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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물과 인류] 에세이_팔루(Palu), 스스로 나침반이 된 자들

작성자
조재영
작성일
2025-05-19 18:00
조회
30

팔루(Palu), 스스로 나침반이 된 자들

 

 

 

지도 없이 떠나는 항해

어떤 목적이든 긴 여행이나 탐험을 떠난다고 할 때, 나에게 바다는 육지보다 훨씬 더 무모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육지 위에는 건물, , 나무, 길처럼 눈에 잡히는 대상들이 있다. 이들은 이정표가 되어 현재 나의 위치를 가늠하고 다음 경로를 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이정표들 덕에 우리는 지도를 그릴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이정표가 없다면 우리는 지도를 그릴 수 없고, 지도가 없다면 어디에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지도가 없고, 또 지도를 그릴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은 혼란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바다 한가운데서는 위치를 가늠할 대상이 거의 없다. 지금 내가 어디쯤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끝없이 움직이는 수평선,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람,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들을 가지고 어찌 지도를 그릴 수 있을까? 이정표가 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하는 이 모든 것은 방향 대신 막막함을 안긴다. 지도가 무용한, 그런 바다 위를 뛰어든다는 것은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해양 인류학 세미나에서 만난 고대 항해자들은 무모하지 않았다. 그들은 바다를 알지 못한 채 모험심만으로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종이 위에 지도를 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바다를 알았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별을 읽고,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을 만지고 관찰하며 바다 읽는 법을 익혔다. 육지처럼 고정된 이정표 없이도, 인공위성이 보내주는 신호 없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는 능력,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 징후들을 감각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필수였다.

바다 인류에 소개된 미크로네시아 항해자 마우 피아일루그는 이러한 해독의 과정을 보여준다. 미크로네시아는 북태평양에 위치한 작은 섬들의 집합으로,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와 함께 태평양 문명을 이루는 지역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별다른 항해 도구 없이도 바다를 건너 섬에 정착하는 뛰어난 항해술을 보유했다.

마우 피아일루그는 별, 바람, 파도, , 섬들의 징후만을 의지해 항로를 개척했다. 그는 카누 바닥에 책상다리로 앉거나 누워 파도의 진동을 몸으로 감지하고, 해류 밑의 소리를 통해 먼 바다의 폭풍을 알아챘다. 지도 대신 으로 바다를 읽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궁금해진다.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떠도는 몸으로 어떻게 항해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을까? 마우 피아일루그와 같은 전통 항해자들은 떠도는 몸으로, 변하는 세계를 어떻게 해독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몸에 새긴 공동체의 기억에 있었다.

 

팔루(Palu), 조상의 지혜를 몸에 새기다

바다 인류에서 저자 주경철은 미크로네시아 정통 항해술은 엄선된 사람들에게만 전수하는 비밀의 과학이었음을 알려준다. 마우 피아일루그의 고향 캐롤라인 제도에서는 1930년대까지도 선발된 5세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구술로 항해술을 전하는데, 16세에 이르면 돌이나 나뭇가지로 항해용 별자리를 표시할 수 있어야 합격했으며, 이후 푸오(Pwo)’라는 입문 의례를 통과해 최고 항해인이라는 뜻의 팔루(palu)’라는 직위를 얻어야만 한다.

팔루는 단순히 배를 운전하는 기술자가 아니다. 팔루의 항해술은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온 공동체의 지혜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데, 앞서 말했듯 고도의 훈련을 통해 조상이 전해주는 우주에 관한 지식을 어린 시절부터 몸에 새겨 기억의 형태로 몸에 저장한다.

항해가 시작되면 별의 움직임, 해류, 파도의 패턴, 바람의 방향, 새들의 비행, 구름의 모양, 해양 생물의 습성 등을 종합적으로 읽어낸다. 그리고 이 정보들은 몸에 새겨둔 기억의 통로를 통과하는 동안 해독되며 항로를 설정한다. 자연의 변화 주기를 읽는 이 특별한 능력은 선대를 통한 전승 없이, 한 세대에서의 배움만으로는 부족하다. 해독 기술은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되며 재차 확인되어야 한다.

