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데스콜라 『자연과 문화의 저편』] 3장 대분할(8/10)
거북이 잉글리쉬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의 번역입니다. 오선민 선생님, 이종은 선생님, 이유진 선생님, 최경열 선생님, 최옥현 선생님, 윤연주가 함께 번역했습니다.
□ 책의 목차
Ⅰ. 눈속임하는 자연
1. 연속성의 구성
2. 야생과 길들여진 것 유목의 공간들 / 정원과 숲 / 밭과 논 / 들과 숲 / 목동들과 사냥꾼들 / 로마의 풍경, 허시니아의 숲, 낭만적 자연
3. 대분할 풍경의 자율성 / 퓌시스의 자율성 / 창조의 자율성/ 자연의 자율성/ 문화의 자율성 / 이원론의 자율성 / 세계의 자율성
Ⅱ. 관습의 구조
4. 관습의 스키마 구조와 관계 / 익숙한 것을 이해하기 / 스키마티즘 / 차이화, 안정화, 유추
5. 자기와의 관계와 타인과의 관계 식별의 양식과 관계의 양식 / 타자는 나
이원론의 자율성
인류학은 우리가 방금 제시한 오랜 기간의 성숙의 결실을 거두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인류학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이 학문에 대한 논란이 격렬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문의 사명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사적인 언쟁이 불일치의 성격과 표현 형태를 정의하는 공통의 근거를 내포하는 것처럼, 인류학적 논쟁 역시 반대 의견이 나올 수 있는 기반에 대한 사고 습관과 공유된 참고 자료의 배경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공통의 이해관계는 인류학이 그 대상을 정의하는 바로 그 용어, 즉 인간이 발명해낸 자연과의 매개 체계로 이해되는 문화 또는 문화권에서 비롯된다. 이는 호모사피엔스의 독특한 속성을 구성하며 기술, 언어, 상징적 활동, 생물학적 연속성의 제약을 어느 정도 받지 않는 공동체에서 개인을 조직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관통하는 이론적 차이가 무엇이든, 인류학이 지향하는 바는 삶의 보편적 제약과 사회 조직의 우연적 규칙, 즉 인간이 스스로 부분적으로만 만들어낸 환경 속에서 유기체로서 존재해야 할 필요성과 세상의 다른 개체와의 상호작용에 수많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 서로 섞이고 상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대한 합의는 실제로 존재한다. 민족학적 조사의 모든 구체적인 대상은 집단 제도와 사회 생활에 실질을 부여하지만 그 형태는 부여하지 않는 생물학적, 심리적 요인 사이의 중첩 지대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인류학이 학계에서 주장하는 자율성은 모든 사회가 자연과 문화 사이의 타협들로 구성되며, 인류학의 임무는 이러한 타협의 여러 가지 독특한 표현을 조사하고 가능하면 그것들의 형성과 파괴의 규칙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요컨대, 세계의 이중성은 인류학의 과학이 요람에서 그것을 기다리는 두 가지 현실 질서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대응하려고 시도한 (두 가지 의미에서) 최초의 도전이 되었다. 대상의 초기 정의에 담긴 의미는 그 대상을 파악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인간의 경험이 두 가지 다른 이해 방식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두 가지 현상 영역의 공존에 의해 조건화된다는 데 동의한다면, 필연적으로 한 측면이 아닌 다른 측면의 출발점에서 그것들의 인터페이스에 접근하게 된다. 이 출발점은 그 효과는 보편적이지만 환경, 기술 및 사회 시스템에 따라 차별화되는 자연의 사용, 통제 또는 변형에서 비롯된 결정일 수도 있고, 그 자체의 한계와 기능 방식 내에서 동질적인 자연을 다루는 상징적 방식의 특수성, 즉 동원된 메커니즘의 보편성과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의 통일성으로 인해 반복되는 특수성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그것이 자연주의적 일원론과 문화주의적 상대주의가 상호 정당화하는 대립을 하면서 계속해서 번영하는 이유이다. 그것들은 사회와 그들의 환경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치시켜야만 하는 인식론적 연속체의 두 가지 극단을 형성한다. 논쟁의 과정에서 그것들이 굳어져 왔기 때문에, 극단의 입장은 세계가 상호의존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두 가지 유형의 실재로 나눠질 수 있다는 전제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인류학이 갇혀 있었던 모든 모순을 정제된 형태로 드러낸다. (그것들이) 가장 과도한 공식으로 파악될 때, 선택은 마침내 교육적인 가치를 얻게 된다. 즉 문화가 유전자, 본능, 그리고 신경세포 연결망으로 구성되었든 지리적인 제약에 의해 형성되거든, 아니면 자연은 단지 문화가 그릴 수 있는 기호와 상징의 잠재적인 저장소로서만 형태와 부조(浮彫)을 띠든 둘 중 하나였다. 조잡하게 공식화된 이런 대립은 스피노자가 새로운 삶을 부여했던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과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 사이의 오래된 스콜라학파적 구분의 특정한 특징들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 스피노자에게 능산적 자연은 무한한 수의 무한한 속성들로 구성된 절대적 원인이며, 모든 인과 관계의 원천으로서 신과 동일시된다. 한편, 소산적 자연은 능산적 자연의 존재로부터 비롯한 과정과 대상 그리고 또한 그것들을 이해하는 방법 전체를 포괄한다. 스피노자의 동시대인들이 바로 발견했듯이, 그러한 신에 대해 기독교적인 것은 없었고, 모든 가능성의 정의와 총합인 비인격적인 인과관계의 실체로서 능산적 자연은 ‘신 또는 자연’(자연을 창조하는 신)이라는 문구로 표현된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자연의 가설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이후 여러 세기의 유물론자들은 신성한 원동력의 편리한 대체물을 찾아내야 했다. 반면에, 스피노자의 소산적 자연은 민족, 유기체, 그리고 그것들이 객관화되는 규범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대상의 언어와 용법에 따라 달라지는 독특한 형태로서의 문화의 자율성에 대한 근대의 개념과 거의 관련이 없다고 반박할 수 있다. 전치를 지나치게 멀리 밀어붙이거나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스피노자에게 소산적 자연은 무엇보다도 존재, 사고, 행위, 사물 간의 관계의 양태, 즉 그것 중 일부는 분명히 보편적이지만 그것들을 초래한 원인과 비할 바 없는 양태들에 의해 구성됨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들은 그것들을 결정하는 것을 차치하고 그 자체로 연구될 수 있다.