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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작가 소개(초고)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4-12-21 23:19
조회
72

작가소개

 

 

작고 누추한 방에서 태어나

 

안데르센의 인생 동화(원제가 “나의 인생 동화”다) 『안데르센 자서전』(휴먼앤북스 2012) 첫 페이지를 열면 작가의 탄생 장면이 나온다. 1805년 덴마크 오덴세의 “작고 누추한 방”에 갓 결혼한 젊은 부부가 산다. 남자는 구두 수선공이고 “겨우 스물두 살”이었다. 아내는 남자보다 몇 살 더 많았다. 남자는 구두 만드는 작업대와 침대를 손수 만들었다. 침대는 얼마 전 어느 백작이 누웠던 관으로 만든 것이었다. 4월 2일 한 아기가 “죽은 귀족의 시신 대신” 침대에 뉘어진다. “바로 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다.” 이 날 아버지는 침대 곁에서 하루 종일 홀베르크라는 18세기 극작가의 시를 큰 소리로 낭독했고 아기는 내내 울기만 한다.

안데르센 가족은 가난에 찌들었다. 가족의 단칸방은 작업대와 침대만으로 가득 찼다. 아버지는 소년 시절 교육에 목말랐지만 구두 수선공의 견습 일에 만족해야 했다. 아버지의 시골집은 거듭된 불행으로 할아버지가 미치는 바람에 농장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야했다. 할머니는 정신 병원 정원 청소 일을 했다. 안데르센의 어머니도 어릴 때 억지로 동냥을 해야 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안데르센의 가족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영주의 장원에 들어가 구두방을 열 기회는 영주 부인의 변덕으로 무산된다. 나폴레옹 군대에 들어가 장교가 되고 싶었지만, 입대와 동시에 전쟁이 끝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갈수록 말수가 줄었고 끝내 병을 얻어 안데르센이 11세 되던 해에 사망하고 말았다. 어린 안데르센은 상류층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들이 곁에 두고 있는 수많은 책들과 그들이 나중에 어른이 될 때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지위가 부러웠다.”(57) 안데르센은 어느 왕국의 왕자님이 나타나 자기 재능을 알아보고 도와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노래하고 시를 낭송했다. 안데르센도 아버지처럼 직공의 견습생으로 들어가야 할 시기가 왔을 때, 그는 “세상에서 제일 큰 도시인 코펜하겐”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어머니를 조른다.

 

“거기 가서 뭐하려고?”

“유명해질 거예요.”(『안데르센 자서전』 58쪽)

 

안데르센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는 자기가 유명해질 곳은 극장이라고 믿는다. 안데르센은 모든 시련을 헤치고 유명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다며 어머니를 설득하려고 한다. 안데르센은 자신이 “천재적인 시적 감수성”(39)을 타고났다고 생각했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남다른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33). 아버지의 코트를 줄여 만든 옷과 난생 처음 새로 산 구두를 챙겨 “열네 살의 어린아이” 혼자 코펜하겐으로 떠난다.

 

인생의 사다리를 오르며

 

성공을 향해 노력하는 안데르센의 인생은 “인생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과정이었다. 오덴세에서 온 누추한 소년은 예술계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후원을 부탁했다. 처음 방문학 집에서는 거지로 보여서 하녀에게 동전을 받았다. 자기가 보기에 “최고의 옷차림”으로 차려입고 찾아간 것이었는데 말이다. 집주인 앞에서 신데렐라 연기를 선보이다가 열정이 지나쳐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쫓겨난다. 굴하지 않고 극예술 관계자들의 응접실을 드나들며 조금씩 길이 열린다. 음식을 얻고, 하숙비를 지원받고, 무용학교와 노래학교에 다니며 단역으로 무대 출연도 하게 된다. 안데르센은 궁핍과 싸우며 코펜하겐 생활을 이어간다. 돈을 벌 목적으로 극작에 도전하지만,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불가능해 그의 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세에 왕립극장 단장을 만나면서 경제적 궁핍에 떨어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문법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늦깍이 학생으로 안데르센은 대학 진학을 위한 교육 과정을 통과한다. 학교 교육은 교양과 문법을 보충해주었지만 안데르센은 오히려 자신감을 잃었고 과민해진다. 그는 불안에 시달리고 인정에 굶주린다.

