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인류의 대항해(서평쓰기)] 인류 항해의 시작
인류 항해의 시작
거대한 초록의 지구별 곳곳까지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시작한 호모사피엔스는 육지를 걷고 바다를 건너, 서기 1000년이 되면 작은 섬까지 정복한다. 인류는 자연환경의 조건과 다양한 필요에 따라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기도,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도, 그곳이 살만 하면 오랜 시간 머무르기도 하면서 지구별의 구석구석으로 뻗어갔다. 섬에서 섬으로의 이동도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비행기도, 변변찮은 선박도 없던 까마득한 과거에 인류는 어떻게 외딴섬까지 들어갈 수 있었을까? 두 발로, 배를 타고 갔을 것이라고 쉽게 답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의 품과 노력을 들이면서 굳이 그 험난한 여정을 할 이유가 그들에게 있었을까? 육지는 둘째로 하고 망망대해의 바다까지 인간은 왜 건너갔을까?
인류의 대이동의 이유에 대해 우리는 흔히 모험이나 호기심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심이 인간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인류의 대항해』(브라이언 페이건, 최파일 옮김, 미지북스)는 망망대해의 바다를 건너 마지막 섬까지 들어간 이유에 대해 호기심과 같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목적을 갖다 대지 않는다. 그는 인류의 대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항해에 대해 그저 그럴 만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인류는 저마다의 어떤 필요에 의해 알 만한 바다를 조금씩 나갔을 뿐이다. 알 만한 바다가 조금씩 확장되고, 그 앎이 전해지고 축적되면서 인류는 항해의 반경을 넓혀갔다고 그는 말한다.
책에 의하면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가 아니다. 저자 브라이언에 의하면 바다는 저마다 다른 풍경을 가지고 있다. 북해의 바다, 태평양의 바다, 대서양의 바다, 지중해의 바다는 각각 그 성격과 모습이 다르고, 같은 대양이라 해도 면한 육지에 따라 해안의 모습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는 이것들을 ‘바다의 언어’라고 표현한다. 최초의 항해는 이 바다의 언어를 읽고 해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디에서든 처음의 항해는 그곳의 풍경이 의미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이후에 이루어졌고, 이후의 항해는 시야에 들어오는 바다의 언어를 해독하면서 조금씩 반경을 넓혀간다. 연안을 해독하고 그만큼 배가 나아가고, 또 그곳에서 보이는 바다를 해독하고 나아가고를 반복하며, 인간은 바다의 풍경을 전부 해독해가고 지구 바다의 끝까지 정복하게 된다.
땅에서의 삶만을 생각하는 나와 달리, 처음의 항해를 시작한 강 연안이나 해안가의 사람들에게 바다는 육지와 분리된 곳이 아니라 연결된 곳이었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바다는 낯선 환경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풍경이었고, 항해는 이들에게 삶의 연장일 뿐이었다. 브라이언은 남서태평양, 지중해, 인도양, 북해, 서태평양의 고대 항해 이야기와 함께 어린 시절 자신의 항해 경험을 들려주면서, 항해가 삶의 한 부분이었던 사람들이 바다와 얼마나 친밀하게 관계 맺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든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이 주는 메시지를 읽어내려고 했고, 그 지식들을 입으로 전하고 몸으로 익혔다. 망망대해로 뻗어간 초기 인류의 항해는 이렇게 가능했고 확장되었다.
바다와 면한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모든 생활이 육지에서 이뤄졌던 내게 바다는 특별한 때에만 찾는 곳이었다. 바다는 그저 여가를 즐기기 위한 곳이었고, 일상에서 가질 수 없는 감상을 주는 색다른 공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바다를 육지와 분리된 별개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넘기 어려운 장애물이나 이색적인 곳으로만 바라보는 내 시선이 지극히 대륙 중심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인류는 바다를 관찰하고 해독해왔고 그 힘으로 대양으로 뻗어갈 수 있었으며, 지구의 2/3를 차지하는 바다는 우리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