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해양 인류학 글바다(서평)] 알로하, 모아나!
알로하, 모아나!
2025. 03. 15. (토)
유현지
알로하, 모아나!
헬렌 체르스키의 <블루 머신>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에 대한 경이로운 탐구서다. 해양학자인 저자는 바다를 거대한 시스템으로 바라보며 해양의 물리적 특성부터 생태계, 인간과의 관계까지 총체적으로 다룬다. 과학 저널리스트로서의 배경을 살려 저자는 복잡한 해양학 개념을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바다의 정교한 작동 원리와 그 중요성을 일깨운다.
본 서평에서는 헬렌 체르스키의 해양 탐구에 내 개인적 경험을 비추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단순한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바다와 내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과학과 개인적 성장이 어떻게 만나는지, <블루 머신>과 함께 탐험해보자.
나는 6살 때 계곡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있다. 그 이후로는 물에 들어갔을 때, 바닥에 발이 닿지 않으면 몸이 굳어져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독립하기 전, 25년간 살았던 고향은 부산이었다. 창문을 열면 배의 고동 소리가 들리고, 언제든 바다를 볼 수 있는 도시였지만 나는 늘 바다와 거리를 두었다. 부모님을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벗어나지 못하던 내게 고향의 바다는 억압과 두려움의 존재였다.
2016년, 바다를 보는 관점이 바뀐 사건이 있다. 바로 쿠바 여행! 부모님은 내가 대학교의 방학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공부하러 가는 줄 아셨지만, 사실 첫 해외여행으로 난 겁도 없이 쿠바를 택했다. 쿠바로 떠나기 하루 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보게 되었다. ‘모아나(Moana)’는 폴리네시안 언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바다” 또는 “대양”을 뜻한다. 자신의 이름처럼 바다를 너무나 사랑하는 소녀. 그는 바다 너머 무엇이 있는지,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고민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사사건건 부딪혔다. 하지만 결국 용감하게 바다를 나아가는 모아나의 모습을 보며, 난 용감하게 바다로 향했다.
블루 머신이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
<블루 머신>의 1부는 지구의 경이로운 해양 엔진을 소개한다. 1장은 바다의 시스템을 샅샅이 파헤쳐 작동 원리를 밝힌다. 감히 기계(Machine)라 칭할 만큼 바다는 정교하게 짜여 있다. 수온, 염분, 밀도, 회전은 지구 곳곳에 따라 달라져 다채로운 환경을 만든다. 2장은 바다의 형태를 다룬다. 해수면부터 시작해 해저, 지각판을 훑으며 이 형태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명한다. 3장은 두 가지 해양 과정을 소개한다. 하나는 바닷물을 분리하고 차이를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바닷물을 혼합하고 균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해양 과정 덕분에 바다는 에너지를 순환한다. 이렇게 총 3장에 걸쳐 바다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헬렌 체르스키는 차근차근 밝혔다. 이제 1부가 마무리되고, 2부부터는 바다 시스템에 맞춰 생물들이 어떻게 적응해왔는지 제시한다.
2부가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단연 헬렌 체르스키의 독보적인 분류 방식 덕분이었다. 그녀는 바다 속 움직이는 것들을 전달자, 표류자, 항해자로 총 3가지로 분류한다. 우선 전달자에는 빛과 소리가 있는데, 바다에서 빛은 영 맥을 못 추리고 사라지는 대신 소리가 장거리 통신망 역할을 톡톡히 한다. 표류자는 바닷물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떠다니는 원자나 플랑크톤으로, 전달자와 표류자 모두 바다의 내부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항해자는 바다를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며, 대표적으로는 인간이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전, 인간은 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깊이 이해해야 했다. 조류가 어떻게 흐르는지, 바람은 어디서 어디로 부는지 – 바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바다가 안내하는 대로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1807년 증기선이 발명된 이후, 바다와 인간은 단절되었다. 바다가 이끄는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고 싶은 곳으로 바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인간과 바다의 관계는 재정의되었다. 하지만 인류는 다시 바다와 연결될 기회가 생겼다. 바로 폴리네시아인들이다.
폴리네시아! <모아나>의 배경이 되었던 바다의 넓은 지역이다. 주인공인 모아나는 바다를 작은 카누로 누비고 다니는데, 손을 뻗어 별들을 가늠해 방향을 정하고 파도의 흐름을 느끼며 항해를 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폴리네시아인들이 이런 문화를 지켜온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블루 머신>에 따르면 중간에 명맥이 끊겼다가, 폴리네시아가 아닌 미크로네시아 항해사에 의해 다시 항해술이 부활했다고 한다. 다시 극적으로 바다를 읽는 인간이 나온 것이다!
3부는 드디어 환경 오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환경 오염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바다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바다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건 그간 가졌던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이때까지는 막연히 바다의 온도가 오르면 안 된다고들 하니까 그런가 보다, 여겨왔다. 하지만 ‘그까짓거 온도가 조금 오른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나?’ 싶은 안일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1~2부에서 바다의 정교함을 알아버려서, 그 시스템이 촘촘히 엮여있는 와중에 인간이 얼마나 큰 변수를 던지고 있는지 바로 설득이 되었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의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알면 사랑한다.” 그렇다, 난 바다에 대해서 티끌만큼이겠지만 알게 되었고 그러자 사랑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발이 닿지 않는 바다는 무섭지만, 내가 죽더라도 난 다시 바다로 흘러가고 작은 플랑크톤에서부터 커다란 고래에 이르기까지 먹히다가 결국 다시 대기로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바다와 나는 연결되어 있다. 그 생명의 순환을 알게 되자, 바다가 예전만큼 무섭지 않았다. 인류는 바다에서 나왔고 죽으면 다시 바다로 돌아갈 테니까.
책의 한계와 아쉬운 점
헬렌 체르스키의 <블루 머신>이 바다에 대한 풍부한 과학적 지식을 제공하는 점은 분명 가치 있으나,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해양 생태계나 구조와 같은 복잡한 개념을 설명할 때 시각적 자료가 부족했다. 과학 서적에서 그림이나 도표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 중요한 요소인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보조 자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또한 저자의 서술 방식이 종종 산만하게 느껴졌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어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결국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나중에야 명확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덕분에 페이지의 앞뒤를 오가며 메시지를 파악해야 했다.
표류자에서 항해자로
헬렌 체르스키의 <블루 머신>을 읽고 난 후, 바다는 내게 다른 존재가 되었다. 바다라는 미지의 공간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그것을 더 이상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 공존하고 배우며 사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공포는 무지에서 오고,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니까. 난 점점 바다를 사랑하게 됐다.
2016년 <모아나>를 봤을 때의 나는 표류자였다. 바닷물에 몸을 실은 채 이리저리 떠다니던 존재. 그 미약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의 변화가 신기하기만 하다. 2024년,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모아나2>가 개봉했다. 8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쿠바를 한 달간 여행한 후, 멕시코를 혼자 여행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독립했고, 안정적인 직장도 나왔다. 이후 유럽과 발리, 스리랑카를 여행했다. 지금은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 내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항해자로서의 감각을 익히고 있다. <모아나>에서 모아나는 바다 너머를 궁금해하면서도 두려워하기도 하는 소녀였다면, <모아나2>에서 그는 어엿한 항해자다. 자신뿐만 아니라 선원까지 책임지는 모아나는 땅과 바다, 하늘과 인간과 연결된 존재이다. 나 역시 더 많은 존재와 연결되길 소망해본다. 오늘 밤은 어릴 때 들었던 뱃고동 소리가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