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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해양생물 글쓰기] 결론을 보류하는 소통

작성자
조재영
작성일
2025-03-10 17:57
조회
19

 

빛과 소리, 메시지 전달자

헬렌 체르스키는 그녀의 저서 블루 머신에서 인간은 빛과 소리라는 두 전달자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빛으로는 소리를 알 수 없고, 소리로는 빛을 알 수 없듯 전달자가 메시지의 유형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메시지는 어떤 의미나 내용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일 수도 있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거나 함께 소통하려는 필요나 의지일 수도 있다. 메시지는 발화되는 지점과 그것이 닿는 지점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이다. 그런데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도 내용만큼이나 다양하다. 발신자와 수신자의 신체 구조에 따라 또 이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에 따라 메시지 전달을 위해 사용하는 물질, 매체나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메시지의 형식은 그렇게 발신자와 수신자를 구성하고 또 이들을 둘러싼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인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메시지 전달 방식은 말과 글이다. 이는 시각과 청각이 매개하고 블루 머신에서처럼 빛과 소리라는 전달자를 거친다. 나는 여태껏 말과 글 이외의 메시지 형식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블루 머신을 통해 같은 빛과 소리를 전달 물질로 쓰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발화하는 해양 생물들을 보자니, 말과 글 이외에 빛과 소리가 만들어내는 더 다양한 메시지 형식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형식이 바뀔 때 우리가 전달하려는 의미, 내용에도 어떤 차이가 생길까? 말과 글로만 주고받던 의미와 내용들에 변화가 생길까? 전달 형식이 달라질 때 세상에 대해 이전에 알지 못했던 다른 의미를 발견하고 전달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바다 속 빛과 소리

똑같이 빛과 소리가 메시지 전달자로 역할 한다고 하더라도 육지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간인 우리들과 바다를 매개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해양 생물의 소통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빛과 소리라는 전달자 자체가 대기와 바다에서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기에서 빛은 모든 물체를 균등하게 비추면서, 이동하는 과정에 변형되지 않고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반면 바다에서 빛은 대기와 달리 이동 방향을 쉽게 바꾸거나 세기가 약해지기도 한다. 헬렌 체르스키는 다이버로 친구의 연구 프로젝트를 돕다가 손등이 베였는데 이때 바다에서 흐르는 자신의 피가 빨간색이 아니라 녹색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빨간색은 사물이 빨간색이 아닌 다른 색을 흡수한 뒤 우리 눈으로 빨간색을 반사한 결과다. 빛이 투과하는 거리는 물의 색에 따라 달라진다. 바닷물은 빨간색을 가장 빨리 흡수하고 파란색은 깊은 곳까지 도달한다. 헬렌 체르스키가 있던 수심에서는 이미 빨간색과 파란색은 이미 물에 흡수된 상태로 피는 아직 흡수되지 않은 녹색광을 반사한 것이다. 이처럼 바다에서는 사물이 색을 잃는 것이 아니라, 자연광이 바다를 투과하는 거리에 따라 부분적으로 존재하면서 눈에 보이는 색 또한 부분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소리는 또 어떤가? 물 자체와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와 탐사 방식이 바닷속 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지 않도록 막을 뿐, 바다에도 소리가 존재한다. 해수면을 경계로 바다 위에서 나는 소리는 바다 위로, 바다 아래에서 나는 소리는 바다 아래로 각각 반사되어 바다 위아래는 소리 측면에서 보자면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 뿐이다. 해수면 위 소리는 공기를 타고 이동하지만 공기 중 소리가 해수면에 부딪혀서는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바로 반사되어 위로 올라간다. 해수면 아래 수중 음파는 올라오다 수면에 도달하면 공기 밀도가 너무 낮아 압력을 전달하지 못해 결국 해수면에 반사,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물과 공기가 너무 달라 서로에서 침투하는 일이 거의 없다.