대학 입시를 통과하자마자 안데르센은 학업을 접고 덴마크 문학계에 뛰어든다. 호프만의 영향을 받은(129) 판타지 모음 형식의 여행기를 첫 작품으로 출간했다. 안데르센은 독자들의 “칭찬의 종소리를 듣는 걸 좋아했다.”(123) 하지만, 그는 평론계의 비판에 취약했다. 그는 “병적으로 민감했다.”(130)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한 것이 여행이었다.

배우의 꿈은 시인의 꿈으로 바뀌었다. 여행기, 시, 극, 소설 등 다양한 글을 썼다. 그런데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것은 동화였다. 동화는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게 했다.

안데르센이 자서전에서 펼친 자신의 생애 이야기는 “가난한 꼬마 주제에”(36) 감히 성공으로 가는 인생의 사다리에 올라 끝내 꼭대기에 다다르는 성공담이다. 안데르센이 세 차례 발간한 자서전은 모두 정상에 다다른 상징적 장면으로 끝맺고 있다. 첫 번째 자서전에서 안데르센은 “가파른 언덕을 한 걸음씩 힘겹게 기어올라 마침내 정상에” 올라 “덴마크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작가로 문학계에 나만의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른다(332). 그의 나이 38세의 일이다. 자서전 마지막 장면의 공간 배경은 피레네 산맥의 산간 마을이다. 그동안 남쪽 나라에서 더위와 험난한 뱃길에 까무라치기까지 하면서 고생한 끝에 선선한 피레네 산맥을 타고 올라간다. 높은 곳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과정은 모두 자기가 선택한 여정이며 정상은 “아름다움과 약점 모두를 간직”한 곳이라고 말한다.

 

사다리의 끝단에서

안데르센은 이후 자서전들은 문학계에서 활약하며 여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 작품처럼 성공담이다. 2부의 끝 장면은 독일의 왕과 마차에 나란히 앉아 삶과 감정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유럽 여러 나라의 왕실에서 인정을 받는다. 3부의 끝은 고향 오덴세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어 성대한 행사에 참석하는 장면으로 끝났다. 이 행사는 “국왕 폐하 부부가 왔을 때만큼 대단했다.”(873) 행사 장면은 안데르센의 말이 아닌, 오덴세가 있는 핀 섬의 신문에 실린 자세하고 긴 기사로 갈음된다. 오덴세의 전 계층이 안데르센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기사에 담긴다. 전국에서 축전이 도착한다. 안데르센은 덴마크의 모든 크고 작은 신문이 이 행사에 대해 좋게 평가했다고 안도한다. 안데르센은 문학계를 넘어 왕실부터 가난한 어린이들까지 온 나라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오른다. 그를 괴롭혔던 신문도 이제 그를 인정한다. 인생 사다리의 끝단에서 신문의 “칭찬의 종소리”를 들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안데르센의 성공 이야기도 완결되는 것 같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던 소년이 왕처럼 고귀하게 되어 돌아왔다(873)”는 것이 안데르센의 성공스토리이긴 한데, 단순하지만은 않은 또 하나의 선율이 흐른다. 안데르센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인물에게 고통을 준다. 행사장에서 왕 못지 않은 명예를 누리는 내내 안데르센은 치통을 앓는다.

 

인생의 정상에 선 기쁨을 제대로 만끽할 수가 없었다. 치통은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창문으로 찬 공기가 들이치자 통증은 이 기쁜 순간들을 즐기기는커녕, 앞으로 부를 노래와 시들의 제목을 바라보며 얼마나 더 기다려야 찬 공기가 가하는 참을 수 없는 그 고통에서 자유로이 놓여날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했다. 고통의 절정이었다.(873)

 

원하는 것을 이루는 과정이 “무시무시한 통증(872)”을 동반한다는 설정은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복잡한 것으로 만든다. 그는 동화에서도 인물들에게 고통이 부여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칼로 찌르는 고통을 느끼게 만든다. “시련의 날”(877)들은 살아있는 한 끝나지 않는다. (끝)

1805년 4월 2일 덴마크 오덴세에서 출생

1829년(24세) <도보여행기> 발표

1831년(26세) 첫 해외여행

1835년(30세) 최초의 동화집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들> 발표. 해마다 크리스마스에 맞추어 동화집 발표

1846년(41세) 자서전 <내 인생 이야기> 출간

1855년(50세) 두 번째 자서전 출간

1867년(62세) 오덴세 명예시민으로 추대

1869년(64세) 세 번째 자서전 출간

1875년 8월 4일 친구 멜키오르 부인의 별장에서 병사(향년 7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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