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참인디언 애니미즘의 일상
참인디언 애니미즘의 일상
2024.9.6. 정혜숙
이번 동화 인류학 애니미즘 강의를 들으며 읽었던 책, 자크 브로스의 『나무의 신화』 그리고 팀 잉골드의 『선의 인류학』 세미나는 참인디언의 나라 인도를 자주 떠올리게 했습니다. 참인디언의 의미에 대해 간단히 덧붙여 보면 참나무, 참새, 참기름, 참깨, 참죽나무 등. 참은 사실이나 이치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것 앞에 붙일 수 있는 접두어로 진짜 인디언이라는 의미에서 아메리카 인디언과 구분하는 의미에서 참인디언이라는 호칭을 붙여 보았습니다.
오래 전의 짧은 남인도 여행이지만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인도에 대한 첫인상은 모든 것이 뒤섞인 혼란의 도가니였습니다. 그 혼란은 무질서 상태이긴 한데 그것이 무엇이든 과정 중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들어지면서 허물어지고 허물어지려다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듯한 도시. 거리를 자유롭게 배회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자동차, 매연, 소음, 옷, 음식, 동물 모든 것이 함께 뒤섞인 자연. 특히 수많은 종교와 민간 신앙에 기댄 사람들의 끊임없는 제의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고 아주 깊게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혼잡한 길거리 구석구석 꽃으로 장식해 놓은 재단과 사람들의 이마에 찍힌 빨간 ‘빈디’점까지. ‘빈디’는 제3의 눈으로 우리가 시각적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영을 보는 감각을 깨워놓는다고 합니다. 스스로 의식하는 정신 외에 자신의 안과 바깥이 통하는 공유의 장이 있다는 자연스러운 그들의 믿음이 저를 인도의 문화에 좀더 주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대문 앞을 깨끗이 물청소하고 하얀 쌀가루로 ‘콜람’*이라는 연속된 패턴의 선 그림을 그립니다. 이 특별한 일상의 시작은 특별한 기술을 가진 예술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하루의 태양을 맞이했을 때와 같이 매일 다른 모양을 만들어냅니다. ‘콜람’의 목적은 집의 출입구를 장식하는 것뿐 아니라 먹이를 찾아 집 안으로 들어오는 개미나 벌레들에게 먹이를 주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반대로 벌레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먹이를 얻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제공됩니다. 나누어 먹는 것, 한쪽으로만 치우친 독점이 아닌 공존을 선택한 오래된 지혜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매일 아침이면 행해지는 ‘푸자’*라는 제의도 단순하게는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 위한 소망의 제의인데. 그 제의를 위한 장식, 제물, 도구는 꽃과 장식품으로 정성스럽게 차려져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작고 반짝이는 금빛의 그릇들은 마치 어린시절 소꿉장난 놀이의 소품 같지만 실제 꽃과 향 그리고 먹을 것들로 채워집니다. 그런 일상의 제의는 매일 아침 새로운 마음과 정갈한 정신을 다시 깨우는 역할을 하는 듯했습니다. 제의는 매일 새로운 영을 만나고 그 영을 씻고 먹이는 과정입니다. 저도 저만의 제의를 만들어 보고자 도구를 준비해 오기는 했지만 해봐야지 생각만 했지 그릇 위에 아직 먼지만 소복이 싸여 있습니다. 이번 애니미즘 강의는 제 영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 느낀 대혼돈의 상황 속에서 참인디언들은 애니미즘의 삶을 몸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의 시간에 오선민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표백된 도시의 풍경 속에서 살았던 제 몸과 정신이 모든 것이 뒤섞인 환경과의 대면 후 재구성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자연, 나무는 제 의식 속에 아주 얇은 한 장의 배경, 풍경 사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인도의 도시 안에서 자라나는 각종 식물들의 크기에 압도되는 경험은 제가 살아온 도시에서 느꼈던 인간의 힘으로만 세워진 환경과 비교해 자연의 힘, 그 신성을 느껴보는 경험이 었습니다.
나무의 신화 뒤집힌 땅과 하늘_반얀트리
『나무의 신화』에는 부처님을 보호하고 상징하는 거꾸로 세워진 나무 ‘아슈바타’가 나옵니다. ‘아슈바타’가 보리수 나무라는 것을 알기 전에 저는 그 나무를 반얀트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반얀트리는 우리나라에서는 뱅갈 고무나무, 뱅갈 보리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반얀트리는 모양이 아주 독특한 나무입니다. 맨처음 뿌리는 땅에서 하늘로 자라지만 하늘로 길게 뻗은 가지들은 점점 밑으로 늘어져 땅에 닿은 가지는 땅에 뿌리를 내립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반복된 이런 과정을 거쳐 한 그루의 나무는 숲이 됩니다. 반얀트리는 인도에서 신성한 나무로 여겨지는데 하늘에서 땅으로 귀환하는 자기 재결합을 통해 “상호 순환”의 상징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인도의 신목이라고 할 수 있는 반얀트리는 스스로 숲을 이룹니다. 그런 나무들이 숲이 되면 신탁을 하거나 교육을 하는 영의 작업이 주로 이루어지는데 학교의 모임이나 종교 행사에 쓰이는 성소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인간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들짐승, 날짐승들의 안식처 피난처가 되기도 합니다.
애니미즘은 모든 것에 영이 있다는 오래전에 잊혀진 사고를 다시 찾는 작업이었습니다. 영은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장소를 바꿔가며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내가 되었다 나가기를 반복합니다. 이번 동화 인류학에서 만난 책들은 읽는 행위를 넘어 새로운 영을 만나는 작업이었습니다. 어떤 영은 제 안에 자리를 찾지 못해 바로 떠나버리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부서져 흔적만 남기기도 합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지난 강의 영상을 보며 기억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많은 부분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나무의 신화』를 세 번 읽으셨다는 오선민 선생님의 말씀이 다시 들어 왔습니다. 우선 책을 잘, 여러 번 읽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어떻게 무엇을 쓰고 싶다 라는 느낌이나 생각보다 제출 마감에 먼저 가 있는 성급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읽기를 끝내기에 급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글 중에 머무르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세미나에 참여할수록 쓰기의 필요와 중요성에 그리고 어려움을 체감하게 됩니다. 쓰기는 제 안에 들어온 영들을 잘 모시는 방법이자 행위라 것을 동화 인류학과 애니미즘을 통해 배웁니다.
콜람(Kolam)*-콜람, 랑골리로도 알려진 콜람은 오래된 관습에 따라 쌀가루를 사용하여 그리는 전통 장식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위키백과)
푸자(Puja)*-흰두교도, 불교도, 자이나교도가 하나 이상의 신에게 경의와 기도를 바치거나 손님을 맞이하고 영예를 돌리거나 영적으로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수행하는 예배의식입니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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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반복되는 일상의 의례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매일 다른 모양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삶처럼 그려지는 콜람이야기가 매순간 다른 영들과 무늬를 짜나가는 애니미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하루하루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가는 선생님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