 

훔볼트 오징어의 빛언어

헬렌 체르스키를 따라 블루 머신을 탐험하며 나는 특히 훔볼트 오징어의 소통 체계에 관심이 갔다. 목소리를 낼 수 없고, 문자를 사용하지 않기에 인간의 의사소통과 방식이 다르지만, 몸에 빛으로 무늬를 드러내고 무늬로 패턴을 만들어 인간의 문장과 유사한 구조를 조직할 수 있다. 그리고 각 패턴은 특정 의미를 지시한다. 인간의 소통 체계와 같은 듯 다른 점이 궁금했다.

훔볼트 오징어는 젤리 같은 근육 안에 쌀알과 크기와 형태가 비슷한 수백 개의 미세 입자가 있는 해양 생물이다. 입자 내부 기관이 각 기관에 있는 루시페린과 루시페레이스라는 두 가지 화학 물질을 결합, 밝은 파란색 빛이 폭발적으로 뿜어낸다. 이 빛은 외부가 아니라 다시 오징어 내부로 향하고 근육 조직에서 반사되어 근육 대부분이 파란색으로 빛난다. 독특한 피부 신호를 생성하는 부위가 강렬히 빛을 내는 것이다. 진한 색소가 담긴 주머니가 확장되면 밝게 빛나는 근육에 뚜렷한 무늬가 나타나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훔볼트 오징어 무리는 이 메시지를 토대로 행동과 움직임을 조정한다.

이들 훔볼트 오징어에 대해 몬터레이 베이 수족관 연구소(MBARI)의 선임 과학자 브루스 로비슨와 공동 연구자 벤 버포드 역시도 몸의 색상 변화가 오징어가 서로 소통하는 방법일 수 있다고 알려준다. 예를 들어, 훔볼트 오징어가 먹이를 먹을 때 종종 보이는 반쯤 밝고 반쯤 어두운 패턴은 경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심하세요. 저 등불 고기를 잡을 거예요!”라고 말이다. 또한 이 두 과학자들은 오징어가 때때로 인간이 문장에서 단어를 배열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특정 순서로 패턴을 사용할 뿐 아니라 이 특정 패턴을 사용하여 다른 패턴의 의미를 수정하여 인간이 구문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알려준다. 예를 들어, 한 패턴 시퀀스는 조심해!저 등불고기를 잡을 거야를 의미할 수 있지만, 다른 시퀀스는 조심해!내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너를 먹을 거야!”를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훔볼트 오징어는 인간이 문자 이미지를 만들어 소통 체계에 활용했듯 무늬와 패턴을 만들어 자신들만의 의사소통에 활용한다. 우리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요건에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빛을 보내는 오징어가 있으면 그 빛을 보고 반응하며 행동을 조정하는 다른 바다 생물이 있다. 오징어의 빛 또한 다른 바다 생물에 의해 발산하는 것이기도 하다. 해서 이들의 빛언어는 타자들과 함께 엮어내는 지금이라는 그물망을 벗어나 성립되지 않는다. 지금 바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재빨리 인식하고 그것에 맞게 판단하며, 상호 의사 교류를 통해 행동을 조정한다.


언어가 가르쳐 삶의 주는 태도

인간의 문자언어는 지시하는 대상과 지시하지 않는 대상 사이에 경계를 만들고 한정 지으며 지시하려는 바를 선명히 드러낸다. 문자화되지 않는 무늬, 이미지, 패턴으로 소통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상상해 본다.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기존 전달 통로 밖으로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의미들이 생기고, 이 의미들을 전달하기 위한 새로운 통로가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할 수도 있다. 무엇을 발화하려는지 아직은 선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호함 속에서도 서로에게 가닿으려는 마음, 상대를 알아가고 궁금해 하며 모색하는 태도, 소통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소통의 마지막이 꼭 하나의 결론일 필요는 없다. 소통에 참여한 모든 이가 같은 의미를 전달 받을 필요도 없다. 계속 미끄러지는 중에 소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기를 보류한다면 발화자는 자신이 관계망 속에 던진 첫 발화가 다른 의미로 돌아와 자신을 다르게 구성한다. 그런 이에게 소통과 대화는 언제는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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