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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전집 3] 동화속 여행의 형태

작성자
남연아
작성일
2024-10-09 17:52
조회
47


동화속 여행의 형태



주제문 – 여행에는 목적이 중요할까 우연이 중요할까?

안데르센의 「종」은 존재의 근원을 찾아 세상 끝까지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안데르센은 기원은 아무나 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굳은 의자와 큰 소망 가지고 성큼성큼 나아가는 사람만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 종을 읽으니 3년 전 혼자 떠났던 제주도 여행이 떠올랐다. 나는 항상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맛집, 카페, 시장, 쇼룸 등등 현지 사람들이 일상을 즐기는 공간을 구경했다. 잠시 낯선 곳에 살아보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내가 듣고 읽는 언어가 바뀌는 가고 싶은 여행지도 달라졌다. 인문학 공부(당시 명리학)를 시작하면서 이제 나무, 불, 땅, 물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마주했다. 내가 나무의 성질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고, 제주도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제주도 오름을 하루에 2~3개씩 올라갔다. 오름을 올라가다 보면 숲 한 가운데 어느 순간 나 혼자였다. 숲 안에 혼자 있으니 너무 평온하고 고요했다. 숲속 나무들이 나를 안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어두워지니 중간중간 ‘구조 신호’라는 표지판도 보이며 오싹했다. 갑자기 총소리 같은 것이 탕탕탕 엄청 크게 규칙적으로 들리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건지 너무 무서웠는데 여기저기 둘러보니 바로 딱따구리 소리였다. 딱따구리 소리가 이렇게 큰지는 처음 알았다. 5일 동안 10개의 오름을 오르내리며 숲 깊숙이 들어갔다가 나왔다. 나는 서울로 돌아와 출근했다. 일렬로 맞춰진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일했고, 퇴근 후 집 테이블에 앉아 인문학 수업을 들었고, 주말엔 맛집 테이블에 앉아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겉으로 보기엔 달라진 것 없는 일상이었다.

「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어른들이 진짜 종소리를 찾기 위해 관광하고, 시를 짓고, 논문까지 쓰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종의 출처에 대해 설왕설래한다. 2부는 14살이 되어 견신례를 받은 12명의 아이들이 종을 찾아 떠난다. 「종」은 미야자와 겐지 「눈길 건너기」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이야기 구조이다. 첫 번째 차이점은 여행 목적의 유무이다. 「종」에서 사람들은 모두 종을 찾겠다는 목적이 있다. 아무도 목적지를 알지 못하지만, 일단 숲 안으로 들어간다. 반면 「눈길 건너기」에 두 주인공은 목적이 없었다. 시로와 칸코는 마을에서 숲속으로 들어가고, 우연히 아기 여우 곤사브로를 만난다. 그리고 환등회 티켓을 받는다. 목적은 없었지만, 우연한 만남을 통해 목적지(여우 학교)가 생겼다.

두 번째는 어린이에 대한 관점이다. 두 동화에서는 어린이, 청소년(어린이와 어른 사이), 어른 이렇게 세 가지 시기로 나눠 각각 시기마다 다른 사건이 펼쳐진다. 안데르센과 미야자와 겐지는 어린이와 청소년기에 대한 시선이 정반대이다. 안데르센에게는 견신례가 일생에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견신례는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가진 그들은 옳고 그름을 아는 어른의 몸이 되는 것’ (312쪽,  『안데르센 동화전집』)이다. 그 의식을 치러야 종의 근원을 찾으러 떠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눈길 건너기」에서 12살 이상 형들은 여우의 환등회에 초대받을 수 없었다. 어린이들만 숲을 건널 수 있었다. 어린이에 대한 시선은 상반되지만, 어른에 대한 묘사는 비슷하다. 종에서 어른들은 숲 끝까지 가지 못한다. 지금 있는 곳이 숲 한가운데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종은 도시에서 들리는 거 같다고 말한다. 심지어 종지기는 종에 대해 논문까지 쓰지만, 결코 종에 대해 알지 못한다. 「눈길 건너기」에서는 어른들은 만두와 술을 먹다가 사고가 난다. 다른 안데르센 동화(인어공주, 천국의 정원, 빨간신)를 보면 어린아이의 성장을 중요하게 묘사한다. 안데르센에게 어린이는 유혹에 넘어가는 연약한 아이로 그려진다. 동화 인류학 관점에서 안데르센의 이런 시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질문이 남는다.

세 번째는 도착지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어느새 모든 아이와 헤어져 혼자 남은 왕자는 “이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꼭 종을 찾고 말 테야.”(314쪽,  『안데르센 동화전집』)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마침내 종을 찾은 그 순간 거의 동시에 도착한 또 다른 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가난한 아이였다. 견신례의 옷과 신발을 돌려주느라 집으로 돌아갔지만, 종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다시 숲으로 와서 왕자를 만난다. 둘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달라 헤어졌지만, 둘은 다시 만나 포옹하고 손을 맞잡았다. 안데르센은 물질적 소유보다는 의지와 열망이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들에게 도착지는 곧 목적지이다. 천국같이 묘사한 이 성당의 성스러운 종소리를 보면서 두 소년은 과연 다시 도시로 돌아갔을지 궁금해진다. 반면 「눈길 건너기」에서 두 아이는 마을로 돌아온다. 겐지에게는 도착지는 출발지이다. 내가 출발했던 곳에 다시 서 있는 것이 여행의 끝맺음이고, 이는 돌고 도는 윤회의 세계를 담고 있다.

3년 동안 삶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퇴사, 프리랜서, 임신, 출산. 공부 또한 명리학, 불교, 동화 인류학까지 세계가 점점 넓어졌다. 어떤 것도 계획하지는 않았다. 숲에 들어갔다 나오니 사무실의 빽빽한 컴퓨터 책상이 너무 답답했다. 일단 그곳에서 탈출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 되었고, 어쩌다 보니 목적을 달성했다. 그 목적을 달성한 건 의지였을까 우연이었을까? 삶은 우연의 연속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안에는 왕자처럼 (가난한 아이보다) 종에 도달하고 싶다는 욕망도 있다. 우연이든 의지이든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제 아니 삶 내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숲속에서 외롭지 않고, 평온했던 이유는 숲 친구들 덕분이었다. 나무, 풀, 돌, 나비, 꽃, 소, 말, 뱀, 딱따구리, 오리, 벌 등등 내가 보지 못하는 많은 수많은 존재가 나를 숲으로 초대해 주었다. 그들이 준 힘으로 가지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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