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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 전집](9) 무대와 난롯가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4-11-20 17:34
조회
33
『안데르센 동화전집』(9) / 동화 인류 연구회 2024-11-20 김유리



무대와 난롯가
:불의 장소들








주제문 : 가난한 천재 예술가의 삶과 소망을 ‘불의 장소’인 무대와 난롯가의 비교를 통해 살펴본다.








세상 속 자기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가난한 천재 예술가의 삶을 무대와 난롯가의 비교를 통해 살펴본다. 본다는 것은 무엇이며, 보여진다는 것은 어떤 상태인가? 예술은 분리를 넘어 연결을 꿈꾼다. 시각적 관계가 과연 접촉과 소통의 관계로 열릴 수 있을까?


안데르센의 소설 『행운의 피어』에서 주인공 피어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어느 남자와 마주 선 장면을 살펴보겠다. ‘상인의 집’ 꼭대기 층 셋방에서 태어나 소년이 된 피어는 ‘학자의 집’의 입주 학생이 된다. 피어는 입주 첫날 작은 사건을 겪는다.





피어는 작은 방으로 갔다. 따스한 햇살이 비쳐드는 창문을 통해서 정원이 내다보였다. 그는 앉아서 밖을 내다보았다. 가브리엘 씨가 책을 읽으면서 걷고 있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오자 안을 들여다보았다(『안데르센 동화 전집』 1190).





창문은 벽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실내외를 소통시키는 장치다. 한기를 막고, 햇볕을 끌어 들인다. 창유리를 통해 실내 벽에 걸린 그림 액자처럼 풍경과 인물을 보여준다. 그림과 다른 점은 실내를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창은 안과 밖의 시선이 닿는 곳이다. 가브리엘이 창문을 보고 다가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이어서 읽어 보자.





그의 눈이 피어에게 가 닿자 피어는 존경을 담아 몸을 굽혀 보였다. 가브리엘 씨는 입을 최대한 벌리더니 혀를 쑥 내밀고는 놀란 피어 앞에 대고 좌우로 낼름낼름 했다. 피어는 왜 자기가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가 가브리엘 씨는 그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창가로 돌아와서는 또 혀를 내밀었다(같은 쪽).





창문을 통해 기대되는 안과 밖의 소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피어는 존경을 담은 인사를 보내지만 화답 받지 못한다. 인사란, 쌍방이 주고받을 때 완성된다. 피어는 몸을 굽혔지만 거기 담긴 존경은 전달되지 않고 무시된다. 무시를 넘어 모욕감을 준다. 가브리엘은 아마도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던 것 같다. 창이 자기 이미지를 반사하는 거울이 되자, 소통을 위한 창구는 차단벽이 되고 만다.


“학자의 집”에서 일어난 이 일화는, 이후 피어가 이끌리게 될 무대 예술의 속성을 담고 있다. 피어는 열정을 다해 주목을 받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보여주려면 강렬한 빛을 뿜어내야 한다. 빛나는 존재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무대 예술가가 기예를 닦고 타고난 재능을 총동원하여 만들어내는 것은 자기를 주목하게 만드는 마력이다.


공연 예술은 무대 위 예술가와 객석의 관객이 함께 만드는 것이다. 예술가는 무대 위에서 허구적인 상황을 펼쳐 보이고 공연의 관람은 예술적 고양감을 주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무대 위의 이미지는 마치 환영처럼 관객을 홀린다. 아무 것도 없는 황야에서 달빛에 취하고 요정에 홀려서 정신이 흐려져 춤을 함께 추는 것처럼 대중이 무대 위에서 보는 것은 개인의 경험과 욕망의 투사를 유도한다. 그것을 매력, 또는 마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기는 이러한 매력의 힘과 연결된 것이다. 예술가는 허상을 연기하면서, 현실에서 인기를 얻기도 하고 조롱을 당하기도 한다.


보여준다는 것은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다. 시선 앞에 자기를 노출하고,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타인의 평가가 미치는 곳은 밖으로 보이는 면이기에 긴장하게 되고 자기 이미지의 왜곡이 일어나기 쉽다. 또한, 격한 감정을 자주 사용하면서 신체에 부담이 된다. 피어의 호박 보석으로 된 심장 모양 목걸이는 예술의 힘과 따뜻한 가슴을 상징하는 부적이다. 피어는 수천 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지만, 인기가 덧없음을 알고 있다. 피어의 심장은 한계 이상의 불을 뿜어내야 했던 기계처럼 결국 파열된다.





불길이 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이제껏 그처럼 가슴이 벅찬 적이 없었다(1246).





그의 심장의 동맥이 파열된 것이었다. 번쩍이는 조명 아래서 그의 삶이 끝난 것이다(1246).





피어에게 불은 시각적인 것이었다. 무대 위에서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위해 심장은 그 힘을 모두 사용했다. 죽음의 날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오페라에서 피어는 알라딘의 램프를 손에 넣는 장면을 연기했다.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 들고 나온 램프는 피어의 예술적 성취와 명예를 상징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피어는 그러한 노력의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보면 불의 도구인 램프의 상징은 다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집과 정원, 모두 다 어머니 것이고 할머니 것이에요! 이걸 얻기 위해 제가 노력해 온 거예요(1241).





피어의 불은 밝은 조명 장치가 아니라 따스한 온기를 담은 난방 장치였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가난한 하층민으로 태어난 피어는 타인의 집에서 손님으로 살다가 무대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방인의 삶은 외로움을 불러일으킨다. 외로움은 한기와 닮았다. 친밀한 접촉과 친절한 마음을 그리워하게 된다. 피어는 따뜻한 마음과 열정을 가진 젊은이였다. 그가 노력 끝에 가난한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선물한 것은 친밀함과 따스함이 있고, 안심할 수 있고, 이완할 수 있는 난롯가 자리가 있는 자기 집이었다.


피어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요술 램프를 얻은 알라딘을 연기하고 갈채 속에서 무대 위에서 생을 마감한다. 무대 위의 죽음은 연기자와 관객을 분리하는 유리벽 안에서 시선을 받으며 맞이한 종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분리된 죽음과 달리, 그를 키운 것은 인간적인 접촉이었다. “행운의 피어”에게는 따뜻한 음식이 있는 둘러앉은 식탁, 구김살 없는 유년 시절을 만들어 준 보살핌,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 이해받는 공동체, 대화가 통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피어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머물 수 있는 “따뜻하고 작은 완벽한” 부엌과 난롯가 아늑한 자리가 있는 시골집을 선물하고 떠났다.





호프 부인이 말했다. “이곳은 참으로 훌륭해요! 두 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었어요”(1242).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란 자기 자리, 즉 세상 속에 마련한 자기의 거주 장소다.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작은 집을 찾을 때까지 피어는 무대 위에서 타고난 행운을 다 쓰고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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