예컨대, ‘스타 컴퍼스(Star Compass)’라 불리는 항법은 가상의 원형 나침반처럼 하늘을 32~36개의 방위 구역으로 먼저 나누고, 항해사는 자기가 항해할 방향과 관련된 별들이 어느 시점에 어느 위치에서 뜨고 지는지를 정확히 외워야 한다. 새벽, 저녁, 자정 각기 다른 시간에 나타나는 특정별을 기준으로 현재 위치와 경로를 파악한다. 별들은 계절마다 위치가 달라지므로, 항해자들은 1년 주기의 별자리 이동 패턴을 완전히 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나침반은 조개껍데기나 산호 조각을 모래 위에 배치하여 별의 위치를 시각화하고, 이를 통해 항해 지식을 구술로 전수한다.

 

파우(Pwo), 존재의 전환 의식

파우(Pwo) 항해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 내의 신성한 지식이자 지혜이다. 이 지식과 지혜는 전통적으로 선택된 소수에게만 비밀스럽게 전수되며, 문서화하지 않고 오직 구술로, 기억을 통해 전수된다. 왜였을까?

말과 소리는 문자와 기록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우주 운행을 배우고 읽히는 것에 문자가 무용지물임을 알고 있다. 항해술은 별, 바람, 파도, , 구름 등 자연 현상을 몸으로 직접 느끼며 배워야 하는 감각 기반 기술이다. 매번 다르게 변화하는 자연의 요소들과 현상들을 문자라는 고정값으로 붙잡아 둘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라는 지금의 움직임, 우주의 현재 변화를 포착해야 한다. 항해술은 우주의 변화를 감지하는 일이다.

현대판 GPS를 생각해 보자. GPS는 이미 정해진 길들을 기반으로, 출발 지점과 목적지 사이를 가장 짧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계산한다. 최단 거리를 계산하는 이 시스템에서 길은 언제나 고정된 좌표 값을 가진다. 인간은 고정된 길을, GPS가 안내해 주는 대로, 고정된 좌표 값을 따를 뿐이다. 정해진 점과 점을 연결하는 직선적 경로로 세상을 인식한다. 이 고정된 길에 변화하는 자연은 배제되어 있다. 고정된 길의 배경으로 머물거나, 변화 값을 고정값으로 강제 치환하여, 이 길은 변수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변수를 통제하고 지배한다.

그러나 팔루들은 다르다. 팔루는 길을 따라가지 않고, 길을 그려간다. 팔루의 항해에서 길은 미리 주어지지 않으며 자연은 배경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팔루의 길 그리기는 바다, 하늘, , 바람 등 자연과 관계 맺음으로써만 가능해진다. 항로는 바다와 하늘, 바람과 새, 영혼을 가진 존재들과 끊임없이 감응하는 지금, 여기에서 생성된다. 자연과 감응하는 팔루의 지혜는 자연의 변화 리듬과 패턴, 방향성의 감각을 몸으로 새긴 결과다. 팔루의 입문 의례(Pwo)는 신체, 정신, 영혼을 모두 준비된 상태로 통과해야 하며, 노래, 기도, 침묵, 몸짓 등 다양한 수행을 포함한다. 이는 존재 방식 자체를 새롭게 하는 통과 의례였다.

그리고 이 지혜는 문자나 책을 통해 모두에게 공개되는 오픈소스가 아니었다. 현대 GPS가 그렇듯 고정된 활자를 가지고 책으로 보급하면 누구나 어디에나 닿을 수 있는 정보이다. 그러나 말과 소리는 소수의 인원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더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관계 맺으며 전달된다. 이 은밀한 비밀은 모두가 소화할 수 없다. 모두에게 기억으로 체화되지 않는다. 이 비밀을 소화하고 기억할 수 있는 존재들에게만 허락되는 무겁고도 위험한 지혜이다.

