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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에세이] 커다란 욕망을 품은 자기파괴(욕망하다)

작성자
오켜니
작성일
2024-12-23 05:45
조회
35

커다란 욕망을 품은 자기 파괴(욕망하다)

동화인류학 최옥현

 

인어공주의 욕망은 너무 크다. 왕자에 대한 사랑을 차마 발설하지 못하고 왕자가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인어공주의 욕망은 표현되지 않은 자신의 마음을 타인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두꺼비의 엄마는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두꺼비 아들은 우물 밖으로 나가길 원하고 어디를 가든지 더 나은 삶에 대한 갈증이 있다. 누구나 잘 살기를 욕망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요한나 할머니의 이야기에 나오는 라스무스가 그러하다. 입으로는 다 무슨 소용이람을 외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커다란 자아상을 감추고 있다. 그는 현실과 다른 자신을 욕망한다. 재단사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남의 농장일을 돕는 사람이다. ‘재단사라는 기준을 가진 그는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조용히 떠난다. 그 이후 그의 삶은 계속 나락으로 떨어진다. 자기 파괴는 커다란 욕망을 품고 있다. 자신의 커다란 욕망과 대면하고, 커다란 욕망을 잘게 부수어, 하나씩 성취해가면서 우리는 성장해 나아가야 한다.

라스무스는 농장주의 딸인 엘제에 대한 사랑을 품었지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남자에게 반지를 선물 받았다는 엘제의 거짓말에 화들짝 놀라 바로 고향을 떠난다. 라스무스는 재단사가 되려다가 고향에 남아주길 원하는 어머니의 권유로 남의 농장일을 도우며 살아간다. 그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가득하다. 라스무스는 엘제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경제적으로 부족한 자신을 엘제가 받아주기를 욕망하였다. 그러나 그는 엘제에게 이별 인사도 없이 조용히 떠난다. 고향을 떠난 이후 그는 우울과 질병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라스무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커다란 자아상이 존재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기준이 있다. 라스무스는 직원을 여럿 거느린 재단사쯤은 되어야 했다. 재단사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높은 자신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라스무스는 자신의 삶을 파괴한다.

라스무스는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욕심을 버린 약간의 해탈을 품은 말 같지만 실제로는 큰 욕망을 감춘 말이다. 라스무스의 아버지는 겨울 식량이 집에 가득 쌓일 때조차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고 말한다. 라스무스 아버지는 그 말을 기쁨의 표현으로 한 것이지만 그 말을 듣는 어린 라스무스에게는 허무의 의미로 들렸을 것이다. 라스무스의 아버지는 언어를 분화시키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뭉뚱그려 표현하였다. ‘못난 내가 아내와 열심히 살아가니 영주님 댁에서 인정해주시고 이렇게 많은 겨울 선물을 보내주셨네.’라는 말을 다 무슨 소용이람으로 한 것이다. 아버지의 계속되는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는 언어는 라스무스에게 노력해도 안된다라는 결정론으로 들렸을 것이다.

소용없다라는 말은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 상황을 수용하는 말이 되기도 하지만, 노력과 애씀이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는 허무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 손주에게 잘해줘봤자 크면 자기 부모밖에 모른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자식과 손주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수용하고 노력과 애씀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보답으로 오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또한 내 행위에 어떤 보답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일은 노력과 애씀이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하고 허무해질 수도 있다. 라스무스와 그의 아버지는 성취하기 힘든 것에 많은 노력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다 무슨 소용이람을 사용하고 있다.

엘제의 라스무스에 대한 사랑도 어긋나 있다. 엘제에게는 사랑 고백은 남자가 해야한다는 기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사랑고백을 받기 위해 라스무스의 질투심을 자극한다. 라스무스에게 다른 남자에게 반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이 작전은 실패한다. 라스무스가 떠나자 그녀는 주술사에게 가서 라스무스가 돌아오도록 주술을 건다.

요한나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라스무스와 상반되는 요한나가 나온다. 요한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구빈원에서 생활을 한다. 어린시절 라스무스와 친구였던 그녀는 너덜너덜 헤진 옷을 입고 항상 맨발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엘제 집의 하녀로 열심히 일한다. 거름을 실은 마차를 몰고 다니며 농장에서 소젖를 짠다. 자신의 일에 몰두해있던 그녀는 라스무스가 고향을 떠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녀는 찬송가책을 살 돈이 없지만 찬송가를 모두 외워서 굳이 찬송가책이 필요하지 않다. 고향에서 라스무스는 홀로 외롭지만 요한나는 관계의 그물망 안에 있다. 어린시절에 요한나는 라스무르 엄마에게 도움을 받았고 이제는 라스무스를 도우면서 그 은혜를 갚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영주의 부인이 라스무스 엄마를 도왔다. 요한나는 구빈원에 살지만 감사하고 기도한다. 요한나는 스스로에 대한 자아상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환경 조건 속에 스며들어 있다.

요한나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안데르센의 가난관을 엿볼 수 있다. 안데르센은 요한나를 부자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안데르센은 요한나를 금욕적으로 그리면서 아름답고 성스런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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