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주술, 궁극의 연결술(2/19 후기)
동화인류학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2-3장 후기 김유리 2025-2-24
주술, 궁극의 연결술
25년 2월 19일 세미나 후기
〇범위
2장 오마라카나의 경작지 : 이른 작업과 시작 주술
3장 오마라카나의 경작지 : 토양의 준비와 파종
〇개시 경작과 주술의 순서
경작지 회의 -> 길 내기 -> 땅 두드리기 -> 덤불치기 -> 화전 -> 이른 파종-> 밭 경계 장식과 밭 청소 -> ‘캄코콜라’ 설치 -> 숨 불어넣기 -> 본 파종 |
〇본문 요약
때를 알림
트리브리안드 산호섬의 비옥한 키리위나 지역의 한 해 농사가 개시된다. 최고 족장의 계승자인 주술사 바기도우가 사람들에게 때를 알린다.
“좋다! 경작을 시작할 시간이 왔도다. 올해에 우리는 더욱 훌륭하게 경작지를 일굴 것이니라.“(브라니슬로 말리노프스키,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유기쁨 옮김, 227쪽)
준비하기
모두 모여 경작지를 나누는 회의를 한다. 경작할 밭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게 분배한다. 밭 규모는 각 가정을 부양하는 외에, 누이의 남편들에게 보낼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정해진다. 전체 농경 작업의 표준이 될 구획은 신분이 높은 자들에게 배정한다.
성대한 시작 의식 거행
해안 마을의 물고기와 산간 지역의 식물들을 모아 오고 성대한 의례를 치른다. 한해 농사 주기를 여는 의식이다. 조상에게 공물을 바친 뒤, “길을 보여주소서” 주문을 읊는다. 주술사는 모두의 농사용 도끼에 마법을 건다. 경작지의 흙과 병해충에게 주문을 읊는다.
땅 두드리기
경작지 모퉁이에서 어린 나무를 내리쳐 잘라서 밭 경계 밖으로 던진다. 이 나무는 덤불돼지로 대표되는 모든 사악한 영향력에게 주술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여겨진다. 작은 나무 하나를 더 잘라서 흙 속에 밀어 넣고 쪼그려 앉는 행위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꽃 피게 하네” 의식으로서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풍작을 기원한다. 주술사는 일어서서 주술용 지팡이로 땅을 두드린다.
“나는 그대를 두드린다, 오 땅이여, 그대를 열고 농작물이 대지에서 자라나게 하라.”(253)
덤불치기
표준이 되는 밭 구획인 “레이워타”에서 덤불을 정리하는 공동작업이 시작된다. 이어서 각기 맡은 소구획 밭에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덤불치기가 완료된다.
”정말로 훌륭한 경작자는 작업에서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다.“(257)
잘라낸 덤불이 건조되는 동안 마을 잔치를 열어 영들을 초대해 대접하고 가뭄을 막아달라는 임무를 지워 되돌려 보낸다.
화전과 이른 파종
주술적 화전이 거행된다. 횃불에 미리 마법이 걸리고, 해안과 습지대에서 모아온 잎을 천으로 말아 불 붙일 무더기를 설치한다. 화전 후 타로와 얌의 종자에 주문을 왼 후, 일부 이른 파종을 시작한다. ‘영들의 집’이라고 불리는 작은 구조물을 밭에 설치한다.
밭 청소
각자의 밭에서 경작지의 잡동사니를 깨끗하게 치운다. 밭 구획을 위해 작대기로 경계선을 표시한다. 이른 파종이 이루어질 경작 구획에 구색을 갖추어 복합 파종한다.(바나나 한두 그루, 타로 한 쌍, 사탕수수 두세 그루, 큰 얌 약간) 야생 돼지를 막는 울타리를 설치한다.
숨 불어넣기
울타리 설치가 끝나면, 주술사가 터부를 걸어 때를 알린다. 모든 농부들은 3~5일에 걸쳐서 자기 구획 모퉁이에 주술적 구조물인 ‘캄코콜라’를 한 개씩 설치한다. 주술사는 캄코콜라를 마주하고 큰 소리로 “닻을 내리네, 내 경작지가 닻을 내리네” 주문을 읊으며 경작지 전체로 숨을 불어 넣는 의식을 한다. 주문 끝에 주술적인 전조 현상이나 이변이 일어난다. 일제히 주식량인 타이투 얌을 파종한다.
“그는 자신의 숨이 경작지 소구획에 거침없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주문을 읊는다……. 자신의 목소리와 그 속에 담긴 주술적 효력이 밭 위에 넘쳐흐르고 땅을 관통하도록 한다.”(307)
〇세미나 후기
주술, 궁극의 연결술
달님은 세미나에서 “내 경작지가 닻을 내리네” 주문이 연결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트로브리안드 농경의 주술 체계에서 주술사는 땅과 인간 사이의 연결을 돕는다. 올해 경작을 위해 땅과의 연결 통로를 여는 것이 시작 주술이 하는 일이다.