 

미지의 바다를 친밀하게 바꾸다

한편, 팔루와 그의 조상들이 해독 기술을 체화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이 막무가내로 변할 것 같지만 감사하게도 그 변화 속에서 해독이 가능한 주기나 규칙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이 순환과 반복으로 변화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항해자는 바다의 변화를 보면서도 그 가운데 일정한 규칙이나 법칙을 읽어낸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읽기 가능한 대상으로 전환하는 능력, 변화 가운데 주기와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이 항해자들의 진짜 능력이다. 바다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이 주기와 규칙을 통해 미지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바다를 예측 가능한, 즉 친밀한 대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예측 가능한 바다와 몸에 새겨진 기억은 우주가 운행하는 경로를 머릿속에 그리게 한다. 그들은 내가 어디쯤 있는지, 얼마큼 더 가야 할지를 가늠하며 내 위치를 알아간다.

예컨대, 인도양 항해자들은 이곳 바다가 여름과 겨울의 강수량 차이가 뚜렷하다는 것을 읽어냈다. 겨울 몬순은 대체로 11-3월경 북동풍으로 부는데,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대륙에서 해양으로 불어간다. 반면 여름 몬순은 5-9월 남서풍으로 불어 습한 바람이 해양에서 대륙으로 불어와 많은 강수를 유발한다. 인도양의 항해자들은 바람을 읽고 그 방향에 맞춰 순항하는가 하면, 역풍을 돛으로 이용해 전진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 해안가 육지에 정박해 휴식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이 몬순 바람의 변화 주기에는 큰 예외 없이 예측 가능하다는 특성 덕분에 인도양 장거리 항해가 가능했으며 바람에 대해 알기만 하면 일 년 내로 귀환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 속에서 항해했다.

마우 피아일루그가 누볐던 태평양은 무역풍(Trade winds)이라 불리는 남동풍이 분다. 이 이름은 무역에 이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늘 규칙적으로 분다는 의미이며 그런 뜻에서 탁월풍(일정 시기에 특정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라고도 한다. 탐험에 나선 사람들은 이 바람을 거슬러 동쪽으로 항해하다가 필요하며 탁월풍을 타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항로를 잡았다. 그렇게 고대 항해자들의 기억은 곧 바다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지혜가 된다.

바다를 포함한 자연의 순환은 결코 부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눈앞에 포착되는 단편적인 변화조차,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더 크고 느린 전체 움직임 속에서 드러난다. 바다를 해독한다는 것은 이 작은 징후들을 통해 우주 전체의 흐름을 읽고, 다가올 변화를 예측하는 일이다. 이 작업은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몸에 새겨진 총체적 기억을 더듬어 감각과 직관으로 실행해야만 가능하다. 몸에 지혜를 새긴 항해자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디로, 얼마만큼 더 가야 할지, 언제 돌아와야 할지를 감지하며 스스로 항해의 나침반이 된다.

우리가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를 안다면, 지금 여기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이때 항해는 결코 무모하지 않다. 대상을 이해하는 순간은 그 대상과 맞물려 있는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이며, 이 만남 속에서 유동하며 생성되는 지도가 그려진다. 그때 미지였던 세계는 나에게 친숙한 존재로 변모한다.

전통 항해자들의 기억은 단순한 암기가 아니다. 이는 신체화된 기억 별의 위치, 바람의 방향, 파도의 리듬이 몸에 새겨진 것이다. 이 기억은 몸이 움직일 때 함께 이동하며, 고정된 지도가 아니라 흐름 속의 위치를 감지하게 한다. 마우 피아일루그 같은 전통 항해자들은 떠도는 몸에 이 기억을 새겼다. 이들에게 항해란 물리적 경로를 찾는 일이 아니라, 조상들이 전해준 신화적 질서, 우주의 운행에 조응하며 길을 내어가며 이동하는 행위였다.

해서 미크로네시아 항해자들의 지도 없는 항해는 두려움의 여정이 아니다. 내가 대상과 함께 맺는 관계를 통해, 대상과 나의 사이에 하나의 지도가 그려지는 순간이 된다. 바다 위를 항해하는 이들은 몸으로 자연을 읽고, 몸에 새긴 기억으로 바다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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