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 및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 쌍의 유추적 사용에 반대하여, 이런 용어의 구분은 상호 배타적이며 어떤 중간 상태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반대할 수도 있다. 인류학자, 사회학자, 지리학자, 철학자 등 많은 작가들이 아우구스틴 베르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잔혹한 결정론(le déterminisme crasse)”과 “경쾌한 공상(imaginarism aérien)”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변증법적인 탈출구는 두 독단주의 사이의 정면 충돌을 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 저자들은 한편으로는 호전적인 실증주의자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완고한 (성서)해석학의 옹호자들로부터 동등한 거리를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그들은 이상과 물질,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물리적 원인과 의미 생산을 결합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중재를 위한 그러한 노력은 이원론적 우주론의 전제에 기초하고 여러 문화가 적응하거나 성문화하는 보편적 본성의 존재를 가정하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완전히 자연적인 문화에서 완전히 문화적인 자연으로 이어지는 축을 따라, 균형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는) 한쪽 극 또는 다른 극에 더 가까운 타협으로 축소된다. 어쨌든 문제는 인류학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마샬 살린스가 생생하게 표현하듯이, 인류학은, 말하자면, 정신적인 제약과 실제적인 원인의 벽 사이에 갇힌 채, 한 세기가 넘도록 감방 안을 서성이도록 강요받은 죄수이다.
나는 이런 유폐가 장점이 있음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원론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며, 환경에 대한 생태학적으로 우호적인 철학의 방식으로 순전히 도덕적인 이유로 낙인을 찍거나 식민지 확장부터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파괴, 성적 정체성과 계급 구분의 재통합을 포함하는 근대의 모든 악을 이원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순진(교묘)하다. 우리는 적어도 자연은 그 자체의 법칙에 종속된다는 주장뿐 아니라 자연과학의 발달을 강력하게 자극했다는 점에서 이원론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인류가 자연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그것의 본능을 더 효율적으로 단련하면서 점차 문명화된다는 믿음뿐만 아니라 진보를 향한 열망에서 비롯된 확실한 장점, 특히 정치적 이점에 대해서도 이원론에 빚지고 있다. 인류학은 이러한 흐름과 과학적 사고와 진화에 대한 믿음의 소산이며, 우리는 인류학 탄생의 환경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그것이 젊었을 때의 과오를 속죄하며 사라져야 한다고 비난할 이유가 없다. 항상, 그것의 역할은 이 유산에 의해 방해받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 역할은 우리의 우주론을 공유하지 않는 민족들이 어떻게 그들 스스로 우리와 다른 현실(실재)을 발명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함이고 우리 자신의 성취 기준에 따라 판단될 수 없는 창조력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류학이 우리의 실재를 경험의 보편적 사실로 당연시하는 한, 세계의 불연속성을 식별하고 끊임없는 관계를 식별하는 우리의 방법과 사물의 질감과 구조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다고 생각되는 범주에 실체와 현상, 과정과 행동 양식을 분배하는 우리의 방식과 함께 할 수 없다. 확실히, 우리는 다른 문화가 우리 문화와 완전히 유사하다고 이해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독특하고 보편적인 자연과 대조되는 문화의 수많은 단일한 표현을 우리 우주론의 제한된 부분에 불과한 프리즘을 통해서 바라본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들을 매우 다양하지만 이 이중 추상화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에 모두 부합하는 문화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이런 자민족중심주의는 우리의 관습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근절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로이 와그너Roy Wagner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인류학자가 보기에 근대 서구의 주변부에 있는 문화는 “총체적인 개념화로서 우리의 문화와 대조하거나 반대 사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현실을 다루는 ‘다른 방식’으로서 비교를 초대한다.” 근대적 이원론을 모든 세계 체계의 표준으로 전환시킴으로서, 우리는 비근대인의 자신에 대한 객관화를 우리 자신에 대한 객관화에 반복적으로 통합시킴에 따라 일종의 식인주의에 빠져들게 된다. 원시 민족은 오랫동안 철저히 ‘타자’라는 평판을 받았고, 그 결과 시민 도덕의 실패 혹은 사라진 미덕의 모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몽테뉴가 찬양한 ‘벌거벗은 철학자’가 아니라 시민, 원시 자연주의자, 준 역사가, 그리고 초기 경제학자의 예비 스케치인 거의 투명한 이웃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우리 스스로가 다른 누구보다 잘 발견하고 체계화했다고 믿어지는 사물과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을 어설프게 다루는 선구자들로 여겨진다. 물론 그것은 그들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만, 우리가 속한 범주에 그들을 통합하는 것은 인간 조건의 명료성에 대한 그들 특유의 공헌을 지워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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