기상학자이기도 한 주술사 바기도우는 때를 읽고 농사 주기의 개시를 공동체에 알린다. 시작 주술은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절차를 거친다. 밭에 나가 걸으면서 길을 표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술사가 절차에 따라 “길을 보여주소서” 주문을 읊는다.
길을 여는 것은 연결의 필수 조건이지만, 닫힌 체계에 균열을 내는 것은 위험을 동반한다. ‘안에서’부터 연결 통로를 열어가는 것이 주술이다. ‘안’이란 인간의 편을 뜻한다. 인간은 자연과 연결됨으로써 자연으로 들어가 풍요를 꺼내오고자 한다. 그러나 그 길을 통해 ‘바깥에서’ 사악한 것이 들어올 수 있다.
시작 주술은 병충해에 대한 경계를 포함한다. 주문에서 병을 ‘누이’라고 부른다. 달님은, 악과의 혈통적 연결 관계를 설정하는 것에 대해, 그것이 근원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병이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고, 완전히 내칠 수도 없는 그런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누이와 나는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지만, 일정한 때가 되면 분리되어야 하는 ‘근친상간 관계’라는 의미도 읽어내셨다.
달님은 인간이 대지와 연결되고자 할 때 그것은 무언가를 낳고자 하는 시도라고 했다. 연결이 창조와 풍요의 조건이다. 그러나 적절한 균형이 깨지면 약탈, 채굴, 착취, 폭력이 될 것이다. 그러면 추한 것이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연결에서 세심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은 심미적인 추구가 된다. 트로브리안드인들은 미적인 동기에 경작이 이끌리도록 한다. 과도할 정도의 세심한 주의가 풍요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트로브리안드의 경작 주술은 공적이다. 사적인 용도로 사용되지 않고, 사악한 목적으로 은밀하게 사용되지 않는다. 공개적이고 공공적이다. 공적인 주술은 모두의 경작 행위를 훌륭하고 아름답고 세심한 경작 과정이 되도록 선도한다. “훌륭한 경작지와 탁월한 경작지 주술의 신화적 후광으로 둘러싸여”(219) 있는 키리위나, 그중에서도 오마라카나의 경작지 주술과 작업은 트로브리안드의 모든 체계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아마도 가장 유명하며, 다른 공동체에게 하나의 모범이자 본보기가 된다.“(225)
※참고: 오마라카나는 어디에?
호주 북쪽에 있는 뉴기니 섬 동쪽 끝단에서 정북 방향으로 120마일 정도 떨어진 다도해상에 산호섬 트리브리안드가 있다. 트리브리안드 군도에서 가장 큰 보요와 섬 북쪽에 있는 드넓은 원형의 대지는 키리위나라고 부르는 지방이다. 키리위나의 중심지가 바로 오마라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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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의 음악성
주술의 절차는 바기도우의 지휘 하에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바기도우는 신분이 고귀하고, 지적이고, 유능하지만, 폐병에 걸린 느긋하고 내향적인 주술사다. 바기도우가 손에 쥔 주술 막대기는 겉으로 보기에 수수하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주물이다. 이 막대기는 시작 주술에서 땅을 두드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달님은 시작 주술의 땅 두드리기 행위가 타악기 연주와 유사하다고 했다. 악기 중에서 타악기에 근원적이며 나중에 현악기가 등장한다고 한다. 발로 땅을 구르는 행위인 춤도 땅 두드리기다.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것은 땅을 두드리며 연결을 시도하는 주술 행위와 근원적 연관성을 갖는다.
바기도우는 준비를 마친 밭 전체에 큰 목소리로 주문을 건다. 주문을 실어 보낸 숨이 경작지에 퍼지고 흐르고 “관통”한다. 주술은 숨을 통해 사물에 침투하고 관통하려는 시도다. 바기도우의 ‘장광설’이 사람들의 귀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돕는 것처럼, 그의 주문이 그의 숨을 타고 주술을 걸 사물 속으로 스며든다.
숨을 불어넣는 것은 부는 악기의 원리다. 후 하고 사물에 숨을 불어넣었는데 어떻게 거기서 소리가 나며, 그 소리가 타인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가? 음악에는 그렇게 마음을 숨에 실어 사물과 신체를 관통하여 전달하고 공감을 퍼뜨리는 능력이 있다. 가사가 있는 음악인 노래도 선율에 실려 숨을 통해 전달된다.
