍼졌던 등지느러미는 성체가 되면서 크기가 작아지고, 마침내 머리 근처에 세모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몸길이가 4~5m로 회청갈색을 띄고 몸이 둥글어 길고, 눈이 크다. 긴 주둥이는 방어용 무기로 쓰이거나 먹이를 잡을 때 사용한다고 한다. 최대 시속 80km로 헤엄을 칠 수 있어 주둥이로 고래를 찌르기도 한단다.
넙치(Flounder, Paralichthys olivaceus)는 어렸을 때 얼굴 좌우에 눈이 위치하고 다른 물고기들처럼 헤엄치며 살지만, 성장하면서 마지막에 급속하게 오른쪽 눈이 점점 이동하여 왼쪽에만 위치하게 된다. 몸의 색소는 눈이 있는 쪽으로만 발달하고 헤엄치는 방법도 편평형으로 정착되어간다. 눈이 이동하는 이유는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고자, 모래나 펄 바닥에 몸을 숨기고 먹이를 쉽게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비슷하게 생긴 가자미는 넙치와 다르게 눈이 오른쪽으로 몰려 바닥에 두고 보면 머리와 꼬리의 방향이 다르다.
항해자들의 몸의 형태는 조건을 수긍하며 만들어온 흔적이다. 나는 외부 조건에 능동적으로 변신하는 어류들을 보면서 신비롭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나도 어떤 조건 속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바꾸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변신에 더디다면 조건에 대해 그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속 생물들은 변신하고 싶어서 몸을 바꾼 게 아니라 그것을 추동하는 복합적인 원인들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만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사는 생명들을 만나고 오니 세상은 더 광대하게, 나는 아주 작은 점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