듣는 것은 영적 능력
달님은 “이야기의 기원”을 탐구해 보자고 했다. 경작 주술은 이야기처럼 대화적이다. 대화는 표현과 수용의 연속 과정이다. 수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듣는다는 것은 바깥에서 온 소리를 안으로 들이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내가 모르는 지점으로 들어간다는 상반된 행위를 동반한다. 듣는 것은 낯선 것을 안으로 들이는 것이면서 동시에 낯선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달님은 성과 속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내부에서 외부를 환기하는 것이 영성이라고 했다. 듣는 것은 영적 능력이다.
주술사는 영적 메시지를 연행하는 자로서 우리에게 듣게끔 만드는 일을 한다. 듣는 능력은 영적 능력이라면, 듣게 만드는 일은 듣는 이의 영혼에 접속하거나, 그의 영력을 끌어올리는 고도의 표현 기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음악이나 이야기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감동적인 노래에 귀 기울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세계에 푹 빠지는 것은 강렬한 상호작용이다. 표현과 수용이 주파수가 맞을 때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통하는 길이 열리며 그 길을 통해 둘은 빨려들 듯 어딘가로 이끌려 들어간다고 생각된다.
트로브리안드인은 경작 주술 체계를 만들었다. 그 주술 체계를 장악하고 수행하는 주술사는 경작 주기 내내 마을 주민에게 인간 너머를 환기시키는 일을 한다.
주술의 화자
주술의 이야기성을 이야기한다고 할 때, 주술의 화자는 누구냐고 달님이 물었다. 주술의 화자가 주술사 자신인가? 아닌가?
“좋다! 경작을 시작할 시간이 왔도다. 올해에 우리는 더욱 훌륭하게 경작지를 일굴 것이니라.”(227쪽)
“여보게, 우리는 곧 땅을 두드릴 것이네. ……. 우리는 우리의 농작물이 높이 자라고 땅속에서 부풀 수 있도록, 경작을 개시할 것이네.”(239쪽)
위 인용문에서 주술사의 예식적인 선언으로 마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기도우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경작의 리듬 속에서 ‘우리’로 합체된다.
“나는 그대를 두드린다, 오 땅이여, 그대를 열고 농작물이 대지에서 자라나게 하라.”(253쪽)
위 인용문에서 바기도우는 주술용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땅을 2인칭 “그대”라고 부른다. 이 부름은 1인칭과 2인칭을 복수형 주어 “우리”로 바꾸며 땅과의 협력을 조직한다. 그래서 땅과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 “우리가 꽃 피게 하네”(252쪽) 공동의 주문을 읊을 수 있게 된다.
주술 문구의 화자는 때에 맞게 상대를 부르고, 상호작용하면서 관계가 훌륭한 방향으로 이끌려 가도록 한다. 이 화자는 ‘우리 됨’의 안팎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능력을 구사한다. 주술의 화자는 만물의 주의를 끌어서 소통의 채널을 연다. 주술의 화자는 가수나 이야기꾼처럼 만물을 감동시키고 만물을 재미있게 해주려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아기처럼 웃음이나 울음만으로 어른들의 주의를 끄는 우주의 아기인 것일까? 화자를 어떻게 보든 간에, 그 화자를 연행하는 주술사의 입장에서는 모두의 동의에 기반하여 공동체 전체를 이끌어가는 가장 탁월한 사람이길 요구받는다.
여담
오마라카나의 축제 차림새를 보고 팔찌의 용도를 처음 알게 되었다. 『슬픈 열대』의 부족들도 그렇고, 거의 옷을 입지 않고 있는 이들이 팔뚝에 끈을 달고 있는 용도가 늘 궁금했다. 그것은 축제 때 향기로운 허브를 찔러 넣는 용도였다! 아름다운 산호섬, 강렬한 히비스커스 꽃, 신성한 허브 향과 사람들의 노랫소리, 춤추는 소리, 축제 행렬을 이끌며 모든 것이 적절한지 살펴보는 바기도우를 떠올리며 후기를 마친다.
“히비스커스 꽃 한두 송이를 머리에 꽂고, 판다누스 꽃잎이나 녹색의 향기로운 허브를 팔찌에 끼웠다. 또한 얼굴 반쪽에 검은 칠을 하거나 으깬 빈랑나무 열매와 석회를 혼합한 심홍색 물감으로 몇 개의 선을 그려넣었다. 그들은 모두 샘으로 가서 깨끗이 씻고 코코넛 크림을 바른다.”(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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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주술이 궁극적으로 연결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술을 읊는 화자는 자신을 ‘나’라고 하고 듣는 이를 ‘그대’라고 하네요. 특별히 듣는 이를 존칭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져요. 주술내용도 결정을 공언하는 형식이고요. 주술의 사회학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